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보도연맹학살사건 진실규명 잇따른다

기록하는 사람 2009. 10. 20.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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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중 최대 규모로 알려진 보도연맹원 학살에 대한 진실이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

거제유족회 서철안 회장 등 유족에 따르면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안병욱)는 최근 사천(옛 삼천포 포함)과 거제·통영지역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또한, 마산과 창원·진해지역 보도연맹원 사건에 대해서도 이미 지난 2월 규명된 마산형무소 재소자 학살사건과 별도로 진실규명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천·거제·통영 학살사건 공식 확인

유족들이 받은 결정통지문에 따르면 사천에서는 100여 명의 보도연맹원이 한국전쟁 발발 후 1950년 7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각 지서에 소집돼 삼천포경찰서로 이송됐으며, 이들 중 대부분이 사천군 용현면 석계리 야산과 삼천포 노산공원, 고성군 하일면 질매섬에서 경찰에 의해 불법 총살당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들 중 22명의 희생자 명단을 확인했다.

'민간인 강OO 외 4명에 대한 살인 및 무고 피고사건 판결에 대한 심사건의의 건' 표지 육군법무내발제273호, (1951년 2월 28일, 군법회의 판결심사자료)

또 통영지역에서도 110명의 보도연맹원이 7월 중순부터 통영경찰서 유치장과 통영극장, 봉래극장에 연행된 후, 같은 달 26일 광도면 안정리 무지기 고개에서 총살당했으며, 그해 8월에도 인민군에 부역했다는 의심을 받은 민간인들이 통영경찰서 유치장과 항남동 헌병대 멸치창고에 갇혀 죽음에 이를 정도로 고문을 당한 후 9월 19일께 통영 명정동 절골 뒷산에서 총살당하거나 한산도 앞바다에 수장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거제에서는 1949년 거제에 진주한 국군 16연대에 의해 빨치산에게 협조한 혐의로 민간인 다수가 고현동 독봉산과 하청중학교 앞산, 장승포 신사 터 등지에서 총살당한 것을 비롯, 1950년 8월에는 보도연맹원도 사등면 가조도 앞바다와 지심도 앞바다에서 수장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조사 결과 통영·거제지역에서 확인된 희생자 명단은 173명이지만, 실제 800~900명이 희생됐다는 자료와 진술을 고려하면 전체 희생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육군본부(법무감) 문서인 '민간인 강00 외 4명에 대한 살인 및 무고 피고사건 판결에 대한 심사건의의 건'(1951.2.28)에 따르면, 희생자 중 일부는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희생되기도 했음이 확인됐다.

당시 CIC 거제도 분견대장은 우익인사 2명을 모함할 목적으로 고문취조하고 범죄사실을 날조하여 1950년 8월 19일 통영군 일운면 지심도 인근 해상에서 불법 살해했다.

또한, 거제경찰서 사찰주임은 CIC, 해군 G2, HID 소속대원들과 회의를 통한 공모로 당시 감정적 대립상태에 있던 대표적인 우익단체인 거제 국민회 재정부장을 '경찰이 매수당해서 일을 못한다'는 등을 퍼트렸다고 날조하여 1950년 7월 27일 새벽 1시경 통영군 일운면 구조라 해상에서 살해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통영공립수산중학교 교장과 반민특위 위원도 희생되었으며, 통영 반공단장과 자유당 중앙위원, 대한청년단 간부 등 상당수의 우익인사들도 피해를 당한 것으로 밝혀냈다.

통영·거제지역의 희생자들 대부분은 국민보도연맹 가입자로 알려졌지만, 일부 주민들은 가입 여부가 확인되지 않거나, 가입자라 하더라도 강제로 가입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남. 또한 보도연맹 가입 이전에 분위기에 휩쓸려 좌익관련 단체에 가담했던 농민들이 상당수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는 "전시 하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시기였다 하더라도 인민군에게 협조할 것, 또는 협조했을 것이라는 의심만으로 재판절차 없이 민간인을 살해한 행위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생명에 대한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며 불법적 학살"이라고 규정하고 △국가의 공식 사과 △위령제 봉행과 위령비 건립 지원 △희생현장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공공기록물에 사건 내용 수록 △유해발굴과 유해안치장소 설치 △제적부와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등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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