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행정·정당, 그리고 언론에 분노 폭발 6·10마산대회의 절정은 마산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국제축구대회가 최루탄으로 인해 중단된 것이었다. 이로 인해 마산대회는 국내·외 관심의 초점이 됐다. 오후 6시30분 마산 창동 코아제과 앞 도로를 거쳐 육호광장으로 진출하던 시위대는 가로막고 있던 경찰을 투석으로 돌파하고 일시에 광장을 점거했다. 박영주씨의 기록에 따르면 이 광장에서 시위대는 어디로 갈 것인지 잠시 논란을 벌였던 것으로 돼 있다. 만일 시위대가 운동장 쪽으로 가지 않고 마산역 방향으로 갔더라면 이날 시위는 싱겁게 마무리되고 말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위대는 운동장 쪽을 택했다. 87년 6월항쟁의 역사 중 17일 경상대생의 남해고속도로 LP 가스차 탈취사건과 함께 전국의 시위 열기에 가장 큰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