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언론, 블로그 강의

지역신문의 활로는 신문 바깥에 있다

김훤주 2015. 10. 1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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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날과 오늘날의 입체적 연결 


지역 신문이 지역 역사를 다룰 때는 '화려찬란했던 지난날'에서 얘기가 멈추는 경향이 큽니다. 그 화려찬란했던 지난날을 지금 여기로 불러낼 때는 구체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날을 지난날 그대로 둔다 해도 나름대로 새롭게 인과관계를 따져서 구성까지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입체적으로 알아야 하고 나름대로 펼칠 수 있는 상상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경남에는 최치원 관련 유적이 많습니다. 최치원은 뛰어났지만 중국에서는 외국인이라 꺾였고 모국 신라서는 신분이 육두품밖에 안돼 자빠졌습니다. 나라 안팎에서 외롭고 고달팠습니다. 


최치원이 아직도 지리산이나 가야산에 신선이 돼서 살아 있고 놀라운 초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시골 할매 할배들의 믿음은 어쩌면 최치원의 이런 이중성에서 비롯되는 바가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뛰어나지만 고달프고 외로웠던, 옛날 위인에 대한 연민과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 동일화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최치원의 이런 행적을 갖고 오늘날 비슷한 처지에 놓인 지역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일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거제로 좁혀서 보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한산도대첩이나 옥포해전 같은 임진왜란 당시 주요 해전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해전들이 죄다 안바다에서 벌어졌는데, 그 까닭은 별로 생각지 않습니다.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의 중학생 진로체험단 활동 장면.


바깥바다는 바람이나 물결이 세어서 당시 기술이나 동력으로는 배를 띄우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깥바다에 있는 지심도는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배가 뜨지 않습니다. 반면 안바다에 있는 안섬(내도)은 어지간하게 바람이 불어도 배가 뜹니다. 


또 이렇습니다. 옥포해전 승리와 고현읍성 함락은 어떻게 관련돼 있을까요? 옥포해전에서 깨진 왜적들이, 이순신 함대가 남은 배까지 싸그리 불태우는 바람에 돌아갈 길이 없어지자 그 길로 북진해 7일 뒤에인가 고현읍성을 함락시켰습니다. 


그 바람에 지금 거제면사무소 일대로 읍치가 옮겨갔지요. 옥포해전이 거제현 읍치를 고현에서 거제로 옮기게 한 셈입니다.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


보기는 또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거제도포로수용소 그 자체에만 집중합니다. 제가 알기로 거제도포로수용소에는 최대 17만3000명 포로가 있었습니다. 이들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인원은 여기 들어 있지 않습니다. 


당시 거제 인구는 과연 얼마나 됐을까요? 아무리 많아도 거기 포로 숫자보다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거제도포로수용소는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이 거제도포로수용소가 거제에 끼친 영향 또한 여러 방면에서 크고 세었겠지요. 이런 이야기가 실은 관심을 많이 끌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 보도는 지역신문 다양한 역할 가운데 하나일 따름 


지역밀착 보도는 지역신문이 할 수 있는 지역밀착의 전부가 아닙니다. 어쩌면 보도는 신문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운데 한 분야일 따름인지도 모릅니다. 보도가 지역신문의 전부이거나 아니면 가장 중요한 으뜸으로 여기는 이상 다른 데로 눈길을 돌리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저는 지역신문이 역할을 보도로만 좁히면 지역신문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밀착도 온전하게 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그런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신문 바깥으로 나가야만 살길도 생기고 지역밀착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역신문이 자기 독자한테 이런저런 가치를 제시해 왔다면 그것을 보도를 통해 얘기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런 가치를 실현하는 활동, 사업을 벌여야 맞지 않을까 하는 말씀입니다. 


지역신문이 보도 주장을 통해 가치롭게 여기는 바를 뚜렷하게 내세운다면 그에 머물지 말고 스스로 실행해야 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다시 신문에 보도로 담는 일을 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이런 사업과 활동을 벌이는 주체로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라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습니다. 별도 독립돼 있는 법인이지만 사실상 자회사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해딴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에'를 뜻하는 경상도 지역말입니다. 해딴에는 캐치프레이즈가 '잘 놀아야 잘 산다'입니다. 


공공성과 영리를 동시에 목적으로 삼습니다. 하는 일은 이렇습니다. 잡다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합니다. 생태+역사+여행을 기본으로 합니다. 마을 만들기와 도랑 살리기도 합니다. 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이나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진행합니다. 



3. 해딴에가 벌여온 이런저런 밀착들 


함양군 휴천면 임호마을 한 곳에서 2012년에는 마을만들기를 했고, 2013년에는 도랑살리기를 했습니다. 2014년에는 도랑살리기를 창녕군 계성면 명리 마을과 함양 백전면 망월마을 두 군데서 진행했습니다. 


올해는 김해 진례면 용전마을에서 도랑살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원래 올해는 하지 않으려 했는데, 김해시에서 좀 해 달라고 요청을 하는 바람에 하게 됐습니다. 



다른 민간 역량을 끌어들일 때도 있습니다. 자원봉사(Volunteer)와 여행(Tour)을 합한 볼런투어인데요, 자원봉사의 보람에 더해 여행의 즐거움까지 누리게 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해서 마을 벽화도 그리고 솟대도 만들고 버스 정류장 단장도 하고 원두막 쉼터도 들였습니다. 


결과는 경남도민일보에 보도합니다. '지역 밀착'의 본보기를 스스로 만들고 이를 보도로 알려나갑니다.(적어도 저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우리 고장 사랑 고3 역사·문화 탐방'도 2013년과 2014년 이태에 걸쳐 진행했습니다. 수능시험 끝난 뒤 경남도교육청 지원을 받아 고3 학생들을 상대로 벌입니다. 


아시는대로 지금 교육은 지역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현실입니다. 공공기관인 학교도 사설기관인 학원도 전국적인 것이나 세계적인 것만을 가르칩니다. 왜냐 지역적인 것은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에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역아동센터 역사탐방 모습.


이런 아이들에게 지역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만지고 누리고 즐기게 하자는 취지로 제안해 성사시켰는데, 아이들은 무척 즐거워하며 선생님들도 썩 만족스러워합니다. 그 결과는 마찬가지 경남도민일보에 기획연재로 실었습니다. 


이런 청소년 역사·문화탐방활동에 지역 중견기업 한 군데가 가치를 인정하고 돈을 대주는 일도 생겼습니다. 덕분에 2014년 창원 지역 다섯 개 중학교 학생들에게 탐방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두산중공업 사회봉사단이 벌이는 '창원시지역아동센터연합회와 함께하는 토요동구밖 교실'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두산중공업은 지역사회 기여 차원에서 형편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2014년에는 모두 일곱 가지 프로그램이었고 2015년에는 다섯 가지로 줄었는데요, 해딴에의 몫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생태체험과 역사탐방 두 가지를 해딴에가 수행하고 있습니다.


두산중공업은 2014년 사업이 성과가 좋았다고 판단했는지 올해 들어서는 중학생 진로체험 프로그램도 해딴에에 개발과 실행을 맡겼습니다. 이 또한 그 구체적인 진행 과정과 결과는 보도를 통해 지역사회에 알리고 공유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 쟁점이나 현안을 찾아가는 어린이·청소년 기자단 운영도 하고 있습니다. 2013년에는 도랑 살리기를 주제로 삼아 어린이들을 모아 진행했고 2014년에는 밀양 초고압송전탑 반대운동과 한국수력원자력 고리발전본부 핵발전소를 한 데 묶어 중·고생 에너지지킴이 기자단 활동을 벌였습니다. 


2015년에는 낙동강과 남강 등 우리 강들을 둘러보고 그 바람직한 모습이 무엇인지 함께 찾아보는 '우리 강 청소년 기자단'을 운영합니다. 


섬진강 송림공원 취재 모습.


이처럼 공익성이 인정되는 분야에서는 사업 공모를 하는 이런저런 기관들이 적지 않습니다. 여기에 해딴에는 적극 참여합니다. 2012년에는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공모한 '지역문화 초록아카데미 사업'에 응해 해딴에의 '버스 타고 함양 속으로' 프로그램이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함양 모든 명소를 군내버스를 타고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3년짜리였는데, 홍준표 도지사가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을 경남문화예술진흥원으로 통합하면서 '지역문화초록아카데미사업'을 중단시키는 바람에 1년만에 접었습니다.) 


올해는 언론진흥재단 지원을 받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지역 역사문화풍물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와서 일하는 외국 사람들에게 우리 속살을 알게 해주는 내용입니다.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그 내용 결과를 보도하면, 그 자체로 기획기사가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4. 신문 바깥으로 나와야 가능한 지역밀착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기본 실력은 지역신문이기 때문에 갖출 수 있었습니다. 먼저 경남 지역 그럴 듯한 습지와 생태에 대해 기획 보도를 하면서 나름대로 깊이 있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줄곧 지역 산과 강과 바다를 찾아가는 보도를 하면서 여행에 대한 기본 감각도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좀 하다 보니까 테마 여행을 진행해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펼쳐 보인 것이 '시내버스 타고 우리 지역 10배 즐기기'였습니다. 대중교통편을 활용하고 나머지는 걸어서 다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경남 곳곳 숨은 명품들을 좀더 잘 알게 됐습니다. 


역사 문화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이번에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일부러 경남 18개 시·군 20개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적을 찾아다니는 기획보도를 했습니다. 


익히 알려진 누구나 뻔히 아는 그런 사실들은 되도록 피하고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면서도 나름대로 의미와 가치가 있는 그런 역사 사실과 문화유산을 찾아내고 보도했습니다. 또는,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라 해도 여태까지와는 다른 각도 시각에서 살펴보는 식으로 했습니다. 


이런 보도는 그 자체로 지역 밀착이 되고 지역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되며 지역 주민들한테 새로운 내용을 알려주는 일이 됩니다. 이처럼 역사 문화 자연 생태 그리고 사람은 아무리 파내어도 마르지 않는 지역밀착의 보물창고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지역신문에서는, 정치·사회·경제 분야 보도는 없으면 허전한 그런 정도에서 그치는 존재라고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서 한 발짝만 더 나가자고 말씀드립니다. 이런 기본 실력을 바탕으로 삼아 그런 내용을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구성해서 실행해 보자는 얘기입니다. 신문 바깥으로 나가자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했더니 뜻밖에 많은 이들로부터 호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역아동센터 생태체험.


또 저희 경남도민일보도 더 많이 알릴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이, 지역신문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특히 기자들은 자기가 몸담고 있는 신문을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줄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신문 바깥으로 나가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아줌마들 서른 가까이 모인 자리에 저희 프로그램을 홍보하려고 간 적이 있었는데, 경남도민일보를 집에서 받아보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고, 한 번이라도 경남도민일보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네 사람이었으며, 나머지는 경남도민일보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제가 그렇게 프로그램 홍보차 얘기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아마 경남도민일보를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프로그램을 진행한 내용과 결과는 다시 신문으로 들어옵니다. 기획 보도 기사가 되는 것입니다. 지역 밀착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는데요, 이렇게 프로그램을 하면 적든많든 돈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물론 해딴에가 전부는 아닙니다. 해딴에가 하는 일이 지역신문이 신문 안팎을 넘나들면서 할 수 있는 일의 전부가 아닌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두서 없이 몇 마디 말씀 드려봤습니다. 고맙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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