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 작가/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나흘간의 기억

친척 반응 "부녀 성관계? 어림도 없다"

기록하는 사람 2015. 10. 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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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제복] [부러진 화실] 서형 작가가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다.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추적기다. 이 연재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실린다.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나흘간의 기억]제5화, 부녀에 대한 주변 평가


주변 사람들은 왜 부녀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믿는 것일까? 그것은 부녀가 '살아온 환경' 때문이다. 일단 아버지부터 살펴보자. 


백경환(가명)씨는 1950년에 태어났다. 그는 집에서 둘째 아들이다. 동네 사람들은 그가 태어나고 나서 3~4년 지나 출생신고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즉, 사건 발생 15년 전부터 부녀가 성관계했다면 당시 백씨의 실제 나이는 45세가 아니라 50세 전후였다. 일정하지는 않지만, 해당 연령대는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노년기라서 '육체적 관계를 갖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또한 사건기록을 검토한 전직 형사과장은 설령 부녀가 진짜 범인이었다고 해도, 그들이 대응만 잘했으면 이 사건의 용의 선상에서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에서 딸이 자백했어도 아버지가 부인했다면 상황은 두 사람에게 유리하게 돌아갔을 것이다. 물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자백이 엇갈린다면 자백을 증거로 채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버지 백경환씨는 왜 혐의를 부인하지 못했던 것일까?


변호인 생각은 이랬다. 백경환씨 집안에 정신병을 앓았던 가족력이 있어서 그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과거 백경환씨 부모님은 정신이상인 큰아들을 치료하고자 재산을 모두 쏟아 부었다. 정신질환 증세는 그다음 세대에도 나타났다. 


백경환씨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는지 초등학교 2학년 때 중퇴했다. 백경환씨는 35세에 마을 주민 소개로 아내 최씨를 만나 결혼했다. 1980년대 백씨는 동생이 운영하는 블로크 공장에서 일했다. 화물차에 블로크를 싣고 다른 지역으로 운반하는 일이었다.


제수씨 기억에 아주버님인 백씨는 착하고 배짱이 없는 사람이었다. 백씨는 트럭 운전 중에 경찰이 보이면 먼저 당황했다. 당시 경찰은 교통법규 위반이나 과적 차량만 잡는 것은 아니었다. 용돈이라도 챙길 요량으로 괜히 차를 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백씨는 차를 세우라는 경찰 신호를 볼 때부터 면허증을 제시할 때까지 벌벌 떨었다고 한다. 백경환씨는 경찰 조사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옛날 젊었을 적에... 승용차 세차 일을 했는데 그때 다른 사람 차가 사고 나는 것을 보고 그 이후로 저는 절대로 (차를) 빌려주지도 않고 남의 차에 올라가지도 않습니다."



친척들은 백경환씨가 이런 성격으로 무슨 살인을 하겠느냐고 반문한다. 


1984년 백경환씨는 막내딸을 얻고 1남 3녀의 아버지가 됐다. 그리고 이웃 마을로 이사했다. 이들 부부는 집을 짓고 나락 농사를 지으며 새로 온 마을에 자리 잡았다. 


부부는 동네 사람들에게 늘 베풀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막내를 제외한 딸들은 결혼해서 출가했다. 아들은 서울에서 일했다.


한때 장모와 함께 살기도... 부녀 성관계? 친척은 "어림도 없다"


1990년대 후반 백경환씨는 오이 하우스를 시작했다. 당시 부부의 모습에 동네 사람들은 "세 걸음을 걸어도 함께였다"고 말했다. 동네 사람들이 보기에 부부는 마치 바늘과 실 같은 관계였다. 마을 사람들이 '부녀 성관계'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성폭행은 은밀한 공간에서 이뤄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고향 집에서 오직 세 식구만 살았던 게 아니었다고 한다.


하우스 일손 부족으로 2003년경에는 장모가 와서 살기도 했다. 그때는 장모는 딸과 함께 잤고 남편 백경환씨는 하우스에서 주로 잤다고 한다. 2008년경에는 둘째 딸이 출산을 위해 와서 한 해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


증언이 사실이라면 언니와 할머니가 함께 살면서도 부녀 사이에 벌어지는 '지속적인 성폭행'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만약 강압적인 '부녀 성관계'가 있었다면, 막내딸은 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것일까?


이제 딸 백희정씨에 대해 알아볼 차례다.


백희정씨는 1984년에 태어났다. 친척들에 따르면 그녀는 어릴 적부터 발육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키는 106㎝, 몸무게는 15㎏이었다. 부녀 성관계가 시작됐을 초등학교 3학년 당시 상태는 어땠을까?


이 당시 키는 116㎝로 자랐고 몸무게는 18㎏이었다. 당시 막내딸 발육상태를 기억하는 한 친척은 부녀 성관계는 "어림도 없다"고 말한다. 


백희정씨는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중학교 3학년 생활기록부에는 '동화책에 많은 관심을 보임'이라고 적혀 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도 백희정씨는 초등학생과 어울렸다.



백희정씨는 고등학교를 2003년 2월에 졸업했다. 이후 한 친척이 청소, 설거지 등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겠다며 백희정씨를 식당으로 불렀다. 친척은 장난치고 다독거리면서 일을 가르쳤다. 친척이 보기에 백희정씨는 식탁을 말끔하게 닦지 못했다. 설거지도 어설펐다. 식당을 찾은 손님이 나이라도 물으면 눈물부터 글썽였다.


백희정씨는 어머니에게 야단맞을 때도 자주 울었다. 아기가 울 때처럼 양손으로 눈가를 비비며 잉잉거렸다고 한다. 그럴 때면 아버지 백경환씨는 아이를 울린다고 아내를 나무랐다. 친척은 울지 말고 대답 크게 하라며 백희정씨를 다독였다.


친척은 백희정씨에게 통장을 만들어 2~3만 원씩 주면서 입금하도록 했다. 당시 친척은 백희정씨에게 자주 "한 푼 두 푼 저축해서 그게 제법 모이면 송아지를 사고, 그게 커서 다시 새끼를 낳는다"며 재산이 불어나는 원리를 설명했다고 한다. 그렇게 저축을 유도했지만 백희정씨는 돈이 제법 모일 때마다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집에서도 행방을 알지 못했다. 며칠 지나서 돈을 모두 써버리고 다시 나타난 백희정씨. 친척이 그녀에게 어디 갔었냐고 물으면 백희정씨는 피식 웃기만 했다.


이처럼 백희정씨에게는 '계획성'이 부족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친척은 그녀가 계획범행을 할 능력이 안 된다고 여긴다.


무죄를 선고했던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런 백희정씨가 '허위진술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백희정씨는 법정에서 범행과 관련이 없는 부분도 허위증언을 곧잘 했다. 그중 하나가 가령 백희정씨가 동네 슈퍼에 가서 막걸리 심부름을 했다는 것이다. 이 법정진술은 백희정씨가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가족들 주장에 배치된다. 그런데 정작 슈퍼주인은 "희정이는 우리 가게에는 오지도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 집(해당 슈퍼마켓)에는 과자가 없잖아!"


백희정씨가 애용했던 슈퍼는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구례구역 앞 슈퍼였다. 기차역에서 내린 관광객들을 위해 해당 슈퍼에는 과자와 음료들이 제법 있었다.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같이 일하면 답답하다'는 반응



당시 친척은 이런 백희정씨에게 최선의 미래는 먹고 사는 데 걱정 없는 곳으로 시집 보내는 거라 여겼다. 백희정씨에게 선을 주선하는 자리가 들어오기도 했다. 맞선 상대인 남자에게는 한 가지씩 결함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가족과 친척을 제외하고, 백희정씨를 오랫동안 관찰했던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가족과 친척을 제외하고 백희정씨를 가까이서 관찰한 사람은 김밥집 여사장 김미순(가명)씨다. 백희정씨가 김미순을 만나게 된 때는 2007년이다. 백희정씨는 순천 시내 김밥 가게에 우연히 들렀다가 일자리 제의를 받는다. 당시 여사장 집에서 잠자리도 제공한다고 했다. 사장인 김미순씨는 백희정씨 모습이 청순해 보였다고 했다. 


이 가게는 인근 유동인구가 많아 일손이 늘 부족했다. 하지만 백희정씨 능력은 곧 드러난다. 사장은 희정씨에게 야간 포장과 배달을 맡겼다. 백희정씨도 새 일자리를 좋아했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답답하다는 반응이었다. 주문이 밀려와도 백희정씨는 천하태평이었다. 게다가 꾸준하던 매출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원인은 백희정씨였다. 주문·결제·배달·수금이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아주머니들은 백희정씨가 금고에 손을 댄다고 당시 사장에게 말했다.


백희정씨는 여사장 김미순씨 집에서 머물렀다. 당시 백희정씨 대화 주제는 크게 조카 얘기 아니면 엄마 얘기였다. 하우스 안 도와준다고 야단쳐서 엄마가 밉고, 농약을 칠 때 줄을 잡아당기거나 오이 박스 포장하는 일도 하기 싫다고 했다. 엄마가 술 마시는 것도 싫다고 했다.


백희정씨 부모님은 종종 김미순씨 집을 방문했다. 부모님은 항상 함께 와서 오이나 나물을 건넸다. 어머니는 "애기(백희정씨)가 많이 모자란데 잘 부탁한다"며 고마워했다. 


당시 여사장 김미순씨는 백희정씨와의 대화에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기억이 나는 게 없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만 따로 백희정씨를 만나러 오는 경우는 없었다고 했다.


곁에서 약 2년간 지켜본 여사장 김미순씨는 백희정씨를 어떻게 평가할까? 그녀 또한 백희정씨가 이런 계획범죄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유는 이렇다. 김미순씨도 백희정씨에게 나이가 제법 많은 친척과 중매를 주선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백희정씨가 살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 마음을 접었다고 했다. 


백희정씨는 나물을 사 오라면 싱싱한 것으로 골라올 줄도 몰랐다고 한다. 아이스크림을 산다면 절반 가격에 판매하는 마트를 이용하지 않고 비싼 편의점 가서 사는 등, 김미순씨는 백희정씨가 돈을 가지고 어떻게 써야 할지 계획을 세우지도 못한다고 했다.



김미순씨는 백희정씨 품성을 어떻게 평가할까? 김씨는 "백희정씨는 화가 나면 토라져서 아무 말도 안 한다"고 했다. 그 정도지, 사람을 죽일 만큼 '악질'은 아니라고도 말했다.


이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김미순씨가 관찰한 내용을 살펴보자. 당시 김미순씨는 백희정씨를 알고 지낸 이래로 지금까지 그렇게 들뜬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고 기억했다. 당시 백희정씨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2009년 초, 26세가 된 백희정씨는 틈만 나면 김미순씨를 가게 건물 뒤편으로 데리고 가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다. 물론 아버지 이야기는 아니었다. 백희정씨는 담배를 피우면서 "오빠 만나고 왔어, 오빠가 용돈 줬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돈이 어디서 나느냐고 물으면 백희정씨는 오른쪽 새끼손가락만 펴고는 "이게(애인이) 줬지"라고 말했다. 백희정씨는 채팅으로 만난 오빠가 용돈을 통장에 넣어준다고 했다. 김미순씨는 백희정씨의 통장을 대충 살펴본 적이 있다고 했다. 1만 원, 2만 원 등 금액이 잔잔했다. 그중에 40만 원으로 제법 큰 입금액도 있었다. 그 40만 원은 시청에서 주는 월급이었다.


2009년 봄부터 백희정씨는 마을도서관에서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일을 했다. 도서관을 청소하고 대출일지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이 아르바이트는 백희정씨 어머니가 동네 이장에게 부탁해서 얻은 일자리였다. 백희정씨는 주로 도서관 컴퓨터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편 죽은 최씨(엄마) 여동생도 아주 오래 전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언니가 스쳐 지나가듯이 이혼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고 했다. 당시 남편과의 갈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건 발생 직전에 언니가 여동생에게 하소연한 것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당시 최씨는 같은 이야기를 동네 할머니에게도 했다. 이는 SBS<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에서도 소개된 바가 있다.


"막내딸 때문에 창피해서 못 살겠다. 동네 누구하고..."

"이모. 사건 난 날 OO아빠 우리 집에 온 거 알아요? 이모, 그 사람이 의심스러워..."


이처럼 주변 사람들은 사건 전 '부녀'사이에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사건 당일 부녀가 보인 행동은 검찰이 보기에도 충분히 의심할 만했다. 이에 대한 주변 사람들 입장은 어떨까?


(제6화 - '유력한 용의자, 남편' 편으로 이어집니다)


서형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블로그 4day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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