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오우선생약전비

나고 자란 우리 밀양 이 정도는 알아야지 3 밀양청소년희망탐방대-작원잔도·삼랑창·삼랑진역밀양에서 삼랑진 일대는 독특한 지위를 차지한다. 밀양이 옛날부터 교통요충지임을 알려주는 유적들 때문이다. 전통시대에 동래~서울을 이었던 동래로에서는 작원잔도가 요충이었다. 여기를 한 사람이 막으면 열 사람 백 사람도 지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작원관을 세우고 지켰다. 같은 전통시대 물길에서는 삼랑창이 핵심이었다. 영조임금 때인 1765년 조정에서 삼랑진에 조세창고를 설치했다. 삼랑창 또는 후조창이라 했다. 밀양을 비롯한 여러 고을에서 생산한 곡식과 베, 특산물을 모았다가(가을까지) 남해와 서해를 거쳐 서울까지 배편으로 실어날랐다(겨울 또는 봄에).삼랑진역은 경술국치 직전에 생겨났다. 일제는 1905년 경부선 철도를 개통하고 삼랑진에 역을 내었다. 동시에 이 삼랑.. 더보기
가식과 위세가 없으면 왜 심신이 편해질까? 밀양 삼랑진읍 삼랑리 상부마을에 갔더니 ‘후조창 유지 비석군’이 있었다. 옛적 고을 수령 선정을 기리는 이른바 선정비들이다. 삼강사비 있는 오우정으로 올라가는 언덕배기 꺾어지는 길목이다. 후조창은 1765년 여기에 설치되었던 조창인 삼랑창을 일컫는 말이다. 조창(漕倉)은 지역에서 조세로 곡식·면포·특산물을 걷어모아 쌓아두는 창고를 말한다. 경남에는 사천 가산창과 마산 마산창(또는 석두창, 1760년 설치)과 더불어 삼랑진 삼랑창 셋이 있었다. 가산창은 임금이 있는 서울에서 볼 때 오른쪽에 있기 때문에 우(右)조창, 마산창은 그 왼쪽에 있어서 좌(左)조창, 삼랑창은 바다가 있는 앞쪽이 아니라 그 뒤쪽인 내륙에 있었으므로 후(後)조창이라 했다고 한다. 가장 안쪽에 바위가 하나 있다. 거기에는 崇梅臺(숭매대)..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