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선비는 청렴한데 관리는 왜 부패할까?

김훤주 2009. 9. 2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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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투기, 탈세, 병역 기피, 법률 위반…… 이명박 정부 들어서 고위 관직에 오르려면 오히려 이런 정도 부정은 저질러야 되는 것으로 인식될 정도입니다. 공직 윤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갈피조차 잘 잡히지 않을 지경이지요.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등에 대한 국회 청문회를 보면 절로 드는 생각입니다.

9월 18일 오후 경남 진주 경상대학교 남명학관 남명홀에서 '선비정신과 공직자의 윤리' 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알맞은 시기에 알맞은 주제를 내건 덕분에 눈길이 확 끌렸습니다. 한 나절을 통째로 써야 하는 일정인데도 창원에서 가방을 챙겨 진주까지 갔습니다.

1. 조선 시대 선비와 요즘 공직자들

제 문제 의식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선비라면 청렴결백이 떠오르는데 왜 조선 시대 관리는 부패 타락만 생각날까?' 전결·환곡·군역 등 삼정 문란은 1800년대 전국 각지에서 민란의 원인이 됐고 순종 이후 족벌 정치가 판치면서 매관매직까지 성행해 임금조차 벼슬 장사를 할 정도였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요. 선비와 관리는 동떨어진 다른 존재가 아니거든요. 조정에 나아가면 관리고, 물러나 책을 읽으면 선비입니다. 말하자면, 물러나 있을 때는 청렴결백한 척 내세우다가 관리가 되면 얼굴 싹 바꾸고 토색질을 일삼는 표리부동한 존재가 조선 시대 사대부가 아니었느냐는 비판이 깔려 있는 셈입니다.

남명학연구원과 경남발전연구원이 주최했습니다. 발제문들은 158쪽에 이르는 책으로 묶여 나왔고 오후 1시 개회식에서 6시 마지막 종합 토론까지 다섯 시간 걸렸습니다. 학생들까지 동원했는지 행사가 치러진 공간은 250남짓한 자리가 모두 들어차, 계단에 앉거나 벽에 기대어 듣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눈여겨본 발표는 먼저 박병련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동양적 공직윤리의 사상적 기초'였습니다. 마음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는 이런 생각을 할까요?

2. 오직 '두려워함'을 요체로 삼아라

"벼슬살이의 요체는 '두려워할 외(畏)' 한 자뿐이다. 의(義)를 두려워하고 법(法)을 두려워하며, 상관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두려워하여 마음에 언제나 두려움을 간직하면, 행여라도 방자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니 이로써 허물을 적게 할 수 있을 것이다."(다산 정약용)

박 교수는 이렇게 △자기 몸 다스리기를 기본으로 삼은 다음으로 △청렴한 마음 지니기(淸心) △집안 가지런히 하기(濟家) △청탁 물리치기(屛客) △씀씀이 절약하기(節用) △즐겁게 베풀기(樂施)를 선비들의 공직 윤리로 꼽았습니다.

'씀씀이 절약하기'는 이랬습니다. 먼저 집안. "류정원은 고을 수령을 그만두고 돌아갈 때는 채찍 하나만 달랑 들고 갔고 의복이나 가구는 조금도 불어나지 않았다. 자인에서 물러나 집에 와 있을 때 관아에 있던 아들이 헌 농짝을 돌려보내면서 찌그러질까봐 짚을 안에 채웠다. 농짝이 오자 마을 아낙들이 보고자 했는데 짚이 나오자 모두 한 바탕 웃고 헤어졌다."

다음 관청 살림입니다. "정만화는 여러 번 감사를 지냈는데 거치는 곳마다 비축미가 넘쳐났다. 탄식해 말하기를 '내가 빼돌리고 사기하기를 틀어막은 지 한 해만에 이토록 많이 남으니 절약하고 아껴쓰기가 어찌 백성 사랑하는 근본이 아니겠는가!' 했다." 요즘 공직자들은 어떨까 생각해보니 두려워는 하되 그 대상이 오로지 '상관'뿐일 것 같았습니다. 백성이나 의(義)는 무시나 깔봄의 대상이겠지요.

실천에서는 위공망신(爲公忘身)을 꼽았습니다. 제 한 몸 잊고 더붊을 위한다,입니다. 구체적으로 안정복의 입을 빌려 "사사로운 기호(耆好)와 욕심을 버리는 것"이라 정리했습니다. "주색을 좋아한다 소문이 나면 그를 통해 이익을 얻을 무리들은 주색으로 낚아올리려 하고, 골프를 좋아한다면 골프로써 기회를 엿볼 것이다."

골프로 신세 조진 여럿이 떠올랐고, 황제 테니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금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도 기억났습니다.

박 교수는 이어 우리 과거를 두고 "왕조 체제라는 한계가 있음에도 왕조의 수명이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길었던 것에는 공직 윤리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 있었고, 많은 관료 엘리트들이 그 실천을 위해 헌신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3. 제대로 된 청렴은 언제나 이상이었을 뿐

제가 품고 있었던 의문이 여기서 풀렸습니다. 제가 지나치게 어둡게 봤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청렴한 공직 사회는 여태 실현된 적이 없는 이상일 뿐이었습니다. 이상과 현실을 착각하고 혼동하는 저는 아직도 풋내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명박 정부도 '그럭저럭' 봐 넘겨야 되나 생각했습니다.

박 교수가 지금을 두고는 이리 말했습니다. "공직 윤리는 법과 규정이라는 제도에 명시되고 이것을 어긋나지만 않으면 공직 윤리를 실천한 것이 된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그러한 '법과 규정'마저도 지키지 않은 고위 공직자가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요?

박 교수의 진단입니다. "아마도 대국(중국과 미국 모두를 뜻하는 듯)추종주의인 교육으로 전통과의 단절이 근대화의 징표라고 가르친 결과는 아닌지 모르겠다", "연면한 전통인 유교와 불교, 도가의 가르침이 융합되어 공직자로서 '완미(完美)'한 전범을 빚어낸 것이니 우리가 전통을 돌아보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4. 수기(修己) 없는 치인(治人)이 문제다

더욱 새겨들을 바는 이것이었습니다. 선비는 수기(修己-자기 수양)를 했는데 지금은 않는다는 얘기였습니다. 남 다스리기 공부만 한다는 것입니다. "현대 서구적 교육은 '치인술(治人術)'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경영학·경제학·법학을 위시하여 사회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사회과학 등이 '학문'으로 발달하였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뒤에는 정주영 아래에서 현대건설을 경영한 이명박이 떠올랐습니다. 자기 수양은 별로 하지 않았을 테고요. 했다면 아마 '마사지걸' 관련 발언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예쁜 마사지걸 대신 못난 마사지걸을 고르면 좋은 서비스 받을 수 있다는 말은 다른 사람 마음을 사는 천박한 치인의 영역이지요.

박 교수의 마지막 글입니다. "휴일이면 산사에 들어가 참선으로 자기를 돌아보며, 한 번씩 높은 산에 올라 조식(調息)하며 신선을 꿈꾸고, 대현(大賢)을 모시는 서원의 사당에서 경건하게 절하며 자기를 성찰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 오히려 공직 윤리의 실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명박 대통령과 그 정부에게 권할만한가요?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달라질 것 같은가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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