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조선왕조보다 못한 대한민국의 기록관리

기록하는 사람 2009. 9. 1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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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한국 현대사에 얽힌 새로운 사료(史料)가 발견됐다는 언론보도를 접했을 때, 그 자료의 출처는 어김없이 미국 국립문서기록보존소인 경우가 많다. 이런 보도를 보면서 '왜 우리나라의 역사자료가 국내엔 없고 미국에만 있을까' 하고 의문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러던 중 불과 몇년 전 '기록학'이라는 학문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도서관(library)이나 박물관(museum)과는 또 다른 기록관(archives)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도서관이 인쇄된 책을 보관하고, 박물관이 유물을 보존하는 곳이라면, 기록관은 말 그대로 문서를 비롯한 각종 역사자료를 보존하는 곳이다.

선진국에는 이 기록관이 박물관이나 도서관의 숫자만큼이나 많다는 사실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보다 후진국이라는 중국도 '당안관(當案館)'이라 불리는 기록관이 성(省)에서 현(縣)에 이르기까지 무려 3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기록선진국이 후진국으로 전락한 이유

부산시 연제구 거제동에 있는 국가기록원 부산지원.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이런 기록관이 과연 몇 개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기관은 단 한곳, 국가기록원(전 정부기록보존소)뿐이고, 사고(史庫)에 해당하는 건 국가기록원 부산지원과 성남의 나라기록관 등 두 곳이 고작이다. 이 때문에 기록문화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후진국이라는 조롱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원래부터 기록문화의 후진국은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이 전세계 기록문화의 가장 찬란한 유산으로 꼽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유네스코에서 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국가기록원은 춘추관이었다. 오늘날의 아키비스트(archivist)라고 할 수 있는 사관(史官)은 과거시험 수석합격자를 비롯한 가장 성적이 우수한 사람으로 임명됐다. 이들은 예문관과 춘추관에 발령을 받아 다른 공무원들보다 몇 단계나 건너뛰는 초고속 승진을 했다.

그들이 만든 기록물을 사초(史草)라고 했다. 사초는 왕도 볼 수 없었다. 왕조실록은 이들 사관들이 쓴 사초를 바탕으로 왕이 죽고 난 뒤 설립되는 실록청에서 편찬됐다. 절대권력자인 왕이 가장 무서워한 게 바로 그들 사관이었고 사초였다. 왕은 '역사에 기록되는 것이 무서워' 함부로 학정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아키비스트와 아카이브는 왕권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견제기구였다.

그런데, 이런 찬란한 기록문화가 일제와 해방이후의 독재를 거치면서 완전히 단절돼 버렸던 것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역대 대통령들은 기록을 생산하고 보존하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독재행위에 대한 역사적 증거물이 되는 걸 두려워해서인지 기록문화의 복원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관에게 철저한 독립성을 보장하고, 정승과 판서 등 고위벼슬아치들은 물론 왕에 대해서도 포폄(褒貶)을 남길 수 있었던 실록은 조선왕조 이후 더 이상 발간될 수 없었다. 조선시대 사관들은 어전회의는 물론 왕과 신하의 독대에서 나눈 대화까지 기록했지만, 대한민국의 국무회의는 회의 발언록도 남기지 않는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조선왕조보다 기록문화에 관한 한 후진국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를 안타까워한 몇몇 학자들이 끊임없이 기록문화의 복원을 위해 노력해왔고, 그 결실이 지난 99년 김대중 정부 시절 제정된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다. 그 뒤에야 비로소 우리나라에도 기록학이라는 학문분야가 생겨났고, 각 대학원에 학과가 신설되기 시작했다. 이 법은 각 지방자치단체에도 기록보존소 내지는 자료관을 설치·운영하도록 하고 있지만, 제대로 기록관이 설치된 곳은 없다. 다만 '기록담당(계)'을 설치, 공무원의 자리를 늘리는 데만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노무현 정부 들어 개정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모든 시·군에 기록관을 설치하도록 권장하고, 시·도 광역자치단체에는 2007년 말까지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을 설립계획을 의무적으로 제출토록 했지만, 정권이 바뀌자 흐지부지돼버린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기록문화 복원을 위한 노력, 현 정부들어 물거품되나

특히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 들어 행정복합도시인 세종시에 설립키로 예정되어 있던 '대통령기록관' 건립예산도 대부분 도로건설에 전용하는 바람에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퇴임 대통령 기록은 관리 안 하겠다?
)

이런 가운데 경남 마산의 근대문화유산인 일제시대 헌병대 건물이 해방 후에도 보안사(현 기무사)의 민간인사찰 용도와 기무사 출신 퇴역군인 친목단체인 '충호회' 등의 사무실로 이용되어 오던 중 노무현 정부 시절 등록문화재(제198호)로 지정됨으로써 시민의 품으로 돌아올 기회를 맞았으나, 현 정부 들어 이 건물을 리모델링한 후 다시 보훈관련 친목단체들에게 무상임대해주려 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문화유산을 왜 특정단체에 무상임대하나? )

기무사 출신 퇴역군인들의 친목단체인 충호회 사무실로 사용되던 당시의 마산 헌병분견대 건물. 마산시는 이 건물을 보수한 후 또다른 보훈관련단체에 무상임대해주겠다는 의견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했다. @문화재청


이 건물은 그 역사성이나 문화적 가치로 보아 근대도시인 마산의 근현대 역사기록관으로 활용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게 지역의 뜻있는 학자와 연구자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마산시는 그런 의견수렴조차 하지 않고 몇몇 보훈관련단체의 민원을 받아들여 공짜사무실로 내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마산시는 지금이라도 특정단체에 등록문화재를 무상임대하려는 계획을 철회하고, 이 건물의 용도에 대한 시민 여론 수렴에 나서야 한다. 토론회도 하고 공청회도 하고, 필요하다면 여론조사를 해서라도 그 역사성과 문화재적 용도에 맞는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 건물은 마산시장이나 공무원들의 소유도 아니고, 특정 보훈친목단체의 것도 아닌 국민 모두의 소중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관련 글 : 조선시대 왕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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