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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지와 선물 5

촌지 준 공무원의 말에 충격을 받다

기자 초년 시절, 경남도청에 2진으로 출입할 때의 이야기다. 도청의 한 사무실에 취재차 들렀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그 사무실에서 나오는 타 신문사의 한 선배기자와 마주쳤다. 그는 오른손에 쥔 흰 봉투를 양복 안주머니에 집어넣고 있었다. 문 앞에서 선배에게 인사를 한 후 다시 문을 열고 그 사무실에 들어갔다. 경력이 짧은 기자여서인지 그 사무실의 공무원들은 내가 기자인줄 몰랐던 것 같다. 계장 자리에 앉아있던 공무원이 자기 앞에 앉은 공무원에게 말하는 걸 듣고 말았다. "젊은 놈이 돈은 되게 밝히네." 그 때 비로소 깨달았다. 공무원이나 기업체 홍보담당자들이 기자에게 촌지를 주고 난 뒤, 돌아서서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자 촌지에 얽힌 아찔한 추억 사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그런 당연..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보내온 추석선물

어제 저녁에 퇴근해 보니 이명박 대통령 내외분이 보내온 추석 선물이 와 있네요. 대통령의 명절 선물을 받아본 건 처음입니다. 대통령이 명절에 선물을 보내는 대상은 '사회 각계 주요인사와 사회적 배려계층' 6000여 명이라고 하더군요.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전직 대통령과 5부요인, 국회의원, 장·차관, 종교계, 언론계, 여성계, 교육계, 과학기술계, 문화예술계, 노동계, 농어민단체, 시민단체 등 사회 각계각층 주요 인사를 비롯해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환경미화원, 자원봉사자, 의사상자, 국가유공자, 일본군 위안부, 독도의용수비대, 서해교전 및 천안함 희생자 유가족'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편집국장이 되니 저도 '언론계'의 대상에 포함된 모양입니다. 대통령 내외가 보낸 추석 선물은 내용물이 뭘까요? 일단 기..

신문사에 들어오는 선물, 어떻게 처리할까

최근 한 공공기관의 장으로 취임한 분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 분이 난처해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일부는 익명으로 바꿨다.) "내가 ○○○에 와서 곤란한 점은 내부 외부의 선물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휴가 갔다온 직원이 과자를 가져왔고, 해외 출장갔다 온 직원이 ××박물관의 도록과 작은 물건을 가져왔고, △△국에서 멸치 1박스(처에게 물어보니 3만 원이 안 된다고는 하지만)를 받았습니다. 외부적으로 ○○장이 자체적으로 만든 선물(보석함), 그리고 한 기업체에서 화장품 세트를 보내왔습니다. 이럴 경우 경남도민일보에서는 어떻게 처리하는지요. 우리는 외부 부조는 5만원 이하(물론 기관 이름으로 하는 것), 선물도 아마도 어떤 액수 미만만 받도록 규정은 되어 있는 모양인데. 답변 주세요." 빙그레..

기업이 왜 신문기자에게 선물을 보낼까?

오전 11시쯤 낯선 번호가 휴대전화에 떴다. 받아보니 택배 기사란다. "김주완 씨 맞지예?" "예, 그런데요." "택배 배달할 게 있는데, 지금 집에 누가 계십니까?"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최근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매한 일도 없었다. "배달할 물건이 뭐죠?" "아 네, 주류라고 되어 있는데 술 종류인 것 같네요." "보내는 사람이 누구죠?" "○○그룹에서 보내는 건데요. 지금 집에 아무도 없습니까?" "그게 아니라, 죄송하지만 그거 좀 반송시켜주세요." "네? 왜요?" "아, 그거 제가 받고 싶지 않거든요. 다시 보낸 사람 쪽으로 반송할 수 있죠?" "예, 되긴 됩니다만…. 여기 적혀있는 xxx-xxxx 전화번호가 ○○그룹 맞나요?" "예 맞을 겁니다. 거기로 다시 보내주세요." "그럼 배송료는 착불..

진보정당이여, '자발적 왕따'가 되라

기자·공무원보다 못한 진보정당 윤리규정 지난 99년 가 막 창간했을 때의 이야기다. 우리가 '언론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촌지와 향응·선물을 거부한다고 공개적으로 떠들었더니, 기존의 신문·방송사 기자들이 적잖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당시 햇병아리였던 공채 1·2기 기자들은 곳곳에서 노골적인 '왕따'를 당했다. 그 중에서도 당시 창원지방법원 기자실은 문서로 '결의문'까지 만들어 우리 기자를 공식적으로 왕따시켰다. 이를테면 '도민일보 기자는 기자실 차원의 회식이나 오찬간담회에도 끼워주지 않겠다'는 따위의 유치한 내용이었다. 당시 법원 출입기자들이 친필로 연대서명까지 한 그 문서를 나는 아직도 '증거물'로 보관하고 있다. 다른 기자실에서도 여러가지 방식으로 왕따를 당했다. 일부 시·군 중에는 도민일보 기자의 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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