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

신문에 꼭 심각한 기사만 실려야 하나요?

기록하는 사람 2013. 4. 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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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께 보고 드립니다.


아시겠지만 저희 신문 1면에는 올 1월 1일자부터 '함께 ○○해주세요'라는 상자기사가 실리고 있습니다. '○○'의 자리는 '기뻐' '슬퍼' '축하' '응원' '격려' '위로' '칭찬' 등 여러 가지 말로 바뀌어 나갑니다. 생일·결혼·입학·졸업·합격·취업·출산 등 축하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고, 이웃이 불행 또는 힘든 일을 당했을 때 격려나 위로, 응원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독자들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친구의 영양사 시험 또는 임용고시 합격을 축하하는 이야기, 엄마·아빠의 결혼 30년을 축하하는 딸의 편지, 여동생의 간호사 취업을 축하하는 오빠, 사관학교 동기들의 소위 임관 축하, 딸·아들의 탄생을 기뻐하는 아빠의 감격스런 이야기, 작은 시골 학교 선생님이 자기 반에 입학한 '독수리 5형제'를 환영하는 글, 아들의 첫돌, 친구의 결혼, 남편의 귀국, 세쌍둥이의 입학, 64세 만학도의 졸업, 아들·며느리 칭찬, 국토대장정 완주, 한진중공업과 가야IBS 버스노동자 응원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연들이었습니다.



저는 독자들의 이런 글과 사진을 볼 때마다 보낸 이의 따뜻한 마음과 축하·응원을 받은 사람의 흐뭇해하는 모습이 떠올라 빙그레 미소를 머금게 됩니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다고들 하지만, 이 코너를 보면 아직 우리 사회는 정(情)이 넘치는 곳이란 생각이 들어 훈훈해집니다. 그러면서 정작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 반성도 됩니다. 여러분도 그러신가요? 그러시면 참 좋겠습니다.


사실 이런 코너가 외국 신문에선 별로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노르웨이의 〈Adresseavisen〉라는 신문은 거의 모든 지면에 지역주민의 일상·출산·결혼·사망 소식을 다루고 있으며, 아예 1개 면을 털어 독자들이 보내온 생일 축하 메시지를 게재하고 있습니다. 서양에선 이런 지면을 'PERSONAL' 페이지라고 부릅니다.


케빈 베이컨의 6단계 이론(six degrees of separation)이라는 게 있습니다. 전 세계의 누구든 평균 6단계만 거치면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그 이론이 지금은 SNS시대를 맞아 더 좁혀지고 있으며, 한국사회 아니 경남지역사회에 적용하면 2~3단계만으로 모두 연결될 수 있다고 합니다. 비단 이런 이론적 배경이 아니더라도 외국의 잘나가는 지역신문은 '지역 커뮤니티'를 지향하며 '이웃과 이웃간의 소통망 같은 신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은 많이 다릅니다. 신문이 '몽매한 국민을 계몽하고 계도해야 한다'는 인식이 구한말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1면에는 무조건 무겁고 심각하며 중요한 기사가 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만한 배경이 있습니다. 군국주의 시대 일본 신문을 보고 배웠고, 일제 식민지와 오랜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역설적으로 언론의 사회적 역할이 강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시대는 바뀌어도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입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정론지로서 그 역할을 결코 포기하거나 축소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 치밀하게, 더 강력하게 시시비비를 가리고 포폄(褒貶)하겠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독자의 삶을 지면에 담는 일도 끊임없이 확대해나가겠습니다. 지역밀착과 독자밀착을 넘어 독자가 직접 참여하여 만드는 신문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경남도민일보〉는 하루 20~24면, 110여 건의 기사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 중 1건이 '함께 ○○해주세요'라는 코너입니다. '함께 ○○해주세요'라는 코너에는 글솜씨가 없는 분도 전화만 주시면 참여할 수 있습니다. 문장이 서툴러도 저희가 다듬어드립니다. 코너의 인기가 넘쳐 하루 1건을 도저히 소화하기 어렵게 되면, 노르웨이 신문처럼 별도의 지면을 마련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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