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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내가 노무현·김대중 조문하지 않은 까닭 1. 나는 조문하지 않았다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와 마찬가지로 조문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휴대전화를 타고 "그 분 돌아가셔서 무척 슬프다"는 문자가 누군가에게서 들어왔다. 나는 답글을 적었다. "나는 그리 슬프지 않은데. 별로 관계도 없고. 그리고 자연사고, 연세도 높으시고." 김 전 대통령 국장이 치러지기 전날인 22일 여수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이튿날 돌아왔다. 우리가 자동차를 세워둔 여수시청 한쪽 구석에 분향소가 차려져 있었다. 일행은 거기 들러 향을 사르며 조문을 하고 왔다. 그렇지만 나는 거기서 와 한 장씩을 얻어와 펴 놓고 읽었을 뿐이다. 나는 알고 있다. 마음이 따뜻한 수많은 사람들이 평소 김대중이나 노무현과 아무 인연이 없이 살았으면서도 그이들이.. 더보기
조중동은 효순 미선 보도를 어떻게 했을까 효순과 미선이 쓰러지던 날 지금 살아 있으면 십중팔구 대학생이 돼 있을, 그러나 영원히 여중생으로 남아 버린 신효순 심미선. 효순 미선은 2002년 6월 13일 아침 9시 40분부터 10시 사이 경기 양주군 광적면 가마울 마을에서 덕도 삼거리 가는 언덕길에서 길섶을 걸어가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졌습니다. 효순 미선의 목숨은 당시 군사훈련 하던 미군 제2사단 공병대대 44공병대 소속 부교(浮橋) 운반용 궤도차량에 앗겼습니다. 장소는 오른쪽으로 굽어져 야트막한 오르막 차로가 시작된 데서 35m 쯤 떨어진, 곧은 편도 1차로의 오른쪽 길섶입니다. 효순과 미선은 다음날인 효순의 생일과 13일인 다른 친구 생일을 함께 축하하려고 언덕 너머 300m 떨어진 ‘초가집’식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효순 미선을 깔아뭉갠..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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