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대통령은 '사과'했는데 장관은 '유감'인가

기록하는 사람 2009. 10. 17. 18:23
반응형
16일 오후 마산에서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경찰에 의해 무고하게 집단학살된 희생자들에 대한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사과문도 발표되어 눈길을 끌었다. 위령제 자리에서 국가가 공식 사과하는 것은 이 사건의 진실규명을 결정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권고사항'에 근거한 것이다.

진실화해위의 권고사항 제1번은 아래와 같이 되어 있다.


이 사건에 대하여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화해를 위한 국가의 조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1) 국가의 공식 사과

본 사건은 한국전쟁 직후 부산·마산·진주형무소의 재소자들과 보도연맹원·예비검속자들이 계엄 하 국가의 명령에 의해 살해된 사건이다.

비록 계엄 하 전시상황이라 하더라도 형무소 재소자들과 비무장 민간인을 집단적으로 살해한 최종적인 책임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에 있다. 국가는 먼저 이 사건의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2009년 10월 16일, 59년만에 두 번째로 열린 마산민간인학살 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 원불교 교무들이 희생자의 신위 아래에서 명복을 비는 종교의례를 하고 있다.


문제는 이 자리에서 향토사단의 대대장인 강재곤 중령이 대독한 국방부 장관의 사과 수위가 '유감'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사과문 전체 내용 중에서 '사과'라는 단어는 한 군데도 없다.

국방부 장관의 이같은 사과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8년 1월 24일 울산보도연맹 사건 추모식에서 발표한 사과 영상메시지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먼저 강재곤 중령이 대독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사과문 내용을 동영상으로 한 번 보자.

핵심 내용은 "당시의 사정과 사건의 본질이 여하하였든지 간에 많은 분들이 피해를 입으신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며 유감의 뜻을 담아 국방부 장관의 화환을 근정합니다"는 부분이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이미 '사건의 본질'을 '국가가 국민을 불법적으로 살해한 행위'라고 규정했음에도 마치 국방부는 그걸 인정할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다만 '많은 분들이 피해를 입었으니 유감'이라는 것이다.

가해자가 이런 식으로 본질을 흐리면서 얼렁뚱땅 '유감'이라는 말로 넘어가는 사례는 이미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말장난에서 자주 보아온 것이다.

이에 반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야말로 '확실히' 피해자와 그 유가족에게 사과를 했다. 아래는 2008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 동영상이다. (동영상 출처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 동영상에서 보듯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해서 당시 국가권력이 저지를 불법행위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확실한 사과를 했다. 또한 재발방지에 대한 약속도 했다.

이처럼 대통령이 이미 '사과'를 한 일에 대해 장관은 '유감'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대통령이 인정한 일을 장관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김태영 장관이 노무현 정부의 장관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장관이므로, 앞 정권의 대통령과는 관계없다는 말인가?

정권이 바뀌면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해서 국민에게 사과한 것도 '무효'가 되는 것인가? 참 안타깝고도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강재곤 중령이 대독한 김태영 국방장관의 사과문을 자료삼아 올려둔다.

존경하는 마산시민 여러분!
노치수 유족회장님을 비롯한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오늘 위령제에 참석하신 내·외빈 여러분!

우리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의 와중에서 군·경에 의해 일어난 불행한 사건으로 인하여 안타까운 희생을 당하신 영령들의 명복을 삼가 빌며, 유가족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당시의 사정과 사건의 본질이 여하하였든지 간에 많은 분들이 피해를 입으신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며 유감의 뜻을 담아 국방부 장관의 화환을 근정합니다.

국방부는 이번 기회를 통해 여러분들의 피나는 노력과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상규명 결정에 따라 그동안 묻혀왔던 진실이 밝혀짐에 따라 희생자 및 유가족들의 명예가 회복됨은 물론, 희생자들의 넋을 달랠 수 있게 되어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아울러 오늘 이 자리는 우리 군이 국가방위를 확고히 하여 적의 위협으로부터 영토와 주권을 수호할 때만이 이러한 비극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 군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킴으로써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거듭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및 마산시민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번 추모위령제가 국민의 화합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 10. 16.
국방부장관 김 태 영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