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인종주의

양계초는 리영희 선생께 우상일까 이성일까 양계초(량치차오 梁啓超 1874~1929)는 강유위(캉유웨이 康有爲 1858~1927)의 제자입니다. 나이 차이는 16살밖에 나지 않지만 둘은 스승과 제자로 만났습니다. 이들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나름대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입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봉건제를 타파하고 개혁을 하는 데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한계는 당대에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요즘 들어서는 그이들이 바탕삼았던 논리 가운데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핵심으로 삼은 사회진화론도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들의 인종주의 관점도 잘못이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백인종의 세계 지배 그리고 아시아 침략을 막기 위해 황인종끼리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폭력적일 수 .. 더보기
장지연은 왜 친일지식인이 되었나 장지연은, 변절한 적이 없다 1864년 태어나 1921년 세상을 떠난 장지연이 4월 29일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사 명단에 들어갔습니다. 장지연을 두고 항일에서 친일로 변절했다고 보는 이들이 많은 편이지만, 사상 측면에서 보면 처음과 끝이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바뀌었다고 보는 근거는 바로 1905년 을사늑약을 비판하는 장지연의 ‘명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 에 실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이렇게 일본에 맞섰지만 나중에 경술국치를 겪고 합방이 되니 일제 통치에 협력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장지연은 처음부터 ‘친일’이었습니다. 장지연이 사회진화론과 인종주의에 빠져 있었음은 그동안 우리 역사학계가 밝혀놓은 뚜렷한 사실입니다. 러일전쟁이 한창인 때인 1904년 장지연..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