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업계는 갈수록 어렵다는데, 신문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특히 지역신문이 그렇다. 최근 몇 년 간 전국에 지역신문 관련 강의를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은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 신문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흔히 광주․전남에 일간지가 많은 걸로 알려져 있지만, 그래봤자 20개에 미치지 못한다. 가장 많은 곳은 35개의 일간지가 난립해있는 경기도다. 주간지와 인터넷신문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다. 경기도청 출입기자만 1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도청만 그런 게 아니다. 얼마 전 만났던 경기도내 한 도시의 홍보담당 공무원은 “우리 시에 인터넷신문만 50여 개나 되는데, 대부분 하루 방문자는 100명도 안 된다”며 “그런 곳에서 광고를 달라고 하는데, 아주 미치겠다”고 고충을 털어왔다. 그냥 무시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떤 해코지를 할 지 몰라 그러기도 찜찜하다는 것이다.
작년에 가봤던 전남 여수시에도 출입기자가 100여 명에 달한다고 했다. 여수는 인구 30만 명도 안 되는 도시다. 그나마 신문 환경이 좀 괜찮다는 경남지역도 일간지만 10여 개에 달한다. 아니, 내가 모르는 일간지가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기자에게 월급을 제대로 주는 신문사가 아주 드물다는 것이다. 심지어 모든 기자가 ‘무보수 명예직(?)’인 신문사들도 있다. 대신 기자가 따온 광고료의 30%, 많게는 50%를 수당으로 준다. 내가 아는 한 일간지는 편집국장도 월급이 없다. 그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사원은 경리직원 한 명뿐이라고 한다. 사장은 월급이 없는 대신 유일하게 법인카드를 쓰며 수익금을 챙겨간다.
월급을 주는 신문사 중에도 희한한 곳이 많다. 며칠 전 경남지역 모 일간지의 주재기자가 이력서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경남도민일보로 옮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정년의 나이도 지난 분이었다. 그는 현재 100만 원의 월급을 받고 있는데, 매달 회사에 납입해야 할 신문지대가 100만 원이라고 했다. 신문지대는 기자에게 계약으로 할당된 구독료 대금이다. 그래서 사실상 자신의 월급은 제로라고 했다. 게다가 몇 달 전부터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광고 수당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남도민일보에서 자신을 받아주면 월 3000만 원씩 광고를 하겠노라 다짐도 했다. 안타까웠지만 정중히 거절하고 돌려보냈다.
이런 신문사는 언론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망할 염려가 없다. 인건비 지출 없이 기자가 광고를 따오고 신문구독료도 대납해주니 사주 입장에선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다. 그러니 이런 ‘사이비신문’은 자꾸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사회적 해악이 심각하다. 광고를 받기 위한 협박성 취재나 악의적 기사가 난무한다. 하지만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 허위사실로 인한 명예훼손이나 공갈․협박 혐의를 입증하여 형사처벌을 받게 하면 되지만, 사후 조치일 뿐인데다 그 과정도 결코 간단치 않다.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도마뱀 꼬리 자르기’식으로 기자만 희생되고 만다. 신문사 사장이 구속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발행인 명의만 바꿔 신문은 계속 발행된다. ‘사회적 공기’여야 할 신문이 ‘사회적 흉기’인 셈이다. 이런 신문에 들어가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도 막대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독버섯에 거름을 주고 있는 것이다.
도저히 방법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방법은 있다. 그것도 아주 간단하다.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신문사에는 지자체와 국․공립대학, 공기업, 출자․출연기관의 광고예산 집행을 할 수 없도록 하면 된다. 이것만 제대로 하면 사이비신문은 발붙일 곳이 없다. 하지만 사실 이건 지자체가 자발적으로 나서기 어렵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나서줘야 한다. 안전행정부나 문화관광체육부의 ‘지침’ 한 장이면 해결될 수 있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발행하는 '편집인협회보'에 실렸던 글입니다. '편집인협회보'는 마지막 문단을 다소 순화시켜 실었지만, 여기엔 제가 기고한 원문 그대로 올립니다.
이후 연합뉴스 이희용 기자가 한국언론재단 미디어가온에 연재 중인 '주간 미디어 리뷰'에 이 글을 인용하면서 "정부가 국무총리 훈령에 의해 ABC 부수공사에 참여한 신문에만 정부 광고를 집행하도록 했듯이, 이를 원용해 김 국장의 제안을 온-오프라인 매체에 시행한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코멘트를 달았더군요. 저는 원문에서 정부의 '지침'을 언급했지만, 총리 '훈령'이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이희용 기자 블로그 글 보기 http://blog.yonhapnews.co.kr/hoprave/post/119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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