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마창노련’을 두고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지는 꽤 오래 됩니다. 1999년에 책이 나왔고, 제 결심은 아마 그보다 한 반 년 뒤 즈음이리라 짐작이 됩니다. 처음에는 화가 많이 났습니다. 지금은 화가 다 가라앉았습니다.

‘내 사랑 마창노련’은 1987년 12월 14일 창립해 1995년 12월 16일 해산한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8년 역사를 담은 책입니다. 발간 주체는 마창노련사 발간위원회, 발간인은 해산 당시 의장이었던 이승필 씨, 글쓴이는 소설가 김하경 씨로 돼 있습니다.


드물게 포폄이 없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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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화가 났던 까닭은, ‘내 사랑 마창노련’(하) 441쪽과 442쪽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마창노련 역사는 앞뒤가 뒤바뀌었고 본말이 뒤집어졌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특정’한 관점 또는 태도에 유리한 내용만 담겨 있습니다. 의도한 바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결과를 두고 보면 딱 그렇습니다.

게다가 441쪽과 442쪽에는 포폄(褒貶:기리기와 깎아내리기)도 없습니다. 포폄은 역사 기록에서 기본이라 합니다. 김 씨는 같은 책에서 잘못한 주체가 마창노련이 아닌 상대방일 때는 물론이고 마창노련일 때조차도, 나름대로 비판을 해놓고 있습니다.

게다가 때로는 ‘영웅적’이니 뭐니 하는 상투적 언사가 거슬릴 때도 있기는 하지만, 김 씨는 잘한 일에 대해서는 대체로 분명하게 추어주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441쪽과 442쪽에는 칭찬도 비난도 없으니, 조금은 낌새가 이상한 구석입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

441쪽의 작은 제목은 <(가칭)‘한국노동당 건설 추진위원’ 서명 파문>으로 돼 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기사가 쓰일지 미리 짐작이 가는 제목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내용을 읽어보면 짐작했던 바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록의 대상은 1992년 1월 17일 경남대에서 열린 마창노련 제3차 정기 대의원대회입니다. 이날 기습하듯이 제기된 한국노동당 건설 추진위원회 관련 안건입니다. 여기 ‘내 사랑 마창노련’의 기록은 꼬여 있습니다. 그래서, 당사자이기도 했던 저 같은 사람조차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 읽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


객관 사실을 장막으로 가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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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 있었던 옛날에는, 글을 써서 상대방을 공격하고, 가능하다면 되도록 큰 타격을 입혀야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저와 상대방이 노는 물이 태평양도 동해도 낙동강도 아니고 소주잔에 든 수돗물 정도로밖에 안 여겨졌습니다. 여기서 야단법석을 떨어봐야 ‘찻잔 속의 태풍’밖에 안 되겠다…….

지금은, 화가 많이 가라앉은 지금은, 상대에게 상처 입히는 글을 쓸 생각은 없습니다. ‘내 사랑 마창노련’에서 소설가 김 씨가 가려 놓은, 그리고 드러내지 않은 부분을 그대로 되살려 놓고 싶을 따름입니다. 어느 누구를 괴롭히려는 생각은 이미 제 머리에 없습니다.

사실 ‘내 사랑 마창노련’에 잘못 또는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역사 연구자나 학자가 아닌 소설가에게 역사를 쓰도록 했다는 데 있다고 저는 봅니다. 역사 연구자나 학자였다면, 자료를 정리하는 한편으로, 중요한 관련된 사람들을 죄다 만나러 다녔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설가가 쓰다 보니, 자기한테 불편하거나 자기랑 생각이 다르겠다 싶으면, 그 사람이 아무리 중요해도 만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단정하는 까닭은, 아주 중요한 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도 김 씨와 만난 적이 없다 했고, 나름대로 중요한 다른 한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도 김 씨와 만난 적이 없다 했기 때문입니다. (소설가 김하경 씨는 저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운동도 일찍 시작했고, 우리 ‘경남도민일보’ 논설실장까지 하셨고, 제가 문학 담당 기자일 때 깊이 있는 인터뷰도 했고, 제가 그 댁에 가서 논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면을 할 때는 대체로 ‘선생님’이라 이르지만 이 글에서는 공식성이 크고 객관적인 거리 유지도 필요하니까 때로는 ‘김(하경) 씨’, 때로는 ‘소설가 김(하경) 씨’로 표현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해당 부분은 상상력이나 자기 논리로 채웠습니다. 그렇게 메운 가운데 하나가 바로 441쪽과 442쪽의 한국노동당 건설 추진위원회 관련 부분입니다.


장막에 가려진 역사1


1992년 1월 17일 정기 대의원대회 장소에는 경남노동자협의회의 쟁쟁한 용사들, 이혜자 씨라든지 박성철 씨라든지가 포진해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노동당 건설 마산·창원 추진위원회 집행부 가운데 하나였던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마창노련 정대에 앞서 ‘상급조직’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는 중앙위원회를 열어 밤샘 격론 끝에 ‘한국노동당 건설 추진위원회’에 대한 방침을 정리합니다. “①개인의 정당 활동(정치 참여)은 보장한다. ②전노협과 지노협(지역별 노조협의회)의 임원(중앙위원)은 공식 직함을 사용한 정당 활동은 자제한다. ③전노협 임원은 개인 이름을 사용한 정당 활동과 공공연한 정당 활동을 자제한다.”


이 방침은 전노협이 지노협의 상급조직이기 때문에 중앙뿐 아니라 마창노련 같은 지노협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날 정대에서 이혜자 씨와 박성철 씨의 지휘 아래 이를 뒤엎는 안건이 상정됐고, 경노협 쪽은 자기네들 ‘쪽수’를 믿고 그야말로 말 그대로 ‘밀어붙여’ 버렸습니다. 우리 쪽 사람들의, “어떤 일이 있어도 전노협 중앙위원회 결정사항은 지켜져야 한다.”는 외침은 당시 이들 패권주의 다수의 비웃음거리밖에 못 됐습니다.

당시 결정 사항은 ‘마창노련 임원과 집행위원은 정당 활동을 할 수 없다.’였습니다. 이로써 상급조직 전노협의 중앙위원회 결정은 쓰레기통으로 던져졌습니다. 이로써 정당 활동의 자유 보장이라는 노동조합운동의 대원칙도 깨졌습니다. 이로써 전노협 중앙위의 ‘정당 활동을 자제한다.’는 뜻은 ‘정당 활동을 하면 안 된다.’로 왜곡됐고, 또 그 범위도 전노협 중앙위원에서 마창노련 집행위원까지로 크게 넓어졌습니다.


장막에 가려진 역사2


그 뒤 이어진 정대는 경노협이라는 승자가 한국노동당이라는 패자에게 ‘무릎을 꿇어라.’고 강요하는 자리였습니다. 정대를 앞두고 전형위원회를 통해, 마창노련 임원진 후보로 오른 사람들과 (국장급인) 집행위원 후보로 오른 사람들이 앞으로 불려나갔습니다.


불려나온 이들에게 ‘둘 가운데 하나를 골라잡아라.’는 강요가 이뤄졌습니다. 부의장 후보를 비롯한 여럿이 이미 한국노동당 건설추진위원으로 이름을 올려놓은 상태였습니다. 이를테면 추진위원에서 명단을 빼고 활동을 중단하지 않으면 부의장이나 집행국장을 할 수 없다는 꼴사나운 협박이었습니다. 인사 청문회에서 불법을 저지른 후보를 죄인 다루듯이 하는, 딱 그런 풍경이었습니다.

지금도 이름을 대면 아는, 지금은 당시 충격에서 벗어나 일선으로 돌아오기도 한 사람들 대여섯이, 그 때 울면서 회의장을 떠났습니다. 노동조합운동이란 원래 정치 사상 종교 등등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 노동자면 누구든 참여하는 운동이 아니냐면서, 노조조직 간부를 못 맡는 조건에 어떻게 노동자 정당에 추진위원으로 가담했다는 점이 꼽힐 수 있느냐면서…….

어쨌거나, 경노협들은 이렇게 해서 자신들과 생각이 안 맞는 사람들을 완전 배제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는 자기들 말을 잘 들었던 허연도 씨를 의장으로, 안준환 씨(당시 세일중공업노조 위원장)를 부의장으로 앉힙니다. 당시 정대가 목표로 삼았던 지도력 확충은 여기서 멈추고 맙니다.(허연도 씨나 안준환 씨는 나중에 내팽개쳐집니다.)

그 전 해 구성돼 활동해 온 전형위원회의 성과를, 경노협은, 단 한 방에 날려버렸습니다. 전형위원회는, ‘내 사랑 마창노련’(상) 395쪽에, “(9월 6일 열릴 예정이던) 정대가 무기한 연기되면서, 임원진 구성과 재정 적자 등 어려움을 조합원과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만들지 못하게 되었다. 마창노련은 시급한 문제 해결을 위해……9월 16일 단위 노조 대표자들로 의장단 선출을 위한 ‘전형위원회’를 구성하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같은 해 7월 수배 중이던 이흥석 의장이 구속된 다음, 안 그래도 지도력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던 마창노련이 완전 지도력 없는 상태로 갔고, 전형위는 이를 어떻게든 극복해 보고자 만든 조직이었습니다.


교묘하게 비틀어 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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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소설가 김 씨는 발단에서부터 “전노협 결정 사항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마창한노당’이 마창노련 제3차 정대에서 이의를 제기하고,”라 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마창한노당’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전노협 중앙위원회 결정은 그대로 준수해야 한다.”고만 했을 뿐입니다.

중앙위 결정에 무슨 해석을 해야 할만큼 모호한 구석이 있지도 않으며 오히려 단순 명쾌합니다. 여기에다 자기들 이해에 따라 ‘자제한다’를 ‘하면 안 된다’로 갖다붙이고 그 범위를 전노협 중앙위원에서 지노협 집행위원까지로 넓힌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결정 위반이고 이는 징계 사유까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안건을 경노협들은 당시 ‘지노협 임원진과 집행위원까지 전노협 중앙위 결의에 따른다.’는 문장으로 표현했습니다. 글자 그대로만 뜯어보면 참 우스운 문장입니다. 전노협 중앙위 결의면 지노협 임원진과 집행위원뿐만 아니라 소속 조합원이라면 모두 따라야 마땅하니까요.


‘말도 안 되는’ 안건을 ‘우스운’ 문장에 담은-또는 담을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저는 나름대로 짐작해 봅니다. 전노협 결정을 뛰어넘었다거나 어겼다든지 하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문장을 만들려다 보니 이렇게 됐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김 씨는 ‘지노협 임원진과 집행위원까지 전노협 중앙위의 결의에 따른다.’는 당시 정대 결의가 무슨 뜻인지 밝혀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밝혀놓지 않은 상태에서 “한노당 추진위원으로 서명한 마창노련 운영위원들은 마창노련에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고 뒤 이어 적었습니다.

공개 질의서는 앞에 말씀드린 그런 사정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마창노련 정대 결의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무슨 엉뚱한 일로 딴죽을 거는 정도로 읽힐 수 있습니다. 그 같은 효과는 ‘내 사랑 마창노련’에서 아주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결정한 주체와 그 의미는 가려져 있고 그에 항의하는 주체와 그 내용만 나와 있습니다.


이른바 상대방 없이 하는 ‘섀도복싱’입니다. 그런데 정작 독자는 섀도복싱인줄 모릅니다. 그러니 독자들 눈에 한국노동당 건설 추진위원회 또는 추진위원으로 서명한 마창노련 운영위원들이 하는 행동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441쪽과 442쪽에 이어지는 대부분 문장이 그렇게 짜여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죠?


게다가 당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던, 전형위원회에서 전형된 많은 인사들이 사퇴 의사를 표명하고 그만두는 장면은 통째로 빠졌습니다.
당시 임원이나 집행국장 맡으려고 했던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그렇게 해서 다들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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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역사 기록은 이렇게 돼야 합니다. “전노협 결정 사항에 나오는 ‘자제’를 ‘강제’로 간주하고 나아가 강제하는 범위를 전노협 중앙위원에서 지노협 집행위원까지로 확대해 상급 조직의 결정을 위반하려는 세력이 있었다. ‘마창한노당’은 이에 이의를 제기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전노협 중앙위원회의 결의는 지켜져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다.” 

그런 다음에, “마창노련 제3차 정대 결의는 정치 활동의 자유를 대폭 제약하는 결과를 낳았다. 마창노련에서 중앙위원급은 의장과 부의장 등 두셋밖에 안 되며 이들만 전노협 중앙위원회 결정에 따라 활동 자제 대상에 포함된다. 그런데 마창노련 정대는 자제를 금지라 못 박으면서 대상도 마창노련 집행위원급 최소 열다섯 명으로 크게 늘렸다.


이번 정대는 지도력 확충이라는 목적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한국노동당 건설 추진위원은 임원이나 집행위원을 할 수 없다는 결정 때문이었다. 넉 달 가량 되는 전형위원회 활동을 통해 부의장 또는 집행국장으로 물망에 올랐던 이들이, 추진위원을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윽박에 밀려 줄줄이 조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기록으로 남기고 싶을 뿐!


저는 이 같은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을 뿐입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은 생각은 이미 없어졌습니다. 제가 기록을 남기면 ‘내 사랑 마창노련’이 유일한 기록은 아니게 됩니다. 제가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기록’은 ‘내 사랑 마창노련’ 말고는 없습니다. 그것을 막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글문(말문이라 썼다가 고쳤습니다.)을 트고 싶습니다.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내 사랑 마창노련’이, 많은 사람들을 두 번 죽였다는 얘기였습니다. ‘내 사랑 마창노련’의 일도양단 칼날 앞에서, 당시 많은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 아무 고민도 없는 밥벌레처럼 단죄를 받았다는 얘기입니다. 어쨌거나 저는 이런 목적으로 글을 남깁니다. 이에 대한 김하경 씨의 글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박성철 씨 이혜자 씨 그리고 나아가 (경노협을 이끌었던) 문성현 씨의 글까지도 기다립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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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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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08.02.24 2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쓴 김훤주입니다. 읽어주시라고 쓰지는 않았고,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하소연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썼습니다. 제 마음을 작으나마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2.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기록하는 사람 2008.02.24 2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핏 지나가는 말로 들은 적은 있지만, 이런 사연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건 처음입니다. 다음에 술 한잔 하면서 이 글에서 생략된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름까지 알게 되길 희망합니다.
    역사는 기록으로 남지 않으면 역사가 아닙니다. 기록으로 남은 것만 역사로 인정됩니다. 문자 이전의 시대(선사)와 이후의 시대(역사)가 그래서 구분되는 거겠죠.
    누군가를 비난 또는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닌, 올바른 역사를 위해서라도 기록은 꼭 필요합니다.
    다른 방식의 더 구체적인 '기록'을 고민해봅시다.

  3. 운객 2008.02.24 2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마창노련
    그립습니다.
    교묘하게 노동운동을 핑계되고
    아직까지 경남지역에서 정치판에서 활보하는
    저질적인 인사들 지금은 사라져가지만
    사심이 없고 노동자를 위한 노동자 길을 가든 그들은
    우리 곁에 없답니다.
    아~~~~~~~~~~~그들이 그리워지는 밤입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08.02.25 07: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마창노련의 역사는 <운객>님 같은 분이 아마 이어가지 싶습니다. 저도 <운객>님이 그리워하시는 그이들이 그립습니다.

  4. Favicon of https://redmovie.tistory.com 구자환 2008.02.25 09: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벽하게 이해를 못했습니다만 정황만 살펴보고 갑니다. 90년 초까지의 노동운동의 역사가 제 머리속에 없는 탓이기도 합니다. 90년 앞시기에 전 의경으로 군복무중이어서 당대 노동을 비롯한 사회운동 이야기가 나오면 한편으로 소침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당대 이야기가 있으면 듣고 보고 하지만, 그 속에서 뭔가 텅빈 느낌도 받게 되네요. 그게 혼자서 운동판에 뛰어 든 놈의 한계인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암튼 부러운 마음으로 글 잘 읽고 갑니다.

  5. Favicon of https://redmovie.tistory.com 구자환 2008.02.25 0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그리고 이건 속내인데요, 해두 해두 너무합니다. 블로그를 만든 이후에 안 사실이지만 김주완 기자도 이곳으로 이사를 했더군요. 그래서 내심 블로그로 경쟁을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어떤 일에서 남몰래 경쟁상대를 설정하고 가는 것이 버릇인지라.. 또 그게 재미 있기도 하구요. 그래서 김주완기자 블로그와 몰래 접속자 경쟁을 벌이기로 했는데, 며칠 가지 않아서 엄청난 차이로 벌어져 버리더군요. 앞서기 힘들거라는 생각이 바로 굳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헉 헉대며 숨차하고 있는데, 이건 또 무슨 날벼락입니까? 게다가 문인인 김훤주 기자까지 가세를 하다니요? 이건 사람을 정신적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겁니다. 시작부터 전의를 상실케 만들면 두 사람은 행복합니까? 그리고 이럴 땐 뭔가 보상을 해줘야 하는거 아닌가요?

  6. 이김춘택 2008.04.30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주위 사람에게 이 글과 관련된 이야기를 언뜻 들은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 들어와서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김훤주 님께서 지적하진, <내사랑 마창노련 > 441쪽, 442쪽의 내용에 대한 문제제기는 읽는 이에게도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또, 이 문제제기에 대해 김하경 선생님이 어떤 입장을 가지실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내사랑 마창노련'에 잘못 또는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역사 연구자나 학자가 아닌 소설가에게 역사를 쓰도록 했다는 데 있다"는 부분입니다. 사실 좀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역사는 역사가와 학자만이 제대로 쓸 수 있는 걸까요? 얼마전 나온 <청계, 내 청춘>이라는 청계피복노조사를 읽으며 저는 그 책을 소설가 안재성 님이 쓴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거듭 생각했었습니다. 김훤주 님의 주장과 달리 <청계, 내 청춘>은 '소설가가 썼기'에 현재에도, 이후로도 살아있는 역사로 오래 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근거도 뒷받침 되지 못한 소설가가 역사를 써서 잘못 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은 지금도 어려운 조건에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몇 되지 않는 노동소설가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훤주 님은 "역사 연구자나 학자였다면, 자료를 정리하는 한편으로, 중요한 관련된 사람들을 죄다 만나러 다녔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설가가 쓰다 보니, 자기한테 불편하거나 자기랑 생각이 다르겠다 싶으면, 그 사람이 아무리 중요해도 만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판단의 근거를 밝히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김하경 선생님이 정말 "자기한테 불편하거나 자기랑 생각이 다르겠다 싶으면... 만나려고 하지 않았는지"는 그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할 일이므로 논외로 하고, 역사가나 학자라면 안그랬을텐데 소설가이기 때문에 그랬다는 김훤주 님의 주장은 좋게 얘기하면 무리한 보편화의 오류이고 나쁘게 예기하면 개인적 감정이 앞선 억지 단정이라고 할 것 입니다. 저자가 소설가라서 문제라는 주장의 황당함이, <내사랑 마창노련>에 문제제기하는 글의 핵심을 흐려놓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08.05.01 0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엄숙주의는, 신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신학자에게나 어울리지 이김 선생처럼 노동운동을 잘 아는 노동운동가에게는 걸맞지 않습니다.

      그 표현은 그냥, 경쾌한 비판 또는 비꼼 정도로 여기시면 딱 알맞을 텐데요.

      그리고, 어쩌면, 이김 선생께서 이 <내 사랑 마창노련>을 꼼꼼하게 읽어보시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도 들기는 합니다. 이 책을 꼼꼼하게 뜯어서 읽어보면, 소설가 김하경 씨가 소설가가 되면서 갖추지 않을 수 없었던 그런 필력에 크게 기대고 있음을 바로 눈치챌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다르게 말하자면, 역사가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실증 정신이랄까 실증력 따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한계를, 이 소설가 필력이 가려주는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것이 무슨 사관(史觀)처럼 비치기도 하는데, 저는 이것을 '그야말로 진지한 표정으로' 비웃어주고 싶었을 뿐이랍니다.

  7. 이김춘택 2008.05.01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훤주 님이 제게는 '엄숙주의'의 딱지를 붙이시는 군요.
    "그냥, 경쾌한 비판 또는 비꼼 정도로 여기"면 될 것을 뭘 그렇게 따지냐고요.
    그러나 김훤주 님의 비판 또는 비꼼은 전혀 경쾌하지 않습니다.
    그냥, '저자는'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소설가 김 씨는'이라고 한 것은
    경쾌하다기 보다는 감정적으로 날선, 집요한 비꼼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제가 문제제기한 것은 김훤주 님의 비꼼이
    감정적으로 날 서 있다거나 집요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비꼼이 '부당'하다는 데 있습니다.

    김훤주 님의 답글을 보니 비단 <내 사랑 마창노련> 411, 412쪽 뿐만 아니라
    책 전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내 사랑 마창노련>이 "역사가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실증 정신이랄까 실증력 따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한계"가 있다는.
    김훤주 님의 느낌대로 <내 사랑 마창노련>을 꼼꼼히 읽지는 못했습니다.
    더구나 책을 읽을 당시에는 마창지역 노동운동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내 사랑 마창노련>을 다시 읽을 기회가 있다면 님의 평가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내 사랑 마창노련>에 역사적 실증정신이 빈약한 이유가
    '소설가' 김 씨가 책을 썼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그 부당함이 읽는 이를 거북하게 하고 혹은 불쾌하게 만듭니다.

    또 하나, 차라리 "나는 그래서 소설가 김씨가 무지무지 싫고 지금도 엄청 열받는다"고 하면 모를까
    "지금은, 상대에게 상처 입히는 글을 쓸 생각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를 괴롭히려는 생각은 이미 제 머리에 없습니다"라며
    겉으로는 짐짓 고상한 척, 점잖은 척 하면서
    정작 글에는 여전히 감정적으로 날 서 있고 집요한 비꼼을 드러내는
    일종의 이중적인 모습이 썩 보기 좋지 않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김훤주 님은 김하경 선생님을 정말 싫어하거나
    아니면 모든 것에 대해서 비비 꼬인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빈약한 실증정신을 소설가의 필력으로 가리고 있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 앞에다
    굳이 "소설가가 되면서 갖추지 않을 수 없었던"이란 수식어를 붙여
    또 한 번 비꼬고 있으니까요.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08.05.02 01: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김하경 씨가 사실을 크게 왜곡하는 잘못을 저지른 만큼 이런 정도 비꼼은 마땅히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이 엉터리 기록으로 한 동안 말조차 하지 못하게 됐던 피해 당사자이기 때문에, 제게 이런 정도 비꼬아 줄 권리는 있다고도 생각을 합니다.

      이 글에서 제가 한 비꼼을, <내 사랑 마창노련>으로 말미암아 제가 겪은 아픔과 견준다면, 이쑤시개로 손바닥을 한 번 살짝 찌른 정도밖에 안 될 것입니다. 가해자한테 이렇게 한 마디 쏘아 붙인 것이 그렇게 잘못되고 나쁜 일인가요?

      (<내 사랑 마창노련>이 나오고 나서 제가 나름대로 감정을 정리한 어느 시점에 이르기까지, 저는 그야말로 피눈물을 무시로 흘렸고 그러면서 처참한 복수를 다짐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무덤덤해졌습니다. 저는 김하경 씨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려고 애쓸 뿐입니다.)

      그리고 '저자'라는 표현을 저는 글에서든 말에서든 아예 일절 쓰지 않습니다. 대부분 '글쓴이'라 하고 때로는 '지은이'도 씁니다. 어쨌거나 저는 소설가라는 직업을 밝힌 일이 부당하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습니다.

      제 이런 표현이 부당하다고 여기시는 데 대해 그러지 말아 달라 말씀드릴 까닭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제가 그리 한 표현을 제가 잘못했다 여기거나 고칠 까닭도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신 말씀은 말씀대로 새겨듣겠습니다. 김하경 씨가 10년 전 <내 사랑 마창노련>으로 제 등짝에 칼을 꽂았지만, 그것을 빼내고 잘 치료하면 그만이지 제가 김하경 씨 등짝에 칼을 꽂아 앙갚음을 해줄 필요는 없겠지요.

      마지막 한 가지 부탁 말씀. 제 글에 대해서만 말씀을 해 주시죠. 잘 아시지도 못하면서 제 인격을 두고 이리저리 예단하시는 모습이 영 보기 안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