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가 지은 <삼국지> '방통전'을 보면 백리지재(百里之才)라는 말이 나옵니다. "유비는 형주를 다스리게 되자 방통에게 종사 신분으로 뇌양현 현령을 대행하게 했는데, 방통은 현에 재임하여 치적을 쌓지 못해서 면직되었다. 오나라 장수 노숙이 유비에게 편지를 보내 말했다. '방사원은 백리지재가 아닙니다. 치중이나 별가의 임무를 맡겨야 비로소 뛰어난 재능을 펼칠 수 있습니다.'" 사원은 방통의 호라 하지요.

<연의 삼국지>에도 나오는 이 이야기의 이어지는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유비는 방통을 새로 불러 군사 중랑장으로 삼습니다. 천리지재한테 걸맞게 천리를 맡긴 것입지요. 백리지재는 사방 백 리쯤 되는 땅을 다스릴만한 재주라는 뜻이니, 요즘으로 치면 기초자치단체 시장이나 군수쯤 되겠습니다.

물론 백리지재는 전혀 나쁜 뜻이 아니랍니다. 보통 사람보다는 뛰어나기에 백 리라도(또는 씩이나) 다스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명환경농업을 알리는 리플렛 표지.

경남 고성에는 이학렬이라는 군수가 있습니다. 그이는 지난해부터 생명환경농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토착 미생물'을 활용해 화학 비료나 농약이 전혀 없이 농사를 짓고 화학 사료나 항생제 같은 약품을 전혀 쓰지 않고 돼지나 닭 또는 소 같은 짐승을 기르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친환경농법과 달리 첫 해부터 농약 따위를 전혀 쓰지 않았고, 소출 또한 관행농법보다 늘어났답니다.


이학렬 군수는 이같은 생명환경농업은 4대강 살리기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논이나 밭에 농약을 치지 않고 화학 비료를 뿌리지 않으면 당연히 시냇물이 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 토착 미생물을 축산에 활용하면 이른바 축산 폐기물도 거의 생기지 않으니, 강물에 대한 가장 중요하고도 심각한 오염원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지요.


이학렬 군수는 생명환경농업을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이른바 4대강 유역에서 실행하면 4대강 살리기는 저절로 이룩된다고 했습니다. 상류가 맑아지면 하류는 저절로 깨끗해지는 이치랍니다.

그래서 그이는 홍보 리플렛에서 4대강 유역 논 78만ha와 밭 54만ha에 녹색 성장 농업을 실천하면 4대강의 물을 생명수로 만들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냇물이 더러워지지 않은 채 강으로 흘러가게 되니 강물이 크게 맑아질 것은 정한 이치입지요. 고성군의 생명환경농업 실천 현장에 가보면 정말 실감할 수 있답니다.

리플렛 28쪽 내용. '4대강 살리기 사업과 녹색성장농업(생명환경농업)의 만남.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명박이라는 대통령도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처음 서울과 부산을 잇는 운하를 만들겠다고 했다가 국민 반대에 부딪히자 대신 '4대강 살리기'를 하겠다고 바꿨습니다. 강 바닥을 파내고 곳곳에 보나 댐을 만드는 사업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들이겠다면서 환경영향평가조차 졸속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항이 잇따르고 수질이 나빠진다는 지적까지 나왔지만 '걱정마라, 나빠지지 않는다'며 마구 삽질을 해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질 악화는 불을 보듯 뻔해서 정부 스스로도 수돗물 취수원을 변경하는 문제를 들고 나왔답니다. 지금까지 낙동강 본류에서 끌어온 물을 정화해 수돗물을 만들어 보냈는데, 앞으로는 낙동강 본류는 버리고 대신 지류에서 물을 끌어오겠다는 얘기랍니다.


8월 24일 대구에서 열린 '취수가능지역 조사사업 공청회'에서 나온 방안입니다. 환경부는 이날 사업 추진 배경으로 △낙동강 취수원이 하천 표류수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중·하류의 수질 오염이 심각하며 △낙동강 상류에서 수질 사고가 터지면 취수 중단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내놓은 대안이 낙동강 본류에 있는 취수장은 폐쇄하는 대신 남강이나 밀양강 같은 지류에 건설된 댐에서 물을 끌어오는 방안이랍니다. 부산·양산·마산·창원 등은 남강댐에서, 밀양·김해·창녕은 밀양댐에서 물을 끌어오도록 바꾸는 방안이 나와 있습니다.

낙동강 본류의 수질을 포기하는 정책으로 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본류 수질을 좋게 하려면 지류를 정화해야 한다는 전문가들 주장은 일고(一考)도 하지 않았으니 말씀입니다.


심지어 함양과 거창은 있지도 않은 임천수계댐(함양 문정댐)을 취수원으로 삼는 방안이 제시돼 있답니다. 문정댐은 정부 문서에만 있을 뿐 실재로는 없는 댐이지요. 정부는 문정댐 짓는 계획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내놓고 있지만, 환경 파괴도 걱정되고 지리산 자락 유명 관광지까지 물에 잠긴다는 반대 목소리가 높아 백지화 선언 또한 잦았던 그런 댐이랍니다.  


4대강 살리기는 수질 개선과 전혀 상관없는 토목공사일 뿐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자주 쓰이는 속담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요. 그래서 위에 있는 물이 깨끗하면 아래에 있는 물은 절로 좋아집니다. 이토록 단순한 진리를, 백리를 다스리는 이학렬은 알고 천리를 다스리는 이명박은 모르는 것입니다.

천하를 알아야 할 대통령이 군수 같은 백리지재만도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백리지재도 못 되는 이에게 천하를 맡긴 사람들이 비참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김훤주
※월간 <전라도닷컴> 2009년 10월호에 실은 글을 조금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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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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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람있는풍경 2009.09.29 15: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디 한두가지라야....토를 달든지 하지 원!! ㅉㅉ, 그래서 선택했슴다. 지지율 50% ㅋㅋ

  2. Favicon of http://blog.daum.net/teriouswoon 테리우스원 2009.09.29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성군수 화이팅!!!
    우리 고장의 아름다움이어서 더 뿌듯합니다
    항상 좋은 기사 감사드리고 즐거우시길

    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3. Favicon of http://blog.daum.net/winpopup 팰콘 2009.09.29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이 글을 읽고 국가가 너무 졸속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70년대 막가파스타일의 행정으로 밀어부치니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그러는지~!

  4. Favicon of http://blogsabo.ahnlab.com 보안세상 2009.09.29 1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요새 우측통행 하는 거 보고
    깜짝 놀랐네요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09.09.29 21: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좌우 신경 쓰지 않고 다니는데, 별로 걸치적거리지는 않던데요.

      하하. 하나가 싫으면 다 싫어지지요. 마누라가 미우면 처가 식구들도 밉다,,, 머 이런 것이지요.

  5. Favicon of http://kbh12992930@hanmail.net 구본흥 2009.09.29 1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지요 .개인의 공명이나 아집을 위해 혹(치부의 수단?)시라도 고집과 똥배짱으로 굳이 사대강 죽이기를 하겟다는 "놈"을 보며 양평의 우리는 직격탄을 맞는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가 개입하는 모든 단체나 모임마다 한강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다니지만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별로 상관 안하는 듯 해서 괴로울때도 많습니다.그러나 양평은 국회의원은 카멜레온같은 미디어광이 되었지만
    군수 많큼은 한나라당이 얼씬도 못하고 있다는게 위안 입니다.누대에 걸쳐 후회할일을 지금 놈이 벌이고 있는데 막을 방법을 찾을 수가 있을 까요?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09.09.29 2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하는 것이 방법 아닐까요? 그래서 막아지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고.

  6. Favicon of http://rjlim2001.tistory.com na야 2009.09.29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단해요..이렇게 졸속으로...정권만 남용하는것은 지도자가아닙니다! 독재자일뿐이지!!

  7. Favicon of http://kisilee.tistory.com 구르다 2009.09.30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사람 있죠..
    아랫 사람이 자기보다 똑독하면 용납이 되지 않는 사람.
    혹 그분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요?

    근데 걱정은 걱정입니다.
    4대강 삽질이 시작되었으니 말입니다.
    농지리모델링사업으로 강 주변 논은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됩니다.
    또, 강둔치에서 채소농이 주로 이루어 지는데 그곳에서도 농사를 짓지못하게 됩니다.
    채소값이 많이 치솟을 것입니다.

    근래 국정질문에의 답에서 유추해 보면
    수공의 부담액8조원에 따른 1조5000억원의 이자는 주변 택지개발에 따른 이익으로 충당을 한다고하니 4대강 사업의 목적은 뻔한 거죠.
    그리고 머지않아 수공을 민간에 팔게 될 것이고, 그러면 수도 민영화가 시작됩니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수도민영화에 뛰어들 기업이 어디이겠습니까?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09.09.30 1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확하게, 그리고 많이 보시는 것 같습니당~~(단정하는 말투를 쓰지 않은 까닭은, 제가 잘 몰라서리~~~)

      채소 야채 값 오르면 도시 서민들은 괴롭지요. 농민들은 농사지어 먹던 땅에서 쫓겨나 괴롭지요. 대형 유통업체는 살판나겠지요. 흐흐

  8. 호박죽 2009.09.30 1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상합니다. 저는 지금 이 글을 처음 읽었고 글 내용을 추천하였습니다만,

    '이미 추천한 글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뜨면서 추천횟수가 늘지 않네요.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09.10.05 23: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죄송합니다. 저도 블로그에 문제가 생겨서, 글쓰기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원인을 모르겠네요. 티스토리에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9. 불가요 2009.10.01 0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재미있는 글이네요. 백리지재, 이학렬, 잊지 말아야 겠군요

  10. 보라매 2009.10.02 2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비를 다시 생각케합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09.10.05 2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비, 참 멋진 캐릭터입지요. 장정일도 그이를 어떻게 하지 못했습니다.

      유비를 줄기차게 씹어대는 존재는, 일본 책 영향을 입은, 조조를 은근히 대 놓고 바람직한 인간상이라 추어대는 이문열 같은 족속들입지요.

  11. 우와 2010.10.08 1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유익한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