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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음각 2

가야 역사의 마지막을 수놓은 창녕과 고령

창녕을 두고 ‘제2의 경주’라고도 합니다. 규모나 내용으로 보면 둘은 비교 대상이 못 됩니다. 그러나 경주와 견주는 그것만으로도 창녕이 지닌 가치와 의의가 크다는 얘기가 됩니다. 신라·백제 문화보다 훨씬 덜 알려진 가야문화가, 500년대 들어 신라·백제의 각축 사이에서 거점 노릇을 했던 창녕에, 지나간 역사의 보석 같은 흔적이 되어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창녕은 태백산맥을 등으로 삼고서 서쪽으로 낙동강 건너 고령·합천, 남쪽으로 같은 창녕의 영산과 밀양·함안 등 주변 지역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요지랍니다. 창녕을 확보하면 낙동강 본류를 가운데 두고 함안의 안라가야와 고령의 대가야를 동시에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습니다. 신라 진흥왕이 가야 진출의 교두보로 창녕을 병합하고 척경비를 세운 까닭이 여기에 있..

사랑하는 관룡사

제 고향 창녕에는 관룡사라는 절간이 하나 있습니다. 창녕읍 옥천 골짜기에 있습니다. 어릴 적 ‘국민’학교 시절에는 6학년이 되면 이곳 관룡사로 창녕군 모든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오기도 했습니다. 쌀 두 됫박씩을 숙박비로 내고서 말입니다. 저랑은 인연이 깊은 절입니다. 고3이던 81년 봄과 여름에, 제가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엄청난 일을 겪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어버이께서 저를 이 절집에서 두어 달 묵게 하셨습니다. 허리가 너무 아파 약사전 약사여래불 앞에서 밤새도록 염불을 바치시던 젊은 스님이랑 부산 출장이 잦으셨던 주지 스님, 지금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군요. 같이 요사채에 머물던 철학 경제학 공부하시던 대학생 형도 무엇 하시는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스물여섯 늦은 나이에 대학 입시를 ..

가본 곳 200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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