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거제시민은 광우병보다 대우조선이 걱정

기록하는 사람 2008. 7. 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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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가 들썩이고 있다. 쇠고기 광우병 파동이 문제가 아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 매각 문제가 그것이다.

매각이 잘못될 경우 거제시 인구의 40%가 생존권 위협에 처할 수 있다. 3만여 명의 상시 인력이 대우조선해양에 근무하고 있고, 가족까지 합치면 거제인구의 40%는 족히 넘기 때문이다. 자회사와 협력업체까지 포함할 경우 총고용 인원은 5만 2000여 명에 이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산업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거제 옥포만 대우조선해양 전경. /대우조선해양 제공


10조 원대 자산기업 졸속 매각 추진

가장 큰 문제는 대우조선해양이 해외, 특히 중국에 매각되는 것이다. 그럴 경우 한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의 조선강국을 꿈꾸는 중국이 한국의 핵심 조선기술을 빼돌린 후 회사를 공중분해시켜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해외투기자본에 매각될 경우도 마찬가지다. 회사를 조각내 팔아치워 자본을 회수한 후 손을 털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에 팔린다 해도 안심할 순 없다. 2007년말 현재 대우조선해양의 자산총액은 8조 원. 여기에다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 매각한다면 무려 10조까지 될 수 있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31.26%)과 한국자산관리공사(19.11%)는 최대한 비싼 값으로 팔아넘기기 위해 경영권을 얹어 '최고가' 매각을 추진 중이다. 이럴 경우 우리나라 대기업 중 10조 원에 이르는 매수대금을 감당할 기업은 없다.

기껏해야 1조~2조 또는 많아도 3조 원 정도의 자기자본에다 나머지를 해외 재무투자가와 차입금으로 충당할 경우, 그들의 투자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회사는 골병이 들 수 있다.  밖으로는 남고 안으로 밑지는 장사가 된다. 바로 이런 문제가 현재 대우조선해양의 내부 구성원들과 거제시민들의 고민이다.

거제 인구 40% 생존 위협 받을 수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대우조선해양 이세종 노조위원장. /김범기

그래서 노동조합(위원장 이세종)은 오래 전부터 이런 위험성을 제기하며 △해외매각 반대 △일괄매각 반대 △최고가 매각 반대 △매각과정에 당사자 참여 △우리사주조합에 주식 20% 우선매각 등을 주장해왔다.

노조의 이런 주장은 큰 위력을 발휘했다. 당장 중국 조선업체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골드만삭스가 매각주간사로 선정되자 이명박 정부의 '안보관'까지 의심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중국과 북한이 미국의 태평양 함대와 한국의 해군을 동시에 궤멸시킬 절호의 찬스가 온 것입니다. 중국과 북한이 대우조선의 잠수함 기밀을 빼내기 위해 얼마나 베팅(betting)할 수 있을까요?"

<조선일보>의 군사전문기자 유용원은 누리꾼의 이런 우려를 전하면서 "쇠고기 광우병 파동에 이어 이제는 이 대통령이 국가안보마저 팔아먹으려 한다"는 글들도 퍼져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조선일보>까지 '안보 분야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신뢰에 크게 금이 갈지 모를 사태'로 진단하고 나서자 산업은행이 다급해졌다.

특히, 지난 5월 16일 산업은행은 골드만삭스를 대우조선해양 매각 주간사에서 탈락시켰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골드만삭스가 탈락됐다고 해서 앞서 제기된 우려들도 해소된 것일까. 전혀 아니다.

올바른 매각투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세종 대우조선해양 노조위원장은 "진정한 투쟁은 지금부터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은행이 매각을 위한 본격적인 실사를 진행할 때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미 조합원 92%의 찬성으로 파업 결의도 해놓은 상태다.

그를 거제 옥포만 대우조선해양 노조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생존권 사수'라고 적힌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결사투쟁'이 적힌 붉은 조끼를 입고 있었다. 신발도 작업화였다.

-골드만삭스가 배제된 건 노동조합의 역할이 컸던 걸로 아는데, 좀 안심할 상황이 된 건가?

△골드만삭스가 아웃된 건 우리의 노력도 있었지만, 언론과 네티즌의 도움이 컸다.

만일 그대로 갔다면 광우병 쇠고기에 버금가는 안보불신이 확산될 상황이었다. 그러나 안심할 상황은 전혀 아니다. 중국은 국가차원에서 여전히 인수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10조 원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산업은행이 추진하고 있는 매각방식으로는 해외인수를 제한할 방법이 전혀 없다.

국외·일괄·최고가 매각 '절대 반대'

-중국이 왜 그렇게 인수에 적극적인가?

△조선산업의 주도권은 유럽과 일본을 거쳐 한국이 세계 제1위다. 다음은 공공연히 중국이 될 거라고 한다. 중국 스스로도 조선강국을 외치고 있다.

문제는 기술력이다. 아직 중국의 조선기술력은 우리나라에 한참 뒤처져 있다. 그걸 노리는 것이다. 따라서 대우조선해양 매각은 단순히 한 조선업체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조선산업 자체가 넘어가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기자와 인터뷰 중인 이세종 위원장. /김범기


-현행법상 해외자본 참여를 막을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산업은행이 매각차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영권을 포함한) 일괄매각, 최고가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게 문제다.

일괄매각, 최고가 매각을 하게 되면 산업은행은 덕을 보겠지만, 국가적으로는 부실매각으로 인한 부담을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중국 인수하면 핵심 기술력 빼앗겨

-왜 그런가?

△우선 해외매각이 되면 핵심기술력만 빼앗긴 후 회사를 쪼가리내 다 팔아먹고 손을 털어버릴 것이다. 그러면 대우조선은 없어진다. 이미 쌍용자동차의 경험에서 이걸 확인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 중에서도 가장 많은 자기자본을 부담할 수 있는 기업이 포스코인데, 고작 2조 원이다.

나머지는 해외 재무투자가나 차입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투자자의 이익을 보장해주느라 뼈골이 빠질 수밖에 없고, 결국은 재매각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막을 도리가 없지 않은가?

△골드만삭스 탈락에서 봤듯이 결국 국민의 힘이고, 여론의 힘이다. 또한 법원에 매각중지 가처분을 내는 것도 추진하고 있다.

일괄매각, 최고가 매각은 산업은행법 제18조 제5호 위반이다. 거기엔 지분의 매각이 중요산업에 해가 되지 않는 방법으로 '때때로 매각'하도록 하고 있다. 국가기간산업을 이런 식으로 팔아치워선 안된다.

-산업은행이 왜 이렇게 급하고 무리하게 추진한다고 보나?

△글쎄 모르겠다. 원래 산업은행 총재의 임기가 10월까지인데, 이명박 정부 들어선 뒤 사표를 썼다. 그런데 사표 쓰기 전에 매각 방침을 발표했다.

내 생각엔 아마도 매각 발표를 하면 사퇴 압력에서 자유로워질 걸 기대했던 것 같은데, 결국 물러났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급하게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갑자기 바뀌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매각 입장을 갖고 있다는 말인가?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이고, 최종결정권자는 결국 대통령이다. 참여정부 때 이해찬 국무총리를 만났는데, 이 총리는 '굳이 졸속으로 하지 않겠다. 노무현 대통령도 내 뜻과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고민없이 급히 발표된 흔적이 역력하다.

산업은행·이명박 정부, 무리수 말라

-그럼 어떻게 매각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가?

△일단 노동조합과 외부전문가들을 선정위원회에 참여시켜야 한다. 노조대표가 직접 참여해도 좋고, 노조가 추천하는 인사가 들어가도 좋다. 그리고 외부 공익인사와 정부인사도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매각을 하더라도 경쟁력을 강화하는 매각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나 산업은행이 끝까지 현 매각방식을 강행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최후의 수단은 총파업이다. 실사가 본격화되는 시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거제시민들도 서서히 심각성을 깨닫고 결합하고 있다. 거제가 생긴 이래로 최대규모인 67개 단체가 범시민대책위원회에 참여했다. 여기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모두 참여하고 있다. 경남도에서도 문제의식을 함께 하고 있다.

거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남 전체 지역경제, 나아가 대한민국 국가기간산업을 말아먹느냐의 문제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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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지역신문 기자의 고민과 삶을 담은 책. 20여 년간 지역신문기자로 살아온 저자가 지역신문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기자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풀어낸다. 이를 통해 서로 비슷한 고민을 가진 지역신문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촌지, 살롱이 되어버린 기자실, 왜곡보도, 선거보도 등 대한민국 언론의 잘못된 취재관행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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