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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 작가/조현오의 구겨진 제복

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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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후마니타스)의 작가 서형이 이번엔 조현오를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허위발언'으로 8개월 징역을 살고 나온 바로 그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다.


서형 작가는 사법피해자 취재를 전문으로 해왔다. 취재 중 조현오 전 청장의 다른 면에 대해 듣게 되었고, 그의 진면목을 취재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조현오'라는 이름 석자는 차명계좌 발언 하나만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 있는 사람. 이명박 정부의 경찰청장이었다는 것으로도 다른 쪽 진영에선 공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몇몇 매체에 연재를 타진해보았으나 모두 난감한 기색으로 거절했다. 그러나 블로그 '지역에서 본 세상'은 그런 세간의 시선에 개의치 않기로 했다. 글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오로지 독자의 몫이니까. 근거없는 비난이나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글만 아니라면 이 블로그는 글쓰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편집자 김주완]



[구겨진 제복]19화. 조현오가 도입한 시위 진압 장비들


조현오가 경찰에 입문한 1990년에는 전국에 집회·시위가 많았다. 1990년 1월 22일 대통령 노태우와 민주당 총재 김영삼, 공화당 총재 김종필이 3당 합당을 선언하며 거대 여당인 민자당이 생긴다. 전국에서는 3당 합당 반대 시위가 잇달았다. 부산도 마찬가지였다. 조현오는 금정경찰서 생활안전과장이었지만 시위가 열릴 때마다 경비를 담당했다. 부산대학교 옛 정문이 조현오 담당 구역이었다. 조현오는 당시 전·의경이 불편한 군화를 신는 것이 이상했다. 집회·시위를 관리하려면 움직이기 편한 운동화가 더 낫지 않느냐고 물었다. 주변 반응은 심드렁했다.


"그냥 경찰청에서 주는 거 입고 먹고 할 것이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당시 경찰 경비 복장은 대나무 진압복과 방석모, 알루미늄 방패였다. 방석모는 1963년 미제 군용 헬멧이다. 헬멧에 얼굴을 보호하는 철망을 붙였고 머리 뒷부분에 보호덮개를 붙였다. 1996년 눈 부위만 철망 대신 투명판으로 바꿨으나 쓰기에 여전히 무거웠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다. 경찰이 사용하는 알루미늄 방패는 시위자에게 위협적이었다. 경찰청도 이를 개선하고자 휘어지면서 방어 기능을 할 수 있는 소재로 방패를 개발하려 했다. 하지만 부품 생산부터 시작해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2006년이 되자 '안전방패'가 출시됐다. 청장은 이택순이었고 조현오는 감사관을 할 때였다. 그런데 국회의원 정두언이 안전방패에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신제품은 본체와 손잡이를 나사 두 개로 연결해서 고정했다. 그런데 일정한 압력을 주자 손잡이가 분리됐다. 정두언은 불량을 지적하며 국정감사에서 유착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뉴스가 나오자 방패 개발을 담당했던 직원을 대상으로 경찰청 자체 감사가 시작됐다. 개발 과정에서 유착이 없더라도 사소한 실수가 지적돼 물의를 일으키면 경찰 위신이 떨어질 게 뻔했다. 이것만으로 인사 조치나 문책이 따르는 사안이었다. 이런 감찰 결과는 경찰청장에게 보고된다. 청장도 실무에서 올라온 의견에 이견이 없으면 결제할 것이다.


보고 계통이라는 게 이렇다. 경찰청장에게 보고는 실무 책임자인 과장(총경) 몫이다. 업무를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청장 처지에서도 계급 차이가 나는 과장에게 지시하는 게 편한 면이 있다. 그런데 이택순에게 보고서를 들고 나타난 이는 감사관인 조현오였다. 조현오는 비리가 없는데 문책을 하면 누가 적극적으로 장비 개발에 나서겠느냐고 되물었다. 정두언을 설득하는 것도 책임지겠다고 했다.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조현오는 정두언에게 조사 결과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안전 방패는 나사를 2개에서 3개로 늘려 약점을 없앴고 지금도 잘 쓰고 있다.


2007년 경비국장이 된 조현오는 전·의경을 포함한 경찰관 부상자 통계를 접한다. 2005년 893명, 2006년 817명이었다. 조현오가 경찰이 되고 17년이 지났지만 장비는 예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조현오는 장비 개발을 서둘렀다. 경찰청 장비과에서 맡는 일이지만 모든 장비를 개발하도록 맡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보통 경비·교통 분야는 장비를 자체 개발하는 편이다.


2008년 프랑스에서 접한 진압복을 참고한 신형 진압복 보급에 매진했다. 또 전·의경이 신는 군화를 운동화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2007년 10월에는 신형 방석모를 개발했다. 철망을 모두 제거한 자리에는 투명 플라스틱판을 부착했다. 그래도 조현오가 보기에는 부족했다. 여름철 집회·시위를 관리하기에는 너무 열악한 장비였다. 조현오는 방석모 안에 소형 선풍기를 설치하든, 냉매를 부착하든 아이디어를 내라고 재촉했다.


살수차를 본격적으로 보급한 것도 이 시기다. 살수차는 생산은 예전부터 했지만 현장에 투입하지는 못했다. 살수차 투입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한 경찰은 집회·시위 관리에서 조현오가 아주 질색하는 장면 두 가지를 꼽았다. 먼저 현장 폴리스라인에 여경을 배치하는 것이다. 집회·시위 참석자가 움츠러들게 해야 하는데 여성을 내세우는 것은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뭘까.


"명박산성? 조현오는 그런 거 안 좋아해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대응을 아주 싫어하지요. 막아놓고 기다릴 게 아니라 그 단계로 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쪽이에요."



물론 집회·시위를 관리할 때 시민과 경찰이 모두 다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했다. 경찰이 집회 참석자를 상대로 무리하게 대응한다는 비판은 언론이 단골로 다루는 내용이었다. 조직 상부를 비롯해 청와대에서 나오는 검거 지시에 맞추려면 변수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서로 피해를 줄이면서 검거할 방법으로 개발한 게 채증이다. 조현오는 경비국장을 하면서 채증 장비와 인원을 대폭 늘린다.


조현오는 직원에게 안전하게 시위자를 검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물을 던지면 시위자가 잡히는 그물을 개발해보라고 한 것이다. <수호지>를 읽다가 떠오른 생각이라는데 당시 지시를 받은 직원은 무모한 아이디어에 당황했다고 한다. 그물이 서로 피해 없이 시위 참가자를 검거하는 방법으로는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경찰봉을 잘못 휘둘러도 폭력으로 규정하는 분위기에서 그물망으로 시위자를 검거하는 방법이 용납될 리가 없었다. 당시 기자실에서 기자와 얘기하는 것을 즐겼던 조현오는 장비 개발 이야기도 꺼냈다. 그 직원은 조현오가 그물망 이야기를 불쑥 꺼내자 “이건 아이디어다, 스케치하는 차원이다, 절대 개발하지 않는다, 계획에 없다”며 뒷말을 막느라 혼을 뺐다.


조현오는 이런 아이디어도 냈다. 2007년 <황우화>(장예모 감독)가 개봉됐다. 황제(주윤발)를 몰아내고자 황후(공리)와 아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내용이었다. 영화 후반부 모든 것을 꿰뚫었던 황제는 반란군이 궁 안으로 쳐들어오자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차벽으로 진입을 막고 화살로 반란군을 몰살한다. 이 영화를 본 조현오는 바로 집회 현장에 적용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온 게 '차벽 트럭'이다.



스위치를 켜면 트럭에 접혀 있던 방호벽이 작동하면서 폭 8.6미터, 높이 4.1미터 '이동식 장벽'으로 변신한다. 이 방호벽은 쇠 파이프나 대형 망치로 내리쳐도 손상이 없었다.


조현오 경비국장 시절, 2007년 연말, 대통령 선거를 치뤘다. 당선자는 이명박이었다. 이명박은 노동자보다 기업 이익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금속노조 전체 판을 예견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시작이 쌍용자동차 사태다. 2009년 조현오는 경기지방경찰청장이 된다. 2009년 5월 22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총고용보장, 정리해고 불가와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정상화 등을 요구하며 옥쇄파업에 들어갔다. 경찰과 해고 노동자 양쪽 모두 총역량을 쏟아부었다. 우선 노동자부터 살펴보자.


금속노조는 핵심사업장인 쌍용차 지부를 지원하는 투쟁에 들어간다. 1998년 현대자동차 사태, 2001년 대우자동차 사태를 거치면서 학습한 게 있었다. 현대자동차 사태는 강성 투쟁으로 사측을 압박해 정리해고 인원을 줄일 수 있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우자동차가 공권력에 밀린 원인은 도장 공장을 점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됐다. 쌍용차 지부에는 모든 투쟁 전술이 전수됐다. 쌍용차 노조는 2009년 5월 21일 총파업 선언, 22일부터 공장 점거 농성에 들어갔고 8월 6일까지 77일 동안 경찰과 대치했다.  

 

경찰 쪽을 보자. 경찰은 2005년 오산 철거민 망루 시위에 대응하면서 배운 게 있었다. 농성이 54일 동안 진행되면서 철거민은 옥상에서 경찰을 향해 새총을 쏘고 골프공을 날렸다. 그러자 경찰도 똑같이 새총을 만들어 철거민을 향해 쐈다. 한 소대장은 골프채를 갖고 와서 철거민이 던진 골프공을 놓고 샷을 했다. 그 일로 소대장은 승진하지 못한다. 법이 규정한 장비를 쓰지 않으면 승진이 막힌다는 사실이 경찰 조직에 각인됐다.


2009년 1월 19일 용산사태가 벌어졌다. 망루 시위 하루 만에 경찰특공대가 투입됐고 철거민 5명과 경찰관 한 명이 사망했다. 경찰 작전이 무리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경찰은 작전을 펴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명분과 여론을 등에 업는 게 중요했다.


쌍용차 노동자는 경찰과 대치하면서 볼트총을 쏘고 화염병을 던졌다. 경찰은 불법행위로 규정했지만 여론은 '밥그릇 지키고자 하는 행동'이라며 동정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경찰 지휘부는 경찰이 피해를 당하지 않는 게 중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고전적인 방법이 헬기를 타고 공중에서 노동자에게 최루액을 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론은 '인체에 유해하다', '한 해 소비량 90%를 쏟아부었다'며 비판했다. 경찰은 최루액은 경찰관 직무집행법 장비 관련 규정에 근거한 장비이며 그해에는 최루액을 쏠 다른 시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경찰은 경찰도 지키고 작전 수행에도 효과적이며 언론 비판도 피할 수 있는 장비가 필요했다. 첫 장비가 바로 조현오가 ‘트로이목마’에서 착안한 '방패막'이었다. 방패막은 상단은 투명판, 하단은 철판을 부착하고 방패 아래에 바퀴를 부착해 이동할 수 있었다. 경찰은 볼트총과 화염병 공격에도 방패막을 움직이며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장비만으로 안전한 집회·시위 관리가 가능하지는 않았다. 전·의경도 시위자가 휘두르는 쇠 파이프에 대응하다 보면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없다. 경찰봉으로 시위자를 때리고 발로 밟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현장에서는 무엇보다 부대원 흥분을 가라앉히는 게 중요했다. 경비국장 시절 조현오는 집회·시위현장에서 지휘관을 소대원 앞에 세웠다. 부대원 30명 정도는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조현오는 부대 운영을 계속 고민했다. 1997년 한양대 한총련 사태 때 경험에서도 얻은 게 있었다. 조현오는 당시 고립된 부대를 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조현오는 부대장을 모아놓고 따라오라 지시했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니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게다가 현장에 도착하니 고립된 부대가 없었다. 혼자 실컷 돌만 맞은 조현오는 부대장들에 지방청에 보고하겠다며 화를 냈다. 물론 말뿐이었다. 부대장 처지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전국에서 부대가 모였는데 현장에서 만난 부대장과 격대장은 처음 보는 사이였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충성심이 생기기는 어려웠다. 조현오는 경비국장 시절 격대장과 단위 부대장은 서로 신뢰하는 사람을 묶어 부대 배치를 하도록 했다.


부대 사이 의사소통도 중요했다. 조현오는 경기지방경찰청장 시절 무선망을 복수로 운영한다. 한총련 사태 때 고립은 결국 단일 회선에서 무선을 남발하며 소통이 막힌 게 원인이었다. 조현오는 총경이 사용하는 망은 따로 운영했다.


이렇게 축적된 경험은 쌍용차 진압작전에 총투입됐다. 조현오는 1998년 현대자동차 사태도 겪었다. 여기에 2006년 평택 미군기지 이전 작전에 투입됐던 참모도 뒤를 받쳤다. 계획을 세울 때 현장을 답사해 거리 계산, 도로 상황 파악, 이동 방법, 차단 방법, 장애 요인 등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경험이 있었다. 물론 쌍용차는 워낙 공장이 크고 공간도 복잡해 더 많은 분석과 판단이 필요했다.


(다음20화. 최종화-쌍용자동차 진압작전)


서형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블로그 4day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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