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으로 이뤄지는 경남도민일보의 청소년 기자단 활동은 올해로 다섯 번째다. 주제를 하나 잡고 그에 따라 지역을 정하여 취재도 하고 기사까지 작성하여 편집까지 마친다. 주제는 2013년 도랑 살리기, 2014년 에너지 지킴이, 2015년 우리 강 지킴이, 2016년 지역 역사 알림이였다.
올해는 주제를 지난해와 같이 지역역사 알림이로 잡았다. 학교 교육에서 사각지대처럼 비어 있는 데가 지역역사다. 그래서 지역 아이들은 자기 지역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자기 지역을 자랑스러워하거나 소중하게 아끼는 마음도 생겨나 있지 않다. 이런 허점을 지역 신문사가 채워주는 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당연하다.
경찰관 아저씨한테 물었다. 친절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일러주는 데는 경찰관 아저씨들이 실패했다.
지난해까지는 이틀 일정으로 진행했다. 하루는 취재하고 이튿날은 신문 제작을 했다. 올해는 전부 하루에 몰아서 했다. 취재는 오전에 하고 오후에는 기사 쓰기와 편집을 했다. 둘 모두 장·단점이 있다. 이틀 동안 하면 멀리까지 가서 여유롭게 경남 전역을 둘러볼 수 있는 반면 긴장감이 떨어지고 밀도가 낮아진다. 대신 하루로 압축하면 멀리 가지 못하고 해당 시·군만 한정적으로 둘러볼 수밖에 없는 반면 진행이 빈틈없이 밀도 있게 된다.
같은 비용으로 하기 때문에 이틀 일정으로 했던 지난해는 여섯 차례만 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그 세 배인 열여덟 차례를 할 수 있었다.
옛 마산시와 진해시, 창원시가 합해져 통합 창원시가 된 올해로 8년째다. 하지만 자기가 살지 않는 다른 지역에 대하여 같은 창원이고 거기 사는 사람도 같은 창원시민이라 여기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옛 창원 아이들이 옛 진해나 옛 마산을, 옛 진해 아이들이 옛 마산을, 옛 마산 아이들이 옛 진해를 둘러보면 그 지역에 어린 역사도 알고 그 지역도 같은 창원이라는 동질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315의거 발원지에서.
자기가 사는 지역이라 해도 역사라는 관점을 가지고 살펴본 적이 아이들한테 별로 없다. 옛 마산에 사는 아이들은 일상 속에 창동·오동동을 찾아간 적이 없지 않지만 거기에 어떤 역사적 사실이 어려 있고 역사 유적이 남아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옛 진해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중원로터리를 중심으로 하는 진해 옛 시가지를 거닌 적이 없지는 않지만 거기에 어린 역사와 유적은 알지 못한다. 옛 진해 아이들이 진해 옛 시가지를, 옛 마산 아이들이 마산의 창동·오동동을 찾아 취재 활동을 벌이는 보람은 자기 사는 지역을 제대로 깊숙하게 알 수 있게 된다는 데에도 있다.
진해탑 전망대에서 진해시가지를 내려다보는 모습.
창동·오동동에서는 옛 시민극장, 가장 오래된 서점, 옛 마산형무소 터, 3·15의거 발원지, 위안부소녀상, 조창 터, 315꽃길(골목), 원동무역주식회사 표지석 등을 찾아보게 했다. 진해 옛 시가지에서는 진해탑 꼭대기에 올라 시가지 전체를 눈에 담고 진해박물관을 문제를 풀며 간단하게 살펴본(석동중은 웅천읍성) 다음 문화공간 흑백, 진해우체국, 시월유신기념탑, 팔각정(새 수양회관), 백범 김구 친필시비, 원해루 등을 찾아보게 했다.
어른이 앞장서서 데리고 다니는 대신 스스로 보고 물어서 찾고 사진찍고 기록하는 식으로 했다. 이런 미션을 마친 다음에는 함께 모여 하나하나 그에 얽힌 역사 사실과 그 의미 등을 공유했다. 그러고 나서 모자라거나 빠진 구석에 대해서는 묻고 답하기를 진행해 보충했다. 아이들은 돌아보면서 자기가 기사를 써야지 마음 먹은 부분에 대해서는 좀더 집중력을 높여서 듣고 질문하고 메모했다.
어떻게 쓰면 좋을는지 애기했지만 그런 따위는 별 소용이 없었다. 체험으로 느끼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
기사 쓰기와 신문 편집은 점심을 먹고 학교로 돌아와서 오후에 했다. 먼저 이렇게 일러주었다. '물론 틀리지는 말아야 하지만 팩트는 중요하지 않다. 팩트는 손가락만 까딱하면 언제나 어디서나 넘치도록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자기 아니면 느끼지도 못하고 표현도 할 수 없는 소감이나 관점이 살아 있어야 좋은 글이다. 6하원칙이나 문법 또한 별로 중요하지 않다.'
기사 쓰기와 신문 편집 모두를 두 시간 안에 끝내도록 했다. 사실 시간을 넉넉하게 주어도 별 소용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요하게는 마감시한이 주는 중압감과 초조함을 제대로 느껴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원동무역터에서. 일제강점기 조선 사람들은 주식회사조차도 함부로 설립할 수 없었다.
또 이렇게 시간을 한정해놓고 쓰게 하면 글을 써내는 힘이 커지는 효과도 있다. 실제로 심장이 쪼그라들고 손에 물기가 흥건해지는 순간이 있었다고 고백하는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말하자면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지만 마지막에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마칠 수 있었다. 편집까지 모두 끝낸 다음에는 품평을 거쳐 신문을 짜임새 있게 잘 만든 모둠과 좋은 기사를 생산한 개인에게 5000원짜리 상품권을 하나씩 선물했다. 자기 지역 역사도 나름 알아보고 취재에서 기사 작성을 거쳐 편집까지 신문 제작 전체 과정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나날이었다.
신문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
마산 창동·오동동은 팔룡중·제일여중·마산동중·합포중·도계중·마산중·대방중·동진중·창원남중·반송중이, 진해 옛 시가지는 동진여중·경원중·상남중·석동중·호계중·양덕여중·창신중·무학여고가 찾았다.
김훤주
※11월 30일치 경남도민일보에 실은 기사입니다.
'지역에서 본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고 자란 우리 밀양 이 정도는 알아야지 1 (0) | 2017.12.24 |
---|---|
나고 자란 우리 사천, 이 정도는 알아야지 (0) | 2017.12.23 |
통신요금 미환급금 조회로 21만 원을 벌었다 (0) | 2017.12.13 |
후보자는 물론 언론사 기자도 꼭 알아야 할 선거판 이야기 (0) | 2017.12.02 |
23년 전에 썼던 기사 '근로자도 부익부 빈익빈' 지금은? (0) | 2017.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