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무소불위 '특수범죄처벌법' 살아있었다!

기록하는 사람 2009. 10. 21.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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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가 21일 '5·16쿠데타 직후의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1961년 당시 무고하게 군인과 경찰에게 연행돼 불법구금을 당하거나 중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수천 명의 국민들이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또한 이미 법원의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고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승소한 민족일보 고 조용수 사장의 유가족 외에도 그와 함께 사형을 선고받고 1961년 12월 21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회당 최백근 조직부장과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복역 중 서대문형무소에서 숨진 신석균 경북피학살자유족회장 등 수많은 피해자의 유가족들의 재심 신청과 손해배상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소송의 범위가 얼마나 될 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단 당사자 또는 유족이 남아 있는 교원노조 피해자들과 피학살유족회 피해자, 사회당 등 당시 진보정당 피해자들은 물론 해직됐던 교사들까지 모두 소송을 제기할 경우, 그 규모는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유족회 간부들에 대한 혁명재판소의 소환장. 크게 보려면 클릭.

그런데,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형, 무기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했던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이란 과연 어떤 법이었을까?

이 법은 이번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문에도 나와 있듯이, 일단 사람을 먼저 잡아 가둔 후, 그들을 처벌할 법률을 사후에 만들어 적용했다는 점에서 정말 세계법률사에서도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 법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 법은 '부칙'을 통해 "본 법은 공포한 날로부터 3년 6월까지 소급하여 적용한다"고 하여, 법 제정 이전에 있었던 행위에 대한 처벌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한 전형적인 '소급법'이다.


현재의 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한다는 조항으로 소급입법을 금지하고 있다. 당시의 구 헌법에도 '소급효 금지 원칙'이 명확히 있었다.

따라서 특수범죄처벌법은 헌법에도 위배되는 명백한 위헌법률인 것이다.


시행일은 1957년 12월 21일인데, 정작 제정일은 그보다 3년 6개월 뒤인 1961년 6월 22일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이 법률 제6조 '특수반국가 행위'였다. 이 조항은 "정당, 사회단체의 주요 간부의 지위에 있는 자로서 국가보안법 제1조에 규정된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는 정을 알면서 그 단체나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 고무, 동조하거나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그 목적 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조항의 적용을 받으면 아예 10년 이하의 징역을 받을 수도 없다. 이 때문에 대구의 이원식(대구유족회 대표위원) 씨는 사형, 마산의 노현섭(전국유족회장·마산유족회장) 씨와 대구·경북의 권중락(경북유족회 총무)·이삼근(성주유족회장) 씨는 징역 15년형을 받았다.

6조를 잘 보라. 이 조항이라면 누구든 처벌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무소불위의 법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http://www.law.go.kr)에서 찾아본 결과, 놀랍게도 이 법은 아직 폐지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살아있는 법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연혁법령'에 버젓이 법률 전문이 나와 있었고, 어디에도 폐지법령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년(2008년)에 폐지됐다는 '혁명검찰부및혁명재판소조직법'을 검색해봤다. 이 법은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과 달리 엄연히 폐지공고가 되어 있었다. 무릇 법률은 제정 또는 개정 때와 마찬가지로 폐지 또한 절차를 거쳐 국민에게 공포해야 한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을 사형 또는 감옥살이를 시켰던 엄연한 위헌법률이 폐지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버젓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혁명재판소법은 작년 12월 19일자로 확실히 폐지되었다.


물론 지금은 사문화한 법이긴 하지만, 찾아보니 1967년까지 적용된 판례까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진실화해위원회가 이번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하면서 국가에 대한 권고사항에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당시의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 등의 위헌성 여부를 판단하라"는 내용을 포함시킨 이유를 알게 됐다. 아직 폐지되지 않은 법률이니만큼 위헌 판정을 먼저 한 후, 폐지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권고인 셈이다.

이석연 법제처장이 지난해 사문화한 법률들을 찾아내 폐지하는 과정에서 왜 하필 이 법률은 빠트렸는지 궁금하다. 어쨌든 덕분에 박정희가 만든 '무소불위 법'에 대한 공부 한 번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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