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닮고 싶은 전라도 섬 강진 가우도

김훤주 2017. 2. 4.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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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 전라도 나들이에서는 강진의 가우도도 찾았다. 오전에 토도를 둘러보고 같은 강진의 백련사를 들른 다음 세 번째로 찾았다. 한 바퀴 둘러보고 난 소감은 이랬다. 우리 경남에서도 섬 가꾸기를 한다면 가우도처럼 하면 좋겠다.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출렁다리 

가우도는 강진만 한가운데 있다. 강진만은 강진군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말하자면 강진만이 강진군을 동서로 갈라놓고 있는 셈이다. 서쪽 신전면에서 동쪽 마량면으로 가려면 강진읍내를 거쳐 한 바퀴 빙 돌아야 한다. 

이런 번거로움은 강진만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하나 놓으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한가운데 떠 있는 가우도라는 섬을 징검다리 삼으면 좀더 쉽게 다리를 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물론 가우도에도 동서 양쪽으로 다리가 있다.(동쪽 다리는 500m 가량, 서쪽 다리는 700m 정도) 그리고 그 다리는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것이었다. 오토바이조차 못 다니도록 되어 있었다.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는 모양인지 뽈뽈이가 이따금씩 지나다녔는데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다리 하나가 섬과 섬마을을 규정한다. 자동차가 주로 다니는 왕복 2차로를 만들었다면 섬은 크게 망가졌을 것이다. 가우도는 도로 때문에 절반 가량을 진출·입 도로로 내주어야 했을 것이고 주차장 또한 해안·갯벌을 널찍하게 갉아먹었을 것이다. 

마삭줄로 뒤덮인 돌담장.

멋진 둘레길과 이어지는 출렁다리 

다리가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지는 덕분에 가우도는 망가지지 않았다. 게다가 사람이 걸어다니는 이런 다리는 그 자체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물이 되었다. 

다리를 따라 가우도로 들어가면 둘레길과 이어졌다. 둘레길은 가우도 섬을 한 바퀴 빙 둘렀다. 3km가 될까 말까 한 둘레길에는 바위가 무성한 갯가가 있었고 갯벌이나 모래사장이 펼쳐지는 데도 있었다. 강물과 바다가 맞부딪히는 강진만은 바닷물 파도 소리가 우렁차고 씩씩했다. 

게다가 가우도 둘레길은 높낮이가 가파르지 않아서 걷기에 안성맞춤으로 좋았다.(가장 꼭대기에는 동쪽 바다 건너편으로 '짚트랙'이 운영되고 있었다. 지나칠 때 보니 적지 않은 친구들이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거기 매달려 소리를 지르며 활강하고 있었다.) 

자동차가 한 대도 없는 가우도 

무엇보다도 둘레길에는 자동차가 단 한 대도 없었다. 당연한 노릇이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없으니까 어떤 자동차도 섬마을로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이다. 기껏해야 오토바이가 몇 대 움직일 뿐이었다. 

서쪽과 동쪽에 있는 부두를 통해서도 자동차가 오가지 못했다. 물건이나 사람 정도만 태울 수 있을 뿐 자동차를 싣기에는 배가 지나치게 작은 것이다. 

자동차가 한 대도 없는 마을을 보고 싶으면 가우도에 가면 된다. 가우도는 자동차가 없는 덕분에 모난 구석도 없고 험한 구석도 없는 듯이 보였다. 

마을에 남아 있는 명물들 

가우도는 마을도 멋졌다. 가우도를 찾은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 멋진 마을을 제대로 둘러보지 않았다. 힐끗 눈길만 한 번 던지고는 그냥 스쳐지나갔다. 

오른쪽 아래에 개구멍이 보인다. 실은 물 빠지는 구멍일 것이다.

먼저 돌담장이 좋았다. 아래쪽에 개구멍을 하나 낀 돌담장도 있고 마삭줄에 온통 뒤덮인 돌담장도 있었다. 여기도 명색 바닷가라고 바람이 드센 때문인지 돌담장들은 하나같이 두터웠다.

어떤 집 행랑채에는 평상이 한 쪽으로 세워져 있었다. 지난 여름 무더운 시절 평평하게 펼쳐진 평상이 겹쳐보였다. 할매들 무심한 표정 늘어진 살거죽 한가로운 부채질도 함께 떠올랐다. 넉넉한 웃음도 여기서 터졌을 테고 때로는 살벌한 악다구니도 울렸을 평상이겠다.

한 집 건너서 보니까 집안 구조가 색달랐다. 옛날 집은 부엌이 맨 오른쪽 구석에 있고 또 신발을 신고 드나들게 되어 있는데 이 집은 그렇지 않았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부엌이지 싶었는데 거기는 신발을 벗고 마루 위로 올라와야 했다. 

어떤 집 하나는 팔작지붕 아래 기와로 만든 꽃무늬 아래 지게가 눈길을 끌었다. 요즘 지게는 짐을 올릴 수 있도록 둘로 갈라지는 부분이 자연 상태 나무로 되어 있는 경우가 드문데 여기는 그렇지 않았다. 

지게 위에 올리는 바지게는 더욱 독특했다. 내가 알기로 바지게는 대부분 싸릿대로 만들지만 가우도 바지게는 대나무를 찌고 다듬어 만들었다. 가우도는 아마 싸리는 적게 나고 대나무가 많이 나는가 보다. 

바지게는 어쨌거나 싸릿대로 만드는 것이 대나무로 만드는 것보다 쉽다. 싸릿대는 그냥 대충 잘라서 묶으면 되지만 대나무는 물에 적시고 얇게 저민 다음 아래위로 서로 어긋나게 짜야 한다. 품이 훨씬 많이 드는 것이다.

상록수가 보기 좋은 가우도 

고개를 돌려보니 언덕배기에 나무가 둘러서 있었다. 비어 있는 한가운데가 서늘하고 그윽했다. 무리를 지어 있는 나무들은 가는 줄기를 하늘로 뻗어올렸고 하얀 빛이 그런 사이로 조각조각 스며들고 있었다. 

가장 멋진 풍경은 가장 윗집에 있었다. 마당 이쪽으로 수돗가가 있고 그 너머에 평상이 놓여 있다. 평상은 푸른 잎을 매단 상록수 가지가 완벽하게 감싸고 있다. 평상 표면에 깔린 대나무는 상록수 잎사귀와 조화를 이루며 빛나고 있다. 

상록수 뒤쪽으로는 쏟아지는 햇살이 맑았다. 햇살은 살림집을 만남으로써 일정한 형태로 가두어지면서 안정감을 얻었다.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푸근해지는 일상의 모습. 제대로 남아 있는 사람살이의 모습. 언젠가는 사라지고 없을 따뜻한 모습.

마을사람들이 공동 운영하는 가게

이윽고 출렁다리 근처로 돌아왔다. 출렁다리 시작되는 자리에 가우도 마을 사람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하나 있다. 낙지 조개 따위 해물은 마을 앞바다에서 거둔 것이라 더없이 싱싱했다. 한 시간 남짓 생낙지와 삶은 조개를 먹은 다음 3만원인가를 주었는데 전혀 아깝지 않았다. 

섬마을에 마을사람들이 운영하는 가게가 있는 경우도 요즘은 썩 많지 않다. 유명한 데일수록 바깥사람들이 자본을 들여와 차린 가게가 대다수다. 가우도는 가게 수익이 마을사람들한테 돌아간다. 협동조합 방식인 것 같았는데 그러면 수익이 좀더 골고루 돌아간다. 이 또한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 

서쪽으로 나 있는 출렁다리를 건넜다. 저무는 해를 안은 채로 걸을 수 있었다. 바닷물이 한창 빠지고 있었는지 너른 바다 쪽으로 쓸려내려가는 파도소리가 대단했다. 바람은 그다지 심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해가 저무는 때문인지 쌀쌀한 느낌이 좀더 많아져 있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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