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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원님은어떻게다스렸을까 3

함안총쇄록 답사기 (19) 비 올 때까지 지냈던 코리안기우제

가물 땐 깜깜무소식 비 올 땐 억수처럼 경국대전은 최대 12차례 규정했지만 오횡묵은 공식 13차례 비공식 2차례 “몰래 쓴 무덤 부정 탄다”며 모두 파내고 신령·용 얽힌 영험처 옮겨 다니며 기도 해갈된 뒤엔 닷새 폭우로 수재도 겪어 가뭄은 예로부터 인간 사회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주는 엄청난 자연재해였다. 그나마 요즘은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나름대로 대응할 방책이라도 있지만 옛날에는 그대로 꼼짝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재난을 맞닥뜨리면 대부분 백성들은 처음에는 나름 이겨내려고 애를 쓰지만 한계를 넘으면 임금이나 수령을 원망하기 마련이다. 조세를 거두고 지배하고 명령하고 집행했으면 그에 걸맞게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임금이나 수령인들 별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효과가 있든 ..

함안총쇄록 답사기 (18) 지역민 사랑 독차지한 원효암·의상대

남녀노소 즐겨 찾으니 절 문턱 맨들맨들 소박한 당시 유일 사찰 칠석날 어린아이도 치성 수령도 시주에 적극 동참 원효암(元曉菴)과 의상대(義相臺)는 여항산이 북쪽으로 뻗어내리는 미산(眉山) 골짜기 가파른 비탈에 붙어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일대에서 북한군과 유엔군이 격전을 벌이는 바람에 불에 타서 칠성각(七星閣)만 빼고 옛날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원효암과 의상대는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 한적하다. 하지만 130년 전 오횡묵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 콘크리트 좁은 도로를 한참 올라가야 하는 깊은 산속인데도 그때는 그랬다. 오횡묵은 여기서 재를 지내기도 하였고 일반 백성들 또한 친근하게 여기며 즐겨 드나들었다. 오횡묵이 치성 들였던 자리 1890년 1월 22일 아침 오횡묵은 왕대비의 생일을 ..

가본 곳 2023.05.28

함안총쇄록 답사기 (17) 한강 정구 놀았던 멋진 별천계곡

명망 두터웠던 선배 군수 한강 정구 즐겨 찾던 유적에 흔적 뚜렷 오횡묵, 여러 번 들러 찬양 글자 새기고 시집도 펴내 오횡묵보다 300년 가량 앞선 시기에 함안에서 군수를 지낸 인물로 한강 정구(寒岡 鄭逑 1543~1620년)가 있다.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 모두에게서 배웠고 따로 한강 학파를 이룰 만큼 대단한 사람이었다. 역대 함안군수 가운데 인품과 학문이 가장 빼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함안 사람들은 지금도 한강 정구를 많이 기억하고 높이 받들고 있다. 한강 정구의 작품 함안 사람들에게 정구는 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함안군수로 있으면서 지역 역량을 끌어모아 를 편찬했던 것이다. 함안의 산천과 인물·문화·산물을 담은 함주지는 지금껏 남아 있는 우리나라 읍지(邑誌) 가운데 가장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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