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아들이 낯설어 보일 때

김훤주 2008. 2. 2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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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새벽, 아들이 배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배가 쥐어뜯듯이 아파서 밤새 변소를 들락날락 했는데 정작 똥은 나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 ‘병원 응급실로 갈까?’ 물었더니, ‘날 밝아져서 병원 문 열면 그 때 가요’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왜, 별로 아프지 않아서?’ 다시 물었더니 이 녀석 영화 ‘친구’에 나오는 이름난 대사 ‘쪽팔리잖아요!’ 했습니다.


어찌 됐든 이리저리 해서 병원에 찾아갔더니 초음파검사를 받아보라 했고 초음파검사를 받아봤더니 맹장염이라 했고 그래서 급기야 수술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아들은 그날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실에서 수술을 받고 나왔습니다.


저는 그날 아픈 아들 침대 아래 자리에 누워 밤을 보냈습니다. 아들은 저더러 ‘집에 가 주무세요’ 그랬지만 저는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별로 크지 않고 조그만 수술이지만 하루만이라도 같이 있어 줄 필요가 있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튿날 아침에 나올 때 ‘정오 즈음해서 다시 올게’ 했지만 무슨 일 때문인지 때를 맞추지 못했습니다. 그래 정오 살짝 넘은 시점에 손전화로 ‘4시쯤 갈게’ 문자를 보내놓고도 실제로는 6시 지나서야 병원에 들를 수 있었습니다.


아픈데도 아들 얼굴이 밝은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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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폰카'로 찍어준 아들 사진

아들 얼굴이 보기 드물게 밝았습니다. 입가에 웃음이 한 가득 물려 있었습니다. 아들이 평소 시간 약속에 민감하게 굴지 않아서, 제가 늦었다 해도 화내지 않을 줄은 미루어 짐작했지만 이렇게 웃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대충 자리에 앉아 아들 녀석 침대 둘레를 둘러봤지만 특별히 이상한 구석은 띄지 않았습니다. 마실거리 작은 병이 담긴 종이상자가 있었고, 조그맣고 동그란 케이크가 든 종이상자가 있었을 뿐입니다.


제가 이것들을 보며 묻기 전에, 아들 녀석이, ‘마실거리는 학교 친구들이 가져왔어요’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어서 턱짓으로 케이크를 가리키며 ‘저것은?’ 하니까, 아들 입이 다시 함지박처럼 크게 벌어졌습니다.

‘저거는요, 제가 진짜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가져왔어요. 그 여자 친구도 저를 진짜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요. 12시에 와 가지고 세 시간이나 있다가 갔어요.’ 오늘 아들 녀석 얼굴이 밝았던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갑자기, 우리 아들이 낯설어졌습니다. 아들 얼굴이 점점 ‘페이드아웃’돼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 얼굴은 웃고 있었습니다만……. 이제 아들도 인생 1막1장이 끝나 ‘누구누구의 아들’에서 ‘누구누구의 남자친구(또는 애인)’로 장면 전환을 하는구나…….


누구냐, 이름이 뭐냐, 잘 생겼냐 자꾸자꾸 물었지만 아들은 입술에다 커다란 웃음을 달고서, ‘비밀이에요’라고만 했습니다. 이름은 알아내지 못했고 아들이랑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가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으며 지금은 경남 창원 한 고교에 다닌다는 정도만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정보를 바탕 삼아 서너 시간 동안 집에서 아들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 앨범을 뒤적였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진짜’ 좋아하는 여자 친구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죽 훑어보면서, 이 아이일 수도 있겠구나 여겨진 사진은 몇몇 있었습니다.)


주민등록증 만들라는 종이

그러고 사흘 뒤 아들이 퇴원을 했고 아버지는 그 이튿날 대구로 출장을 갔습니다. 가는 길에 아버지는 아들 얼굴이 떠올라 손전화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문득 아들이 보고 싶어서리. 괜찮아? 아픈 데는 없고? 사랑한다, 아들!” 답글이 바로 왔습니다. “넹 괸찮아요. 주민등록증 만들라고 종이 왔어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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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외버스 의자에 몸을 묻고서 ‘주민등록증 만들라고 종이 왔어요’, 한참 바라봤습니다. 보면서, 좀 그럴듯한 표현이 없을까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그랬지만, 그러다가 결국은, 그야말로 평범한 문자를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래 울 아들 이제 다 컸구나! 부모 품 떠날 때가 됐네? 추카추카”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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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프랑크 지음 | 책만드는집 펴냄
192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대인 상인의 둘째 딸로 태어나, 베르겐 벤젠 수용소에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16세 짧은 생을 마감한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엮은 책. 1942년 6월 12일, 13세 생일 선물로 받은 일기장에 사춘기 소녀로서 성장해 가는 자신의 모습과 생각, 그리고 어른들 세계에 대한 비판과 전쟁 중에도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견지해 나간 연기를 솔직한 감성으로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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