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 작가/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나흘간의 기억

동네아저씨에게 성추행당했다던 딸

기록하는 사람 2015. 10. 2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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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제복] [부러진 화실] 서형 작가가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다.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추적기다. 이 연재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실린다.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나흘간의 기억]제7화, 동네아저씨에게 성추행 당했다던 딸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이 발생한 후, 경찰도 백경환(가명)·백희정(가명) 부녀를 가장 먼저 의심했다.


죽은 최씨 집은 마을 큰 도로에서 골목길을 따라 200m 들어간 곳에 있다. 사인이 된 막걸리는 최씨가 평소 즐겨 마시던 술이었다. 형사들은 현장을 보자 면식범의 소행으로 예상했다. 



순천경찰서는 남편 백경환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남편 백경환씨는 경찰서에서 사건 당일부터 계속 조사받았다. 유가족과 친척은 장례 절차를 마치고 조사가 시작됐다. 한 친척은 "조사를 받아보니 이미 백씨의 보험·금융·통신 내용은 모두 파악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당시 범행에 사용된 막걸리를 만드는 공장은 순천 시내에 있었다. 생술이라서 그날 만들어 바로 소비해야 하므로 순천지역에서만 판매됐다. 형사들은 그 막걸리가 순천에서 황전마을로 오려면 자가용·택시나 버스 중 하나를 통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루 열 번 운행하는 33번 버스에는 CCTV 4대가 부착돼 있었다. 따라서 승객이 버스를 탄 곳과 내린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형사들은 백경환씨에게 수사 협조를 부탁했다. 형사가 백경환씨를 3일 동안 데리고 그 막걸리를 파는 슈퍼·식당 근처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형사는 주인에게 '백씨에게 막걸리를 판매한 적이 있는지' 확인했다. 당시 백씨는 3일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경찰은 백씨가 '배가 고프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식사 때면 밥을 걸신들린 것처럼 먹었다고 한다.


막걸리 생산 일자는 7월 2일이었다. 범인이 막걸리를 샀다면 분명 7월 2일 이후였다. 순천과 황전 사이에 있는 도로 CCTV를 최대한 뒤졌다. 또 7월 2일부터 행적도 모두 조사했다. 백경환씨 일터 작업일지를 모두 제출받았다.


그와 관련된 모든 게 조사 대상에 올랐다. 경찰은 백씨 집과 동생 식당도 압수 수색을 했다. 형사들은 사건 전날 백씨 가족이 외식을 한 식당을 찾아 직원에게 당시 분위기를 물었다. 당시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백씨 아들은 아버지가 걱정돼 일을 접고 고향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아버지가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갈 때면 동행했다. 경찰은 백씨에게 여자관계를 묻기도 했고, 오이 농사에서 병균을 죽일 때 무엇을 쓰는지도 물었다. 백씨는 오이 농사에 석회질소를 쓴다고 답했다.


백씨는 혐의를 부인했고 조사 과정 또한 쉽지 않았다. 평소 무척 말이 없던 백씨는 조사 과정에서도 형사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결국 경찰은 백씨에게 자백을 받지 못했다. 자백을 받아낼 명확한 증거도 찾지 못했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반경을 점점 넓히며 조사 범위를 확대했다. 마을 사람 알리바이와 동선도 확인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7년 동안 치매로 누워 있던 할아버지도 조사 대상이었다.


경찰은 남편 백경환씨만 의심한 게 아니었다. 막내딸 백희정씨 역시 유력한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한 형사는 백희정씨 언니 진술에서 감이 왔다고 했다. 언니의 진술 내용은 뭐였을까.


"제가 집에 오면 엄마와 희정이가 여러 번 다퉜거든요. 서로 악을 쓰면서 싸웁니다. 그러면 옆에서 제가 희정이를 혼냅니다. (사건이 일어난 날) 아침에 제가 희정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서 '엄마가 막걸리를 마시고 돌아가셨다'고 '○○병원으로 민수 데리고 가보라'고 하니까, 희정이가 자고 일어난 목소리로 '알았다'고 했고 제가 조금 후에 전화를 하니까,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2009.7.23. 2회 진술조서)


엄마 사망 소식에 놀라지 않은 딸 백희정



이 대목은 검찰도 강조하는 부분이다. 당시 백희정씨는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에 놀라지도 않았고, 택시를 잡아타고 황급히 (장례식장에) 가지도 않았다. 이에 형사는 백희정씨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백희정씨는 7월 4일 남자친구를 만나러 부산에 갔다고 했다. 형사들은 (백희정씨의) 돈 출처가 궁금했다. 백희정씨 계좌와 통신내역을 추적했고 그가 일하는 마을도서관 컴퓨터를 조사했다.


둘째 언니는 사건 전날 식당에 가는 길에 마주친 백희정씨가 가방 같은 것을 메고 걸었던 것 같다고 증언했다. 형사들은 가방에 막걸리가 들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백희정씨는 사건 전날 부산에서 바로 순천으로 오지 않았다. 7월 5일 오전 부산에서 창원으로 이동했다. 형사들은 백희정씨 당시 이동 경로를 확인했고, 버스를 타거나 편의점에 들렀다면 그곳에 부착된 CCTV를 확인했다고 한다. 또 그동안 백희정씨와 채팅을 한 남자를 만나러 전국을 돌기도 했다.


백희정씨가 엄마에게 질책을 받자 남자친구를 시켜 살해할 수도 있다는 게 또 다른 가정이었다. 수많은 용의자가 눈을 사로잡다가 용의 선상에서 사라져 갔다. 경찰은 이처럼 백경환·백희정씨 부녀에게서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게다가 이들은 거짓말탐지기도 모두 통과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살인 사건과 관련해 받은 질문은 세 가지였다. 백경환·백희정씨 부녀는 모두 부정했고 거짓말탐지기 반응은 모두 '진실'이었다.


1. 당신이 그 당시 집에 청산가리를 막걸리를 탄 막걸리를 놔두었습니까?

2. 당신이 집 마당에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를 놔두었습니까?

3. 그 당시 집에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를 갖다 놓은 사람을 알고 있습니까?



수사본부 사건 경험이 있는 형사과장들은 거짓말탐지기를 신뢰한다고 했다. 신뢰하지 못한다면 왜 그런 시스템을 국민 세금 축내면서 구축 하느냐고 되물었다. 과연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기는 어려운 것일까? 진실과 거짓 중간에 '판단 불능' 구역이 있다. 진실 또는 거짓이 얼마든지 판단 불능으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진실이 거짓으로 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7월 27일 경찰청에서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를 투입한다. 프로파일러는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범인의 특성을 몇 가지로 요약했다.


피해자 주변인으로 범인의 입장에서 피해자보다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우월한 존재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었다. 또 범인은 대인관계가 미숙해 위축돼 있고, 타인의 평가에 민감해 친절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공격성과 폭력성이 내재해 가족 등 자신의 영역에서는 폭력성을 드러내는 이중적인 특성이 있는 인물로 판단했다.


프로파일러는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일까? 프로파일러는 필자에게 수사에 관한 사항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사건 정황을 비롯한 종합적인 상황을 분석한 것임을 강조했다. 내가 만난 형사과장들도 프로파일러 실력은 인정했다. 그러나 프로파일러 의견이나 거짓말탐지기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증거라고 했다.


순천경찰서 형사들은 가족들에게 계속 의심되는 사람을 물었다. 이에 아버지와 딸 의견이 엇갈렸다.


백경환씨는 경찰 조사 때부터 아내가 사망 직전 갈등을 빚었던 마을 아주머니를 꼽았다. 백경환씨와 달리 딸들은 다른 마을 아저씨, 장영환(가명)씨를 지목했다.


경찰이 장영환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삼은 데에는, 죽은 최씨 여동생과 최씨 동네 할머니 증언도 한몫했다. 사건 전에 최씨로부터 "희정이가 동네 어떤 남자랑 알고 지내는 것 같다. 미치겠다"는 하소연을 들었고, 동네 할머니는 그냥 막내딸을 시집보내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여기에 최씨 딸들 진술까지 가세했다.


초상집에 각티슈 들고 온 이상한 조문객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최씨가 청산가리 막걸리를 마시고 죽은 사건 당일, 백경환씨 집에 친척들이 모여들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충격에 친척이 토방에 앉아 허탈하게 있는데, 첫 조문객이 들어왔다. 조문객은 각티슈 묶음을 들고 있었다. 죽은 최씨 여동생은 당시 '시골에서는 초상집에 티슈를 들고 오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조문객은 두리번거리다가 그냥 대문 밖으로 나갔다.


최씨 장례를 치르고 열흘 정도 지나 최씨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죽은 최씨 둘째 딸이었다. 만나서 상의할 일이 있다고 했다. 그가 이튿날 찾아와 물었다.


"이모, 그때 각티슈 들고 온 사람 기억나세요?"

"왜?"


그게 시작이었다. 둘째 딸은 그 조문객이 수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경찰 조사에서 각티슈를 들고 온 적이 없다고 했다. 당시 조문객은 바로 마을 아저씨 장영환씨였다.


둘째 딸은 자신과 언니가 예전에 그에게 성추행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막내도 같은 일을 당하지 않았는지 걱정했다. 이모는 백희정씨를 만나 이에 관해 물었다. 희정씨는 (그런 적이 없다고)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엄마를 죽인 범인을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자신도 당한 적이 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경찰이 백희정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성추행과 더불어 성폭행 여부도 물었다. 처음에는 (성폭행을 당한 적이) 없었다던 희정씨는 결국 피해 사실을 인정했다.



2009년 7월 26일 경찰은 백희정씨에게 물어보면서 고소장을 작성했다.


'장영환은 2008년 11월 15경부터 2009년 5월 13일까지 6차례에 걸쳐서 고소인을 강간하거나 강제로 추행하였으니 이를 처벌해 달라.'


경찰은 희정씨에게 장영환씨 집 구조를 그리게 했다. 희정씨 그림에는 실제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묘사가 있었다. 경찰은 장영환씨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살인사건 수사를 진행하는 와중에 백희정씨 강간과 강제추행 등 피의사건 조사를 끝내고 8월 18일 광주지검 순천지청으로 구속 송치했다.


그런데 검찰이 8월 24일 백희정씨로부터 (어머니 살해) 자백을 받아낸다. 단 일주일 만이다. 



대체 일주일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계속해서 이 당시 경찰과 검찰의 수사 동선을 살펴보겠다. 


(제8화 - '막바지 경찰 수사 상황'편으로 이어집니다)


서형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블로그 4day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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