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주완

기업이 왜 신문기자에게 선물을 보낼까?

기록하는 사람 2009. 9. 1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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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쯤 낯선 번호가 휴대전화에 떴다. 받아보니 택배 기사란다.

"김주완 씨 맞지예?"
"예, 그런데요."
"택배 배달할 게 있는데, 지금 집에 누가 계십니까?"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최근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매한 일도 없었다.

"배달할 물건이 뭐죠?"
"아 네, 주류라고 되어 있는데 술 종류인 것 같네요."
"보내는 사람이 누구죠?"
"○○그룹에서 보내는 건데요. 지금 집에 아무도 없습니까?"
"그게 아니라, 죄송하지만 그거 좀 반송시켜주세요."
"네? 왜요?"
"아, 그거 제가 받고 싶지 않거든요. 다시 보낸 사람 쪽으로 반송할 수 있죠?"
"예, 되긴 됩니다만…. 여기 적혀있는 xxx-xxxx 전화번호가 ○○그룹 맞나요?"
"예 맞을 겁니다. 거기로 다시 보내주세요."
"그럼 배송료는 착불로 할까요?"
"예 그러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작년 설에 받았던 한 기업체의 선물.

나는 신문기자다. 벌써 추석 명절 시즌이 되었나 보다. 아직 20여 일이나 남아 있는데, ○○그룹은 참 일찍도 시작한 것 같다. 지난 설이나 작년 명절에도 똑같은 일을 여러번 반복해야 했다.

오늘처럼 택배기사가 배송 전 나에게 전화라도 해줄 경우 보낸 사람에게 바로 반송시킬 수 있지만, 그러지 않고 그냥 경비실에 맡겨놨을 때는 참 난감하다. 다시 택배기사를 불러 배송시키기도 번거로운 일이다.


그럴 경우 회사로 가져가 기자협회에 '처리'를 위탁한다. 기자협회는 나처럼 기자회원들이 불가피하게 받은 명절 선물을 '아름다운 가게'나 사회복지시설에 기탁하는 방식으로 처리한다. 기자협회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것도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다. 보낸 기업체나 관공서의 입장에서는 기자들이 그냥 순순히 받아먹은 걸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 신문사는 촌지나 선물 안 받는다고 하더니, 보내니까 받긴 하네."

오늘 나에게 술을 보내려고 했던 그 기업체는 나와 아무런 연고가 없다. 거기 임직원 중에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도 없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내 직업이 기자이므로 '업무상' 아는 관계일 것이다. 게다가 나는 경제부나 사회부처럼 그 기업을 취재할 일도 없는 부서의 데스크다. 그럼에도 그 기업체는 내 휴대전화 번호는 물론 내가 사는 집 주소까지 알고 선물을 보내려 했다.

기자의 전화번호쯤이야 반쯤 공개된 것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내 주소는 어떻게 알아냈을까? 누가 가르쳐줬을까? 참 대단한 기업이다.

관공서나 기업체로부터 받은 선물을 아름다운 가게에 기탁한 후 받은 영수증.


어쨌든 나는 그런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선물을 받을 이유가 없다. 보내는 입장에선 분명히 '잘 봐 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면식도 없는 내게 이런 걸 보낼 까닭이 없다. 1억이나 2억 원 정도 된다면 모르겠지만 고작해봤자 10만 원 안팎의 선물이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괜히 받아서 불편한 마음과 신경쓰일 일이 10만 원보다 더 크다.


내가 기자로서 일한 대가는 나를 고용한 신문사에서 받으면 된다. 설사 과거에 내가 썼던 기사 중에 그 기업이나 관공서에 도움이 된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건 신문기자로서 한 일이지 내 개인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내가 하는 업무와 관련하여 굳이 감사 표시를 하고 싶다면, 우리 회사에 하면 된다. 신문사에 감사표시를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광고'를 주는 것이다. 그러면 이처럼 불편한 선물보다 훨씬 고마워할 것이고, 일반 국민에게 기업 이미지도 좋아질 것이다. 광고료가 선물 비용보다 비싸다면, 신문 한 부라도 더 구독해주면 좋겠다. 양주 한 병 값이면 1년 구독료는 족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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