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름을 하나 더 갖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별호(別號) 또는 아호(雅號)라고도 부르는 호(號)를 언론계 선배님으로부터 선사받았는데요. 제가 받은 호는 '태인(台人)'입니다. 별 태, 사람 인, '별사람' '별난 사람' 뭐, 그런 뜻으로 봐도 된다고 합니다.
더 좋은 뜻으로는 '별을 찾는 사람', '별을 품는 사람', '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볼 수도 있다고 하시네요.
얼마 전 우리 지역의 한 어르신과 호(號)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 분 말씀이 "나이가 들면 이름 말고 편하게 부를 호(號)가 하나쯤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이랬습니다. 대개 나이가 들어 정년퇴직을 하거나 직업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면, 그 사람이 가졌던 마지막 직책을 불러주게 되죠. 예를 들어 장관을 했던 사람이라면 지금은 장관이 아니라도 '김 장관'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장을 지낸 사람이라면 '김 사장', 국장이 최종 직책이었다면 '김 국장' 뭐 이렇게 부르는데요.
문제는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런 호칭이 자칫 위화감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장관이나 의원, 시장이나 군수, 사장 등 높은 직책에서 퇴임한 친구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을테니 말이죠. 물론 '친구들 사이에 그냥 이름을 부르면 되지 않냐' 할 수도 있겠지만, 나이 지긋한 분들이 어린아이처럼 '주완아'하고 부르기도 민망하다는 거죠.
그래서 호(號)가 있으면 모든 친구가 평등하고 허물없이 부를 수 있다는 게 그 어르신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럴 듯하더군요.
그러고보니 지난 2006년 저희 경남도민일보에 이창수 당시 새사회연대 대표가 쓴 호(號)에 대한 칼럼도 있더군요.
"대부분 태어나서 부모가 이름을 지어 주게 되는데 이것은 부모가 자신에 대한 바람이나 생활조건, 부모의 인생관들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정작 이름의 주인인 나는 자신의 이름에 자신의 바람대로 담을 수가 없다.
이럴 때 또 다른 별칭인 '호'를 갖고 있으면 그것은 자신이 귀속적으로 터득한 삶과 바람을 담고 그 뜻으로 불리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자기 스스로가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갖는다는 것이다. 호를 갖는 다는 것은 자기 삶을 의식적으로 살아가는 하나의 표상이기도 하다."
"호는 친구, 스승이 지어 줄 수 있지만, 자신이 지어도 괜찮다. ... 그렇다. 이름과 별도로 호를 짓고 그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런 맥락에서 누구든지 호를 짓고자 하면 삶을 성찰하게 된다고 본다."
"호를 짓고 쓴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는 말이 와닿는군요. 이번에 제가 받은 호에 걸맞는 사람이 되려면 남은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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