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가 지난 11일로 만 열네 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1일이 토요일이어서 13일자로 창간 14주년 기념호를 냈습니다.


대개 신문사의 창간 00주년 기념호는 평소보다 지면을 대거 증면해 특집기획기사를 쏟아내곤 합니다.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 볼 때 한꺼번에 늘어난 대형 기획기사들을 다 읽으려면 평소보다 많은 시간을 추가로 투자해야 합니다. 또한 그런 기획은 대체로 읽기에 부담스럽고 무거운 주제가 많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그런 창간 기념 기획특집 기사들은 '나중에 시간 날 때 읽어야지' 하고 미뤄뒀다가 그냥 넘어가기 일쑤였습니다.


따라서 '준비를 많이 했구나'하는 인상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효율적이거나 독자를 배려한 지면구성이라 보긴 어렵습니다. 좋은 기획, 좋은 특집은 평소에 잘 하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간기념호를 낼 때 딱 4개면만 증면합니다. 그리고 이 날을 맞아 1면에는 독자에게 드리는 우리의 다짐을 싣습니다. 다른 특집도 우리 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목소리, 우리나라 언론 중 유일한 '독자모임' 대표들 인터뷰, 그리고 새로 시작되는 장기 기획시리즈(먹거리 특산물 스토리텔링 '맛있는 경남')에 대한 안내(프롤로그) 등으로만 꾸몄습니다.


2013년 5월 13일자 경남도민일보 1면


이번엔 1면을 좀 특색있게 만들어보기 위해 그동안 1면에 등장했던 사람들 사진을 중심으로 꾸미기로 했습니다. 이에 편집기자와 미술기자는 14주년을 강조하기 위해 나무의 나이테를 형상화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어떤 신문을 만들겠다'는 우리의 다짐을 싣기로 했는데, 편집기자는 200자 원고지 5매로 분량을 맞춰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래서 제한된 분량으로 최대한 압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4돌 경남도민일보, 지역공동체 소통망이 되겠습니다


아래는 압축했던 글을 좀 더 풀어쓴 저희의 다짐입니다.


다른 신문과 다른 지면, 지역공동체의 소통망이 되겠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3년 전부터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부쩍 저희 지면에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이를 통해 저희들이 추구하는 것은 '이웃과 이웃을 연결시켜주는 소통망 같은 신문'이며, 궁극적으로는 '지역공동체(Local Community) 구축'입니다.


저희가 지역신문을 만들면서 가장 아쉬워하는 점은 서구(西歐)의 지역사회와 달리 우리나라는 여론과 담론이 형성되는 '지역공동체'의 전통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신문을 통한 지역공동체 구축을 꿈꾸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올해는 독자 여러분과 좀 더 다양한 스킨십을 통해 가까이 다가가고자 합니다. 내 가까이에서, 언제든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실을 수 있고, 이웃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그런 친구 같은 신문이 되고자 합니다.


이런 원칙에 따라 독자에게 더 친숙하고 재미있는 기사, 더 심층적이고 공익적인 콘텐츠로 독자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의제와 이슈 집중 = 단지 구색만 갖추는 지면 구성을 거부합니다. 저희가 굳이 1면에 요약문(digest)을 겸한 인덱스(index)를 싣는 까닭은 의제와 이슈에 집중하기 위함입니다.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기사는 가급적 인덱스에 소화하고, 이슈 중심으로 1면을 구성하겠습니다.


특히 최근 '진주의료원 사태 진실 혹은 거짓'에서 보여드렸듯이 양쪽 주장을 기계적으로 중계보도하는 데서 벗어나 시시비비를 확실히 가리고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이야말로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역할입니다. 이를 저희 신문의 존재이유로 삼겠습니다.


◇내러티브와 스토리텔링 강화 = 건조하고 딱딱한 스트레이트 기사는 꼭 필요한 지면으로 한정하고, '호호국수 송미영 이야기' '우리가 몰랐던 편의점 이야기'처럼 재미와 감동이 있는 이야기 기사를 늘려나가겠습니다. 내러티브 기사는 무생물이 주어가 아니라 사람이 주어가 됩니다.


딱딱한 통계나 이론적인 설명이 아니라 우리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모순을 찾아내고,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내러티브 기사가 독자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독자밀착·독자참여 확대 = 독자에게 사랑받는 북유럽 신문에는 1면에 한 평범한 중년 가장이 43번째 생일을 맞았다는 기사가 실립니다. 미국의 지역신문에는 동네 빵집 사장의 죽음이 1면 머릿기사로 올라갑니다. 저희가 '동네사람' '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 '떠난 이의 향기'에 공을 들이는 것도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많이 담기 위한 노력입니다.


올해들어 1면에 실리고 있는 '함께 축하·응원·칭찬해주세요'나 '가족인터뷰'처럼 독자여러분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지면을 늘리겠습니다.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든 저희 신문을 이용해주십시오.


◇공익 콘텐츠 생산 공공자원화 = 신문은 뉴스산업일뿐 아니라 종합콘텐츠산업입니다. 지난 한 해 연재된 '경남의 재발견'처럼 우리지역의 공공자산을 질높은 콘텐츠로 만들어 공공자원화하겠습니다. '경남 먹거리 스토리텔링-맛있는 경남'을 비롯, 사회적 기업 '해딴에'를 통해 다양한 공익 콘텐츠 생산에 앞장서겠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창간사


오늘 우리는 두렵고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존 신문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지역언론 하나를 세상에 내어놓습니다. 6,000여명의 각계각층 도민들이 한마음으로 뭉쳐 일간신문을 만들었다는 것은 경남 언론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거니와, 이를 위해 우리의 모든 정열과 노력을 쏟아 부었던 지난 6개월을 돌이켜 볼 때 벅찬 감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먼저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경남도민일보 창간을 위해 기꺼이 피와 살점을 떼어 준 6,000여 주주들의 높은 기대와, 예사롭지 않은 신문에 쏟아지는 전국적인 관심이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두려움과 중압감 속에서도 우리는 경남도민일보의 창간이 경남의 역사는 물론 한국언론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기념비적인 일로 남을 것이라 믿습니다. 


우선 경남도민일보는 '신문'의 주인과 '신문사'의 주인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도민의 신문'으로서 특정 대자본의 이해관계에 흔들려 온 한국언론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언론의 자유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국민 모두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의 언론은 민주화의 과정에서 국민들이 피흘려 쟁취한 언론자유를 소유자본이나 언론구성원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왔던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과정에서 언론은 부도덕한 권력과 자본의 횡포를 감시하고 비판하기보다 스스로 권력화 함으로써 참언론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저버려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우리는 이런 문제의 근본이 언론의 잘못된 소유구조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경남도민들은 전국에서도 유례가 드문, 전혀 새로운 신문의 소유구조를 창출했습니다. 


예로부터 경남은 외세의 침탈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의병의 구국혼과 형평사운동으로 표출된 인간해방의 정신, 그리고 3.1독립운동과 3.15의거, 10.18항쟁으로 이어져온 자주.민주.정의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고장입니다. 


개혁언론의 기치를 든 경남도민일보가 이 고장에서 창간하게 된 것도 이처럼 불의를 용납치 않는 경남인의 혼이 살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찍이 경남도민일보는 지역언론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덕목으로서 도민에게 드리는 21가지 약속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스스로 깨끗한 언론만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원론적인 인식에 따른 것입니다. 뒤틀린 현실 속에서 바른 길을 걷는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첫마음으로 돌아가 스물 한가지 약속을 되새기겠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것. 그것만이 경남도민일보에 쏠린 300만 도민의 관심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길이라 생각하며, 오늘의 이 두려움과 설레임을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1999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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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기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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