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영화 자백, 남우주연상과 조연상은 누구?

김훤주 2016. 10. 1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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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백>을 봤다. 자기가 한 자백과 싸워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자백은 자백이 아니었다. 강제 자백이었다. 강제 자백은 조작이었고 고문이었다. 강제와 자백이 이렇게도 어울릴 수 있다니 참으로 놀라웠다. 

영화에는 많은 인물들이 나왔다. 유오성-유가려 남매가 간첩으로 조작된 시점을 기준으로 삼자면 그이들 이전 사람이 많았지만 그 후에 자백으로 간첩이 조작된 사람도 있었다. 1970년대 박정희 독재 시절에 조작된 간첩들도 나왔다. 영화 자백은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1. 최승호는 올해 남우주연상감

최승호PD는 올해 모든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주어야 맞지 싶다. 국정원을 취재할 때 김기춘을 취재할 때 원세훈을 취재할 때 그이는 무척 돋보였다. 최승호PD는 웃으면서 사람 코피도 터뜨리고 나아가 죽이기까지 할 줄 아는 킬러였다. 코피 터지는 사람이 자기가 왜 코피가 터져야 하는지 알게 만들고 죽는 사람이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 알게 만드는 그런 킬러였다. 

그러나 최승호는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 웃는 낯으로 김기춘 원세훈 그밖에 사건 담당 검사 모든 사람을 만나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 끌어들였고 그 덕분에 영화가 생생할 수 있었다. 그 자연스러운 연기는 정말 놀라웠다.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가 막히고 분노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최승호PD는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단 한 번도 인상을 찡그리지 않았다.(탈북해 들어왔다가 간첩으로 조작당하는 기미가 보이자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자살한 한종수씨의 죽음을 이북에 있는 그이 딸에게 전하는 장면에서는 잠깐 흔들렸지만 이것은 그이 연기의 약점이 될 수는 없었고 오히려 미덕으로 쳐야 마땅하리라.) 

만약 올해 어떤 영화제가 열린다면 그 영화제에서 최승호 선수한테 남우주연상을 주지 않으면 그것은 사기다. 아니면 박근혜 조작을 받았거나. 

2. 연결이 무겁지 않고 가벼웠다

여러 거짓 자백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무겁지 않았다. 과연 최승호 선수는 영화를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재미에 치중한다. 아무리 사회성·정치성이 짙은 영화라도 사람들은 재미가 없으면 등을 돌린다. 

최승호는 동물이었다. 그런 재미를 무서운 야생 동물의 본능에 가까운 감각으로 찾아내어 영상에 담았다. 그래서 주제나 영상이 무거운 영화인데도 곳곳에서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3. 원세훈·남재준 국정원장과 중정 대공수사국장 김기춘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원장이 그렇게 웃기는 존재인 줄 이번에 알았다. 원세훈과 남재준은 아마 남우조연상을 주어도 누구나 아깝지 않을 존재였다. 

남재준은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유우성-가려 형제를 거짓 간첩으로 만든 데 대해 사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재준은 사과만 하고 기자들 질문은 무시하고 회견장을 떠났다. 남재준을 뒤좇는 카메라가 있었는데 그 공허함이란. 남재준은 국가정보원을 대표해 그런 따위 사과에는 진정성이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카메라 워크의 승리다. 

영화를 보면 이보다 더 웃기는 장면이 나온다. 푸하하하하!!!!

이 가운데 원세훈이 가장 웃겼다. 그렇게 웃기도록 만든 일등공신은 남우주연상감인 최승호PD다. 물론 최승호PD에게만 공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비열한 웃음을 우리가 보고 누리도록 한 것 또한 카메라 워크였다. 그 대단한 카메라 워크를 해낸 인물을 나는 한 순간에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김기춘. 다들 비겁했지만 김기춘은 비교 대조 견적이 불가능할 정도로 비겁했다. 이 비겁함이 카메라에 담기도록 한 주인공 역시 최승호 PD다. 남우주연상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 연사 피터지게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어떤 영화제든지 남우주연상을 최승호PD 몫으로 삼지 않으면 그 영화제는 비열하고 비겁하고 쪽팔리는 영화제가 될 것이다. 

최승호 선수가 돋보이는 장면.

김기춘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중정 국장을 했으면서도 수사한 적조차 없다고 했다. 말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수사 책임자가 이렇게 이야기하다니 얼마나 쪽팔리는 노릇이냐는 것이다. 남의 자지를 흔들고 붙잡아온 여자를 강간하고 해서 만들어낸 작품이 재일동포 조작 간첩이었으니까. 

원세훈한테 최승호PD는 사과를 요구했다. 웃는 낯으로. 목소리 또한 전혀 높이지 않으면서. 그러나 원세훈과 그 일당은 우산으로 원세훈 선수를 가린 채 마구 나아갔다. 최승호PD는 끈질기게 물었고 그러는 한 순간 카메라 작업을 하는 한 사람이 우산을 치켜 들었다. 가림막이 치워지면서 나타난 원세훈 얼굴의 비열함이란!!!  원세훈은 이 세상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비열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4. 관객들은 분노하지 않았다

최승호PD는 정말 뭔가를 아는 사람이었다. 분노는 힘이 약하다. 즐거움과 재미가 그보다 더욱 힘이 세다. 최승호는 자신과 카메라 워크를 통해 남재준과 원세훈과 김기춘을 비웃도록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분노하면 지는 거다. 제 풀에 지쳐 쓰러지도록 만드는 것이 분노다. 

5. 남재준·원세훈·김기춘 따위는 내세에 개나 돼지로 태어날 것 같다

남재준·원세훈·김기춘은 현세에서 주인을 위한 충견(忠犬) 노릇을 하면서 스스로를 위해서는 영양 보충을 엄청나게 한 존재라 해도 틀리지 않을 듯 싶다.(물론 여기에는 황교안이라는 인간도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충견 노릇과 호사를 누리는 대척점에는 간첩이 아닌 존재들을 간첩으로 조작한 업보가 있다. 그이들은 간첩 조작을 위해 사람을 개·돼지처럼 떼리고 고문했다. 나향욱의 말씀이 아니라도 이들은 내세에 개 아니면 돼지로 태어나지 않을까. 

만약 개로 태어난다면 주인도 몰라보고 마구 덤비는-그러다가 무참하게 타살당하는 존재가 될 것이고 돼지로 태어난다면 자기 체력이 식욕이나 성욕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덜 떨어진 존재가 되고야 말지 싶다. 

유가려씨. 결국 추방되고 말았다.

6. 곧바로 떨쳐내기는 했지만 국정원이 고맙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 영화 

국정원이 이렇게 대한민군 울타리 안에 존재하고 있으니 이렇게 경쾌한 영화까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물론 이것은 거짓말이다. 유가려씨가 오빠를 간첩으로 조작하려는 국정원 직원에 놀아나 했던 거짓말 이상으로 거짓말이다. 국정원은 이 땅에서 없어져야 하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국정원은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을 만들어냈다가 그지없이 폭로된 다음에도 또다른 간첩 조작을 했다. 비슷한 유형이었다. 당사자는 무죄 판결을 받고 나서 울부짖었다. 이렇게 간첩을 조작해낼 바에야 왜 탈북민을 데려오느냐고, 자기는 운좋게 좋은변호인을 만나 혐의가 벗겨졌지만 다른 사람들은 뭐냐고, 이게 인권이 없는 것이 아니고 뭐냐고. 

이 순간 나는 대한민국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쑥스럽고 쪽팔렸다. 

7. 그리고 유난히 슬픈 한종수=한준식의 죽음 

그이는 자살했다. 자백하지 않으려고 자살했지 싶다. 한종수는 조작되었다. 한종수는 한준식이었다. 국정원은 이름조차 가려버렸다. 게다가 어떻게 왜 죽었는지조차 가리지 않았다. 간첩 혐의를 뒤집어쓰는 순간 자살을 했던 것 같은데, 전후 정황과 상황을 따져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고? 그런 국정원이 존재하도록 우리 국민이 인정하고 있으니까. 국정원은 한종수 자살과 관련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그러니까 국정원 그이들은 댓글만 달고 있지는 않았다. 


8. 돈을 댄 사람들 이름 올라가는 장면도 예술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이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돈을 대준 사람들 명단이 주욱 올라갔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런 훌륭한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구나~~~ 지켜보고 있자니 정말 샘솟는 샘처럼 여겨지는 것이었다. 

이름들은 흐릿하게 보이도록 처리해 놓은 것 같았는데 그것들이 이래저래 모이고 또 흩어지고 하니까 훌륭한 그림이 되었다. 도도하게 차오르는 강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었고 여러 갈래로 흩어지며 솟구치는 분수처럼도 느껴졌었다. #우리는대한민국을바꿀수있습니다. 

9. 한종수=한준식은 아직도 죽은 까닭을 모른다

북한에 있는 한준식=한종수의 딸은 2011년 12월 13일 자살했다는 얘기를 듣고도 제대로 울지조차 못했다. 

이밖에 재일동포 김승효의 일을 더 쓸 수도 있지만 너무 참담해서 그만 줄인다. 어쨌든 이 영화, 정말 재미있다. 그래도 한 마디 덧붙이자면, 김승효는 이번에 40년만에 우리 말을 했다. 1975년 고문을 너무 받아 정신 이상이 된 사람이 당시 상황을 잊으려고 애쓴 탓에 우리 말을 잊어버렸는데 당시 고문 등 상황이 제시되자 말문이 터진 것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인정했다. 

10. 마산 에스빠스 리좀이 고맙다 

조그만 상영관이지만 이런 데가 있어서 메뚜기 뜀박질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런 공간이 없었다면 당연히 마산·창원·진해에서 <자백> 영화를 상영하는 데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부산·김해·대구·진주 등지로 막 뛰어다녀야 했을 텐데 마산에 에스빠스 리좀이 있는 덕분에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이런 공간을 우리가 가꾸고 풍성하게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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