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옛 농사 이야기-소농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김훤주 2018. 3. 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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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식 선배가 쓴 책 <옛 농사 이야기>를 읽었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옛 농사 이야기-사람 땅 작물 모두 돌보는 전통 농사살림>이다. 석 달 전에 읽었는데 글은 이제야 쓴다. 나는 게으르다. 옛날 사람들이 지었던 농사를 돌아보면서 오늘날에 되살리자는 이야기였다


사실 지금 농사는 농사가 아닌 것이 맞다. 거의 공업 수준이고 논밭은 공장과 마찬가지가 되었다. 모종은 공장 같은 육묘장에서 길러진 녀석을 산다. 논밭에는 비료와 농약을 정해진대로 집어넣어 땅심이 아니라 비료힘으로 자라게 한다. 그렇게 일정 기간 기른 다음 뽑아내어 내다판다. 기후 영향을 덜 받게 하기 위하여 치는 비닐하우스는 상식이 되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모작 삼모작이 최대치였지만 요즘은 심한 경우는 27모작까지 한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서 원래 농사가 갖추고 있던 여러 미덕들을 그대로 실현하려면 옛날 농사로 돌아가는 것 말고는 답이 없기는 하겠다


이처럼 사람도 살리고 땅도 살리고 물도 살리고 곡식도 살리고 공기도 살리는 농사는 이미 40년 전에 끝장났다. 대신 크게 보면 대형 매장을 중심으로 한 유통시스템에 맞추어 모든 농작물의 경작·생산 주기가 결정되는 식으로 바뀌었다. 이런 유통시스템에 맞추다 보니 사람도 살리고 땅도 살리고 물도 살리고 곡식도 살리고 공기도 살리는 농사는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전희식 선수는 옛날 농업으로 돌아가자면서 옛날 농업을 최대한 재현해 놓고 있다. 겨울 봄 여름 가을 네 철이 한 바퀴 도는 동안 농촌에서 옛날에 이루어졌던 갖은 모습들을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그려서 보여준다


1. 가능하지 않은 도전 


내가 보기에 이것은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 세우는 혁명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삼성재벌을 타도하고 그 재산을 국유화하는 것이 이보다는 더 손쉽다


우리나라 농업은 내가 알기로 이미 규모의 농업으로 접어들었다. 논농사도 밭농사도 벌써 그런 쪽으로 나아갔다. 온갖 기계를 쓰고 갖은 화학물질을 쓰는 한편으로 노동력 투입은 크게 줄임으로써 생산 단가를 크게 낮추었다더하여 앞에서 일러둔대로 같은 농토에서 27모작까지 작물을 뽑아냄으로써 농지생산성을 크게 높였다


이렇게 생산된 공산품 같은 농작물은 대부분이 서울에 일단 집결되었다가 전국 각지로 흩어지면서 저렴하게 유통이 된다


이런 규모의 농업이 기승전결 전개되는 데에 소농은 어느 한 순간도 맞설 수 없다. 출발하기 전에 이미 패배하고 있는 소농이다. 지금과 같은 세상이 유지·존속되는 한 소농은 결코 주류가 될 수 없다. 규모의 농업으로 생산한 것들이 훨씬 싸고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비자 입맛 또한 그에 맞추어 바뀌어져 있다


2. 전희식은 느긋하다 


옛날 농업으로 돌아가야 하고 소농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규모의 농업과 맞선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지고 시작하는 싸움이다. 그런데도 전희식은 실망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유유자적하게 자신의 일상을 그려 보여주고 옛날 농사짓는 방식을 자기가 아는 범위에서 되살려 보여준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전희식에게는 절망도 없고 희망도 없다. 유채색이 아니라 무채색으로 그린 그림이다. 전희식은 규모의 농업이 힘이 쎄기는 하지만 자신이 소농 농사를 짓는 것과 소농 농사가 옳고 좋다고 주장하는 것을 중단시킬 수는 없음을 알고 있는 듯하다


전희식 선수는 자기가 또는 다른 어떤 사람이 한 한 명이라도 소농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소농식 농사짓기를 이 땅에서 실현하고 있다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어쩌면 후천개벽을 꿈꾸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이대로 규모의 농업이 점점 더 대세를 굳히게 될수록 그 농업은 점점 더 지속가능성에서 멀어지게 된다. 언젠가는 땅은 굳어서 숨 쉬지 못할 것이며 물은 오염될 것이며 씨앗은 건강함을 잃어 제대로 싹트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갈 데까지 간 다음 끝장을 보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것이 바로 후천개벽이다. 한 세상이 망하고 나서야 새 세상이 열리는 법이다. 어쩌면 전희식 선수는 이 후천개벽이 올 때까지 소농이라는 씨앗을 보듬고 지키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3. 느낌이 아련하다 


나는 1960년대 농촌에서 태어나 70년대까지 거기서 자랐다. 이런 내게 <옛 농사 이야기>는 절반은 겪었던 일이고 절반은 말로만 들은 일이다. 60년대생은 70년대 농경사회의 마지막을 10대 시절에 치러낸 세대다농경을 일상과 노동에서 조금이나마 체득한 마지막 세대다


그래서인지 여기에 나오는 여러 설명과 풍경들이 애잔하고 아련하다. 한편으로는 그 때 가난과 추위가 싫으면서도 그 때 사람들 사이 함께함과 넉넉함이 그립기도 하다. 찬찬히 한 번 읽어보면서 느낀 바가 적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는 읽어도 다른 느낌이 들겠지 아니면 아무 느낌도 없을 수도 있을 테고. 그러나 그이들에게도 책을 읽는 보람은 있다. 아~ 옛날에는 이런 식으로 농사를 지었구나 하는 생각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밖에도 전희식 선수 따님이 그렸다는 삽화들에도 눈길을 줄 만하다(개인적으로는 부녀/모자/부자/모녀지간 등 집안 식구들끼리 하는 공동 작업을 좋아하지 않지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마음 한 쪽이 아파오는 그런 것이 몇몇 있더라


지금 농사를 짓고 있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앞으로 농사를 지으려 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여태 농사를 짓다가 그만두었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소농의 가치를 인정하거나 소농의 가치를 알아보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들녘에서 펴냈다. 가격은 1만2000원.


, <옛 농사 이야기>에서 농사는 봄철에 시작하지 않는다. 이미 겨울에 시작되었다. 입춘이나 춘분이 아니라 겨울의 한복판이라 할 동지에 다시 새롭게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것처럼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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