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콘텐츠진흥원과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주최·주관하고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수행한 경남이야기탐방대에는 블로거들도 함께했습니다.

 

모두 여섯 사람이 함께한 블로거탐방대는 예술가탐방대와 마찬가지로 의령 의병장 곽재우 유적과 합천 남명 조식 관련 유적 그리고 남해 두 군데 집막걸리를 둘러봤습니다.

 

블로거들은 자기 성향에 따라 사실을 충실하게 기록하는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고 나름 새로운 관점, 또는 그와 관련된 자기 생각이나 추억을 끌어내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여기에는 물론 옳음과 그름도 없고 잘함과 못함도 없고 나음과 모자람도 없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누군가가 스토리텔링을 위해 활용한다면 이런 사실들이나 관점들 또는 생각·추억들에서 그에 걸맞은 상상력이나 감수성을 풀어낼 수 있으면 족하지 싶은 것입니다. 블로거들의 글은 경남도민일보 인터넷신문 '경남이야기탐방대' 배너에서 모두 볼 수 있고요, 여기는 그 부분부분을 옮겼습니다.

 

◇합천 남명 조식 관련 유적

 

아내를 (김해에) 두고 합천으로 돌아온 조식 선생의 의식주 해결이 궁금해집니다. 그의 나이는 아직 48세입니다. 아내를 두고 여자를 얻었으니 재혼이 아니라 첩을 두는 것이지요. 상대는 스물여덟의 처자였답니다.

 

용암서원 묘정비를 둘러보는 모습. 묘정은 사당(廟) 마당(庭)에 세운 빗돌로 그 사당의 내력을 적어두고 있답니다.

 

얼마 전 혼외 자식을 뒀다는 이유로 검찰총장이 그만둔 일도 있었지요. 아무리 청렴결백해도 성추문에 휩싸이면 개망신을 당하는 세상입니다. 유독 남녀문제에 대해서는 그 잣대가 심하게 엄격해졌습니다.

 

조식 선생은 첩을 두어 얻은 자식이 둘인데 그 자식들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흔히들 자식에 대한 부모 마음을 천륜이라고 그러잖습니까. 그런데 조선시대 양반들 삶을 더듬어보면 그게 꼭 천륜인가 싶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권세가들이 첩을 두는 그런 경우야 허다하지만 평범한 벼슬아치들도 생계형 첩을 두었다고 합니다. 전국을 떠다니며 생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그때마다 가족들이 움직이기는 불가능하기에 수발을 드는 몸종이 따라붙었습니다. 여기서 수발은 의식주는 물론 잠자리까지 포함된다고 합니다.

 

문제는 거기서 생겨나는 자식들인데 아버지가 거두었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다는 거지요. 어머니 신분과 마찬가지로 천했고 아버지는 그야말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로 치자면 천륜은 당연히 아버지의 몫인데 말입니다.

 

… 본처에서 난 자식만 천륜이라 여겼는데 이를 보면 인간만큼 이기적인 존재가 또 없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지요. 조식 선생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 추앙을 받는 그를 지금 관점으로 보면 어떤 평판을 받을까요? 아마 그의 높은 학식과 덕망은 비도덕적이라는 비난 속에 묻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선과 악에서 절대적인 것이 있고 상대적인 것이 있습니다.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학대는 시대 장소 구분없이 절대악입니다. 여자 남자 문제만큼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처다부제가 있는가 하면 에스키모인 사이에는 손님에게 아내를 내어주는 풍습도 있으니까요.

 

어떤 시대에 사느냐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이러거나 저러거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훗날 여자들이 남자를 여럿 거느리는 것이 전혀 흉허물이 아닌 세상이 오려나요. 지금 상황을 봐서는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만 같습니다. 옛날 여자들이 재혼을 못했듯이 남자들이 마음대로 재혼 못하는 그런 시절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달그리메, 남명 조식의 평판이 요즘 같았으면 어땠을까?(http://dalgrime.tistory.com/222)

 

옛날 어느 풍수도인이 삼가 토(兎)동을 둘러보니 암토끼가 달에 있는 수토끼를 쳐다보며 누운 형상이라 토끼 배에 터잡은 집에서 1년 내 현자가 나리라 예언했는데 토끼 배 부분에 남명 외가가 있었고 1년 뒤 예언대로 남명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함천 삼가 용암서원에서 남명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바라보는 블로거들.

 

외조부는 친자인 이씨 자손에서 현자가 나기를 바랐는데 하필이면 그때 딸이 친정에서 해산하는 바람에 이씨 기운을 조씨가 앗아간 형국이 되어 못내 아쉬워했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이쯤 되면 명당과 그 주인공은 인연이 분명히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남명이 현자임은 틀림없으나 그 일생을 되짚어보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은 팔자를 타고 났다고 할 것입니다. …… 넉넉잖은 살림살이에 벼슬도 없는 백수 선비의 삶이란 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명당터의 덕을 본 당자는 터 주인인 외할아버지도 아니고 태어난 남명도 아닌 셈인데 그러면 도대체 누가 덕을 봤을까요?

 

재야에서 늘 나랏일을 걱정하고 공직자들 자세를 흩트리지 않도록 긴장시키는 상소문 돌직구를 날려 난세에 그나마 선비정신을 유지하게 하였고, 후학 지도도 잘해서 임진왜란에 50명 넘는 제자들이 의병장으로 나서 나라를 지켰으니 결국 명당 덕을 본 당자는 나라인 것입니다.

-선비, 명당자리 임자는 따로 있다- 남명조식의 생가 터(http://sunbee.tistory.com/363)

 

뇌룡정-용암서원-남명 생가를 둘러보며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대비(문정왕후)께서는 비록 생각이 깊으시나 깊은 궁중의 일개 과부고, 전하께서는 다만 선왕의 어린 후사(後嗣)이실 뿐입니다. 그러니 온갖 천재(天災)와 만 갈래 인심을 어떻게 감당해 내며 어떻게 수습하시겠습니까?"

 

대비를 과부라 하고 임금을 고아라 했으니 얼마나 입바른 소리입니까? 요즘 관직에 나아가기 위해 청문회에 오르는 사람들을 생각해봅니다.

 

대통령의 장관직 후보 지명을 사양하면서 "비록 국민의 투표로 당선되었다지만 이는 비명에 간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나이 많은 노인들의 연민 덕분이며 본인은 시집 안 간 노처녀에 불과할 뿐으로……" 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선비, 과부와 고아의 정치, 그리고 남명의 선비정신(http://sunbee.tistory.com/362)

 

◇남해 집막걸리 두 군데

 

할매 할배들이 흥겹게 노니는 남해 남면집.

 

남면집 풍경.

 

아흔 넘은 어르신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 막걸리 한 사발 꿀꺽꿀꺽 들이켜십니다. 짬날 때마다 와서 이렇게 마시는 막걸리가 꿀맛이라 그러네요. 아흔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낯색이 좋고 건강해보입니다.

 

'행복이 거창한 게 아니네. 사는 게 참 정말 별 거 아니네.' 어르신들의 편안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들이 스치네요. 막걸리 한 잔 앞에 두고 농사 얘기도 하고 안부도 묻고 세상 얘기도 합니다.

 

남면집 할머니가 파는 것은 막걸리가 아니었네요.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가장 힘든 건 외로움이라 그러더라고요. 남면집은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풀어내는 넉넉한 공간이지요. 사람 사는 온기가 있는 따뜻한 곳이지요. 젊은 사람과 어르신들이 만날 수 있는 소통의 장소였지요.

-달그리메, 남해에 가면 남면집을 찾아가세요(http://dalgrime.tistory.com/227)

 

남면집 주인 할매 지짐 붙이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는 실비단안개.

 

날아가는 까마귀도 내 술 한 잔 먹고 가라시던 울 아버지. 집에는 항상 술이 마르지 않았다. 윗동네에서 술 추러(세무서 직원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술을 찾아내는 일) 왔다고 소문난 어느 날, 술항아리에 용수레를 박아 전주(도수가 높은 진짜배기 술)를 빼두었던 엄마는 급해서 돼지먹이통에 쏟았는데, 그걸 먹고 돼지가 죽어 버렸다. 나중에 잡아보니, 창자가 꼬여 있더라는 것.

 

집안에 대소사나 경사가 있으면 꼭 술을 담그는데 그때는 세무서에서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시골이라 누구네에서 어떤 일로 술을 담근다는 걸 모를 리도 없을텐데……. 대량화되어 공장에서 나오는 술이 아닌, 집집마다 맛이 다른 술, 그 술맛을 참 오랜만에 즐겨 본다.

 

찌짐을 찍어먹는 양념장에 좀 더 신경을 쓴 거 같다. 정성이 넘쳐 담아 참기름을 너무 많이 넣었는지 간장은 찍히지 않고 참기름만 찍히네요. 쥔장 할머니는 고소한 참기름에 정성까지 듬뿍 담아 뭐든 많이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우리네 할머니들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랄까? 어릴 때 우리 할머니는, 내게 주려고 홍시를 장롱 깊이 감춰 놓은 적이 있었다.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의 상을 치르고 장롱을 정리하다 홍시가 터져 옷이 전부 못쓰게 되었었는데.

 

갑자기 우리 할머니와 쥔장 할머니가 자매였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흉년에 업은 자식은 배불러 죽고 엄마는 배곯아 죽는다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네 할머니들은 다 그런 세상을 살아온 산 증인들이다.

-박상옥, 남해…… 막걸리가 막 끌리는 집(http://blog.daum.net/098oiu/6153732)

 

남해 설천면 문의마을 양모리학교 가는 길에 있는 집박걸리집에서 맛본 안주들,

◇의령 의병장 곽재우 유적

 

의병 활동을 하면서 곽재우는 그야말로 집안 재산을 홀딱 말아먹게 됩니다. 외가든 본가든 끌어올 수 있는 돈은 다 끌어모읍니다. 의병을 모으는 데 쓰기도 했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노비나 가난한 백성들을 모으면서 그 가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굶어 죽으나 맞아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진데 그래도 식구들 배불리 먹는 게 가장으로서 훨씬 더 좋았겠지요. 너무 없으면 사회와 국가나 남을 위해 나설 수도 없다는데, 지금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 많아도 나서지 않는 건 매한가지 아닌가 싶지요.

 

지금은 전시도 아니고 일제강점기도 아니니 의병활동이나 독립운동에 비길 수는 없지만 가진 사람들이 온갖 불법과 편법으로 끌어모으는 데 혈안이 된 것을 너무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일을 한 곽재우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듭니다.

 

블로거들이 곽재우 생가 앞 세간리은행나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 내놓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누리는 것도 사회와 국가를 바탕으로 그 속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획득한 것이고 나아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곽재우는 전쟁 후 이리저리 떠돌다 망우정에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납니다. 망우는 우환을 잊는다는 뜻이라 합니다.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고 그는 빈털터리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말하자면 사돈의 팔촌까지 그런 신세가 된 것이지요. 그렇게 살고도 마지막까지 잊고 싶었던 우환은 무엇이었을까요?

 

많이 가진 것이 권력이 되는 세상을 살면서 곽재우의 생을 더듬어 보는 일은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더불어 가진 사람들이 져야 할 의무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더 크고 많다는 것도 거듭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 반대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곽재우는 역사 속에 박제된 영웅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살아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달그리메, 곽재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떠올리다(http://dalgrime.tistory.com/228)

 

첫째, 임진왜란에서 일본이 패한 가장 큰 요인이 이순신 장군의 해전이 아니라 곽재우 장군의 민병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영화 <명량>으로 이순신 열기가 전국을 달구고 있습니다. 나도 …… 이순신 장군을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유일신쯤으로 알았습니다.

 

의령군 윤재환 선생에 의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패전한 가장 큰 요인으로 곽재우 장군의 민병을 꼽았습니다. …… <광해군일기>가 '재물을 늘려 몇 만 금이나 되었다. 시골 사람들이 비루하고 인색하다고 의심하였으나, 곽재우는 태연스레 지내면서 돌아보지 않았다'고 기록할 만큼 구두쇠 소리를 듣고 근검절약하며 재산을 모았는데 아마 머지 않은 장래 큰 위난을 예측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곽재우 첫 번째 승전이 있었던 기강나루에 세워진 보덕각과 쌍절각. 그리고 블로거들.

 

그가 의병을 일으킬 수 있었던 힘은 재산이었습니다. 의병들 가솔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었는데, …… 처음에는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므로 10명 남짓뿐이었으나 5월 4일 기강 첫 전투에서 승리하고 보니 이래저래 모여들어 2000이 넘었다고 합니다.

 

전라도로 향하던 왜군은 바다에서 이순신 해군에 막히고, 육지서는 생각도 못한 곽재우 민병에 막히니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준마도 발톱 밑에 작은 가시가 박히면 절룩거리듯이 파죽지세로 나가던 10만 왜군이 곽재우의 민병에 걸려 발걸음이 무겁게 되었습니다.

 

블로거들은 이밖에 성황리 소나무를 비롯해 의령 명품을 몇몇 더 돌아봤답니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인 도요토미까지 인정한 조선 으뜸 장수이건만 곽재우 장군은 본인은 물론 인척들 재산까지 나라에 바친 탓에 후손들이 크게 번성 못하고 썩은 조정에 의해 그 공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였기에 지금까지도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선비, 임진왜란 일본 패인은 이순신보다 곽재우다(http://sunbee.tistory.com/364)

 

곽재우는 평민 신분이 아닌 양반가의 자제입니다. 생각이 바르지 않았더라면 양반댁 자제가 의병을 모집하지 않았을 것이며 활동으로 이어지지도 않았을 텐데, 스승인 조식 선생의 실천사상을 곽재우는 행동으로 옮겼는데, 사람이 살면서 부모 영향을 가장 많이 받지만 스승은 제2의 부모와 마찬가지입니다.

-실비단안개, 정암철교를 걸으면 곽재우 장군이 더 크게 다가온다/정암루, 정암나루, 솥바위(http://blog.daum.net/mylovemay/15534122)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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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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