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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우리가 밀양 할매·할배들 편을 드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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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 노동조합 정봉화 지부장이 내 자리에 와서 물었다. ‘밀양 송전탑 문제와 관련, 우리가 밀양 할매·할배들의 편에서 공세적인 보도를 하고 있는데, 어떤 전망을 갖고 그렇게 보도하고 있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했다.


“이건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다. 국책사업이란 명목으로 약자를 일방적으로 깔아뭉개는 국가폭력을 고발하고 기록하는 문제다. 언론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역할이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정봉화 지부장은 지난 16일 서울에서 열린 ‘밀양 송전탑 보도-언론의 양심과 역할’이라는 토론회에 패널로 참여하면서 편집국장의 생각을 취재한 것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논리대로라면 역사 이래로 자행돼온 수많은 국가폭력, 국가범죄들이 모두 합리화한다. 심지어 나치의 유태인학살이나 이승만 정권의 민간인학살도 다들 그럴듯한 명분은 있었다.


우리가 사는 마산에 수정만이라는 곳이 있다. 몇 년 전 마산시가 그곳을 매립하고 당초 용도와 다르게 조선기자재 공장을 유치하려 했다. 당연히 거기서 대대로 살아온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됐다. 보상금이라고 받아 다른 곳으로 이사해봤자 전세금도 못 되는 돈이었다. 목숨 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시 마산시내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정만 반대주민들을 ‘지역발전 방해세력’으로 몰아세웠다. 공장이 들어서면 고용이 창출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하는데 그쯤의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럴 때 신문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다수 독자의 이해를 대변해야 하므로 소수의 주민들을 ‘이기주의’로 봐야 할까? 나는 우리 기자들에게 ‘내가 그 입장이면 어떨까’를 생각해보라고 한다. 그게 과연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사업인지, 다른 방안은 없는지는 그 다음에 취재해보면 될 일이다.


지난 10월 11일 발행된 '송전탑 프로젝트' 특집면 표지.


다행히 우리 기자들은 밀양의 할매·할배들의 설움과 고통에 공감했고, 함께 산비탈을 오르고 함께 노숙하는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른 취재일정으로 바빠 사나흘 밀양에 가지 못하면 괜히 죄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이젠 국장이나 부장이 가라 하지 않아도 기자들이 자발적으로 간다. 지난 11일 4개 면을 특집판으로 발행한 것도 기자들의 자발적 건의에 따른 것이다.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기사는 물론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리고, 이를 긁어 뉴스사이트에 라이브 블로깅을 하는 것도 기자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이 문제를 좀 더 거시적으로 보기 위해 동국대 김익중 교수를 기자교육 강사로 초빙해 ‘탈핵’ 강의를 듣기도 했다.


기자들뿐 아니다. 지역의 시인들이 자발적으로 ‘탈핵 희망의 시’를 릴레이 기고하여 20여 차례에 걸쳐 지면에 연재되기도 했고, 밀양의 한 교사가 기고한 ‘밀양 송전탑 사태의 진실’이라는 글은 1면 전체를 털어 실리기도 했다.


물론 경영진 입장에선 난감한 일도 있다. 광고를 앞세운 한전과 밀양시의 은근한 압력도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신문이 힘있는 기관이나 다수의 편만 든다면, 힘없는 소수는 더 얼마나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할까? 우리는 다수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신문보다, 소수에게라도 ‘없어선 안 될’ 신문이 되길 꿈꾼다.


앞서 언급한 마산 수정만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를 수없이 깬’ 주민들의 승리로 끝났다. 그날 주민들은 잔치를 열고 경남도민일보를 정식 초대했다. 이런 맛에 지역신문하는 것 아닌가?


※미디어오늘 10월 30일자 '미디어현장'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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