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박5일 발품 팔아도 겨우 2만6000원

 

네팔 여행을 마치고 우리나라로 돌아온 지 한 달쯤 됐을 때였습니다. 우리나라 텔레비전에서 네팔 관련 방송이 나왔습니다. 네팔 여자 둘이서 2박3일 걸리는 거리를 걸어 짐을 배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짐은 40kg을 넘는다고 했습니다. 방송에서는 PD가 그 짐을 한 번 져 보는 시연을 했는데요, 남자인데도 제대로 못 지고 뒤로 넘어져 버둥거리는 꼴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네팔 두 번째 큰 도시 포카라에서 허름한 집에 사는 이 여자들은 다들 남편도 있고 아이들도 있습니다. 식구들 위해 한 푼이라도 벌려고 나선 걸음이겠지요.

 

네팔에서는 이런 대바구니에 짐을 집어넣은 다음 이마에 띠를 둘러 지고 갑니다.

 

여자들은 옷이 허름했고 신발 또한 적어도 운동화는 돼야 하지 싶은데 그냥 슬리퍼 수준이었습니다. 여정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골짜기 이쪽 저쪽을 타고 꾸불꾸불 이어지는 산길은 아무래도 가팔랐습니다.

 

끼니꺼리를 챙기지 못한 탓에 아무 집에서나 얻어먹어야 했고, 게스트하우스에 묵을 돈이 없어 남의 집에서 마구간 같이 바람 피할 만한 공간만 얻어도 고마워해야 했습니다.

 

목적지는 3000m 정도 높이에 있는 시골 학교였고 이들이 지고 간 짐은 아이들 급식재료였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짐을 보고 만족스러워했습니다.

 

이렇게 배달하고 받은 짐삯은 과연 얼마였을까요? 2620루피였습니다. 루피는 네팔 화폐 단위입니다. 우리 돈으로 치면 100루피는 1000원 정도입니다. 2박3일 지고 가고 2박3일 돌아오는 배달료가 2만6000원.

 

히말라야에서 이런 정도 비탈은 예사입니다.

 

2. 어디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운명

 

우리나라 법정 최저임금으로 치면 다섯 시간 시급밖에 안되는데, 네팔서는 4박5일 중노동을 해야 손에 쥘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텔레비전 속 두 여자는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많이 셈해주시다니, 아마 복 받을거야!” 감격에 겨워하며 말했습니다.

 

영주형(오른편)과 제가 람과 함께 설산을 배경 삼아 한 장 찍어봤습니다.

올 1월 네팔여행 트레킹을 함께했던 포터 람이 떠올랐습니다. 람은 하루에 10달러를 받았습니다. 10달러는 1000루피입니다. 4박5일이면 5000루피입니다. 람이 두 배 가량 많습니다. 그렇지만 남녀 임금 격차가 우리나라랑 비슷하다고 보면 람도 크게 많은 것은 아닙니다.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람과 이 두 여자는 왜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데도 대가로 받는 왜 얼마 되지 않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람과 그 두 여자가 네팔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네팔 한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 아줌마들이랑 찍은 사진.

 

그러면 우리는 왜 그이들보다 고생은 덜 하면서도 벌이는 더 많을까요? 앞에 말씀드린 그대로, 제가 생각하기에는, 바로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태어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이들 또한 하필이면 춥고 배고프고 험난한 네팔에 태어났어야 하는 필연이 없습니다. 그이들이나 우리나 그냥 태어났습니다.

 

그이들에게나 우리에게나 그것은 자기 의지 바깥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태어난 데가 어디냐에 따라 한 사람의 삶이 일생이 정해져 버립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등골이 서늘해지고 식은땀이 나게 하는 팩트입니다.

 

텔레비전에 나온 여자는 여기 여행 중에 만난 여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따시게 입을 수 있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자가용 몰고 다닐 수 있고 네팔까지 여행도 다닐 수 있는 원인이 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이들이 춥게 입고 한뎃잠을 자고 배도 때때로 곯는 원인이 그이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3. 경상도 할매가 만약 전라도에 태어난다면?

 

생각은 이어집니다. 여기 경상도 할매가 있습니다. 줄곧 새누리당을 찍어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만 보면 좋아서 입이 그냥 벌어집니다. 이 할매가 전라도에서 태어나 전라도에 산다면 과연 똑같이 새누리당 찍고 박근혜 대통령만 나오면 웃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전라도 할매들, 민주당을 줄곧 찍어 왔고 김대중 대통령만 생각하면 두 손을 모으는 그이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전라도 아닌 경상도에서 태어나 경상도에 산다면 오히려 어쩌면 김대중 대통령만 보면 빨갱이 어쩌고 하는 쌍말이 떠오르기 십상이겠지요.

 

소소한 부분에서는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큰 틀에서 생활 수준뿐만 아니라 아주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는 정치성향조차 어쩌면 이처럼 어디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저는 김종필 같은 캐릭터를 아주 끔찍하게 싫어하는데요, 하지만 대전이나 청주 같은 데서 태어났어도 그렇겠느냐 자문해 보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말씀드린대로 내가 누구 자식으로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느냐는 본인은 절대 간여할 수 없는 성역입니다. 큰 줄기에서 운명은 이렇게 결정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잘 사는 것은 내 덕분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내가 내 노력으로 일군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사실 따져보면 내 몫이 아니었습니다. 람이 못 사는 것은 람 탓이 아니었습니다. 그 여자들이 그렇게 없고 가난한 것도 원인이 그 여자들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4. 어디 태어나든 기본 생활 조건은 충족되는 그런 세상을

 

이번에 여행을 함께한 영주형은 네팔에 대해서라면 다방면으로 지식이 해박합니다. 힌두교는 네팔 사람 대부분이 믿는 종교랍니다. 힌두교에는 신(神)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람이 이름으로 쓰는 ‘람’도 힌두교 이런 여러 신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치통(齒痛)을 다스리는 신입니다. 동전을 못으로 붙여두면 치통이 낫는다고 합니다. 영주형이 제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힌두 신전. 힌디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신을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삼다니, 신기했습니다. ‘람’이라는 신이 뜻하고 상징하는 바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리와 함께했던 람의 이름에 담겨 있겠거니 짐작합니다. 아무튼 빛날 병(炳), 해뜰 욱(旭), 권세 권(權), 기둥 주(柱) 이런 식으로 짓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싶었습니다.

 

돌아와 찾아보니 람은 용기와 미덕의 신이었습니다. 또 이성(理性)과 정의(正義)의 모범으로 받들어진다고도 합니다. 이런 힌두신 람의 가호가 있다면, 네팔을 위하고 돕는 일을 많이는 못해도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라건대, 앞으로는 어디서 태어나든 생활을 위한 기본 조건은 충족되는 그런 세상 그런 지구가 되기를. 조금씩이라도 그런 쪽으로 바뀌어 나가도록 힘을 보탤 수 있기를. 힌두신 람이 그러한 것처럼,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와 이성과 정의감이 우리를 떠나지 않기를.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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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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