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꿔온 ‘한여름밤의 꿈’을 현실에서 만들며 살지요.”

여러 가지 단체 활동도 접고 30년 넘는 교직 생활도 접고 이태 전에 우포늪이 있는 창녕군 유어면 세진 마을로 들어간 이인식 선생.
그이는 지금 들어간 마을에 뿌리를 내리려고 합니다. 어디든지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운동이 제대로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그이가 하려는 운동은 마을 어르신과 함께 자연학교를 운영하고 게스트하우스를 겸하는 생태도서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고향 세진 마을을 떠나 사는 자식들의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 마을 어르신들이 교사로 참여해 가르칩니다.
옆에서 보기에는, 조금씩 뿌리가 내려지는가 봅니다.


1. 창녕 세진 마을에 스며들다

이인식 선생을 만난 날은 3월 25일 일요일이었습니다. 이 날 일본 손님을 맞았습니다. 선생은 알려진대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출신입니다.

그 때 인연이 이어져 18년째 교류를 하고 있는 일한합동수업연구회 유키오 요시모토(善元 幸夫) 대표 일행입니다. 명지대학교 일본어과 강사로 있는 재일동포 3세 윤조자씨도 함께 했습니다. 윤씨는 의령이 친정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를 한일합동교육연구회라 이릅니다.


이번 걸음은 3월 23일부터 이틀 동안 열린  '2012 합천 비핵ㆍ평화대회' 참가가 목적이었습니다. 합천에서 행사를 마친 다음 창녕 유어 세진 마을 이인식 선생을 찾은 것입니다.

유키오 요시모토 대표는 지난해 8월 5~8일 강원도 정선에서 열린 17차 교류회에서 “태평양 전쟁 당시 오키나와의 피해와 2011년 3월 터진 후쿠시마 쓰나미와 핵발전소 폭발은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에까지 큰 충격을 준 역사적 사건이며 생명과 인권, 평화를 위해 우리 모두가 학습해야 한다”는 발표를 한 적도 있습니다. 

스님, 사진작가, 일본서 온 선생님 등이 섞여 점심을 먹는 자리.


우포늪 들머리 한 밥집에서 점심을 같이 먹고 선생이 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창녕군 유어면 세진마을에 있는 그 집은 들머리 담장부터 달랐습니다. 알록달록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시도 한 편 적혀 있었습니다. 

‘누가 이 낱말을 만들었을까?/ 누가 땅 위에 흙을 덮었을까?/ 누가 모기들을 만들었지?/ 누가 피에로를 만들었나요?/ 누가 태양을 노랗고 하늘을 파랗게 칠해놓았을까?/ 누가 바다에 물을 담았지?/ 왜 내가 우는 걸까요?/ 누가 포크를 만들고 숟가락을 만들었을까?/……’


이인식 선생은 이 집을 빌려 살고 있습니다. 허름한 한옥을 일부 고치고 그 대가로 빌렸습니다. 짚으로 만든 삼태기랑 그릇 따위가 곳곳에 놓여 있었습니다. 대청마루에도 쓰다 남은 물건들이랑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만든 여치집 같은 공예품들이 가득했습니다.

마당에는 바지랑대가 받치고 있는 빨랫줄이 쳐져 있었습니다. 또 커다란 개도 한 마리 있어서 목줄이 팽팽해지도록 날뛰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반가워 그런 모양이었는데 사납지는 않았습니다. 선생이 목줄을 풀어주자 신나게 돌아다녔습니다. 저 쪽 개집 앞에 있는 개밥그릇에 먹이를 주니 눈 깜짝할 새 핥아먹어버렸습니다. 

안채 대청 마루 일부. 개사료를 꺼내는 이인식 선생.


선생은 개 이름이 행복이, 해피라 하면서 “주로 행복하고 때로 성가시다”고 했습니다. 개 때문에 어쩌다 귀찮기도 하지만 개로 말미암아 누리는 재미가 작지 않다는 얘기였습니다. 이인식 선생이 잠자는 사랑채는 길게 옆으로 트여 있었습니다. 사랑채에 있던 방 두 칸을 터서 하나로 만든 모양이지요.

행복이, 해피.


바깥바람을 막기 위해 창틀을 비닐로 감싼 사랑채 앞에서 선생은 말했습니다. “한꺼번에 열 명은 잘 수 있어요. 아이들이 오면 여기서 함께 자고 놀고 공부하고 하지요. 잠자기 전에 아이들이랑 아궁이에 불도 때지요.”


2. 우포늪 가에서 ‘따오기 학교’ 만들다 

그러고 보니 맞은편 담벼락에 ‘따오기 학교’라 새긴 나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2010년 8월 31일 명예퇴직을 하기까지 33년 동안 정규 학교에서 교사로 있던 이인식 선생이 여기에 마련한 주말 학교랍니다. 아이들 11명 안쪽으로 받아 1박2일을 함께 지냅니다.

따오기 학교 이인식 교장은 1953년 창녕에서 났습니다. 고향은 지금 사는 데가 아닙니다.  들어와 살기 시작한 때는 명예퇴직을 하던 해 8월 1일이랍니다. 선생은 평생을 교육운동과 환경운동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지난 성과를 바탕 삼아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는 거점으로 지금 여기를 잡았습니다. 


선생과 우포늪은 관련이 깊습니다. 우포늪 지키기 운동은 1993년 봄 해직 교사 신분이던 이인식 선생이 처음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포늪은 거의 버림받은 땅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원래부터 가치로운 습지였던 이곳이 제 값어치를 인정받아 오늘날 이런 정도로 보전되도록 만든 데는 이인식 선생의 이바지가 적지 않습니다.


여기서 선생은 두 가지를 꿈꾸면서 실행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습지 복원·생물 다양성 복원을 위한 모델 만들기가 하나랍니다. 선생은 밤낮 없이 우포늪 일대 모니터링에 열심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관련 자료와 정보를 모아 우포늪을 좀 더 높은 수준으로 복원하는 데 기초 자료로 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른바 환경인식증진=자연 생태 교육의 새 지평 열기가 다른 하나입니다. 평생을 교사로 지내왔지만 학교 안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학교 밖 현장에서 실현해 보겠다는 얘기입니다.


3. 해를 따라 살면서 모니터링 하다

이인식 선생의 일상은 단조롭습니다. 해를 따라서 합니다. 해를 시계로 삼는다는 말입니다. 새벽 5시 50분 즈음해 눈을 뜨고 일어나서는 우포늪으로 모니터링을 나갑니다. 다음에는 오전 10시~10시 30분 가까운 밥집에 가서 아침을 먹습니다.

이인식 선생이 묵는 사랑채.


아침을 먹은 다음에는 집에서 자료를 정리하거나 글을 쓰거나 요청 받은 강의에 나갈 준비를 합니다. 다시 오후 4시~5시 집에서 밥을 지어 저녁을 먹은 다음 다시 우포늪으로 나가 밤이 깊을 때까지 모니터링을 합니다. 


모니터링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나갑니다. 하루에 움직이는 거리가 적게는 5km, 많으면 15km남짓 된답니다. 보통은 8km안팎이고요. 이러니 단조로운 일상이라고 할만하지만 사실은 전혀 단조롭지 않답니다. 모니터링 나가는 현장이 날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현장에 나가더라도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이 또 날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죽 둘러보면서 모니터링을 하기도 하고 특정 지점에 고정해서 계속 모니터링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야생동물이 나오고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눈여겨보고 빠짐없이 기록하는 일일니다.

이런 모니터링은 선생의 페이스북을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지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우포늪 일대에서 시도되는 따오기 복원을 위해서도 소중한 자료가 되리라고 본답니다.


이런 식이라고 했습니다. 그이가 살그머니 보이지 않게 자리를 잡습니다. 그렇게 한 채로 이를테면 대대제방에서 고라니가 몇 마리 나타나고 멧돼지는 몇 마리나 돌아다니고 두루미가 어떻게 옮겨다니는지 살핍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지켜보면서 그런 동물들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는지 아닌지도 관찰한답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철두철미하게 관찰하면서 결과를 페이스북에도 올립니다.


이런 활동을 두고 정부나 자치단체 지원을 받아 해보라는 권유나 제안이 있었지만 선생은 받아들이지 않았답니다. 자유롭게 하고 집중하기 위해서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느냐고요? 연금이 있답니다. 전교조 활동으로 한 번 해직됐다가 복직됐기 때문에, 금액은 정상보다 절반이지만 먹고사는 데는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4. 아이들 불러모아 마을 어르신을 교사로…

다른 한 축은 따오기자연학교와 이를 통한 자연 생태 교육입니다. 명예퇴직 이전인 2007년부터 비슷한 일을 해오다 2011년 3월 12일 문을 열었습니다. 주말 기숙학교라 보면 됩니다. 전통 방식 모내기라든지 아궁이에 불 때기라든지 도끼로 장작 패기라든지 감자 심기라든지를 몸소 겪게 합니다. 

한 달에 한 차례 정도 아이들을 모아 이렇게 합니다. 아이들은 선생의 주말 모니터링에 조수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함께 모니터링을 나가 철새가 몇 마리나 되는지 세어보게 하고 거기서 본 풍경이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을 가르치고 마을 어른들이 살아온 삶을 익히게 하는 셈입니다.


지역 아이를 최우선 대상으로 하고 창원이나 울산 같이 멀리 떨어진 데서 오는 아이도 있습니다. 자유롭게 오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받습니다. 아이들이 성가시지 않으냐는 물음에 선생은 명답을 남겼습니다. “대부분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때로는 나를 거추장스럽게 합니다.” 앞서 집에서 키우는 개 ‘행복이’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말했었습니다.

뒤에 '따오기 학교' 간판이 걸려 있다.


선생은 이를 두고 이렇게 글로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33년의 교단은 ‘한여름밤의 꿈’이었지만, 지금은 짧은 주말의 1박 2일 프로그램이지만 현실로 하나씩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함께 꿈꾸어 왔던 자연에서 스스로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이곳에서 지켜보고 있지요.”


보람이 넉넉하게 짐작되는 글입니다. 올해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갔습니다. 올해 봄방학 때는 3박4일로 마을에서 캠프를 했답니다. 동네 어르신도 함께하고, 그 어르신들 손주손녀들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20명 규모로 마련한 세진마을 생태학교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닥나무 껍질을 가마솥에 삶아 채를 만든 다음 팽이를 돌립니다. 당산제도 했습니다. 일부나마 몇 십 년만에 재현했습니다. 자식들은 다 나가 살고, 그 아이들은 사촌도 모르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왔다가도 그냥 휑하니 가버리잖아요. 이렇게 동네 어르신들 참여하는 가운데 즐겁고 재미나게 보내면서 친척 관계도 알게 되는 효과까지 거뒀지요.”


선생이 이렇게 시골에 들어와 사는 까닭은 그동안 교육운동을 하면서 품었던 아쉬움 때문입니다. 생태 복원을 하고 보전을 하려 해도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마을 이장이 나름대로 잘해 왔어도 바뀌고 나면 끝장이었습니다. 새 이장이 협조하지 않으면 그랬습니다. 안에 박힌 뿌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인식 선생은 운동과 인생의 종착점을 이것으로 삼아야겠다고 여겼습니다. ‘내가 뿌리내리지 않으니까 제대로 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사니까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마을 전체가 마을을 떠난 자식들과 그들의 자식까지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이밖에도 우포늪을 전문적으로 소개·안내하는 일을 합니다. 짤막한 소개나 간단한 안내를 맡아 할 사람은 주변에 많지만 밤샘을 한다거나 새벽 또는 늦은 밤에 우포늪 현장에 나가 그에 알맞은 해설과 함께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이런 요청은 대부분은 그이 몫이랍니다.

같은 세진 마을의 정봉채 사진작가가 사는 집 마당에서.


또 있습니다. 지난 겨울은 추위가 혹독했습니다. 그래서 2011년 12월부터 독수리가 몽골로 돌아가기 전인 올해 3월까지 정육점과 도축장에서 기름 덩어리를 얻어와 2~3일마다 독수리들에게 줬습니다. 환경감시원, 자연환경해설사, 우포늪을 찾은 어린이와 가족들이 함께 나눠주도록 했습니다.

그이는 이런 일을 혼자 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그러면서 야생동물을 아끼는 마음이 생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행동은 않고 말을 앞세우거나 곁에서 바라만 보면서 이래저래 비평하는 것을 싫어하는 그이의 성격이 그대로 나타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5. 마을기업 ‘집 속의 집 우포늪 감동공간’ 준비

이인식 선생은 마을기업도 하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게스트하우스+생태도서관입니다. 세상살이나 운동 과정에서 지치고 상처입은 사람들이 와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어린이나 가족이 와서 우포를 느끼도록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름은 ‘집 속의 집 우포늪 감동공간’이라고 지어놓았습니다. 가까운 대지면 관동 마을에 퇴직금을 헐어 9000만원 들여 사놓은 500평 크기 창고가 바탕입니다. 커다란 창고 건물을 그대로 살리고 그 안에 필요한 게스트하우스랑 도서관 건물을 지어넣으니까 ‘집 속의 집’이라 한다 했습니다.


개인 소유로 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이를 출연해 비영리법인으로 따오기재단을 만들려고 합니다. 공동소유로 한 다음 동네 주민 등을 재단 이사로 모시고 완벽하게 자기 것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포늪에 온다고 할 때 책이나 텔레비전으로 사전 공부를 하지 말라 합니다. 책이나 텔레비전은 우포늪에서 좋은 장면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거든. 그런데 실제 우포늪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러니 기대만 잔뜩 하고 왔다가 실망하고 갑니다. 있는 그대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라는 것입니다.

자연 체험 학습 가운데 야생 동물 체험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다른 체험 교육은 머리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가능한데, 야생 동물 경우는 오래 관찰하고 경험하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거든요. 우리나라서는 제대로 하는 데가 한 군데도 없다고 할 정도지요.

여태 우포늪 일대에서 너구리를 관찰한 경험을 바탕삼아 이를 몸으로 표현하고 누려보는 너구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려 합니다. 한편으로 뒹굴뒹굴 놀고 다른 한편으로 이렇게 해서 자연을 익히도록 하자는 얘기입니다. 


다행히 정부 지원을 일부 받을 수 있게 됐어요.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지을 사람은 어떻게 구하느냐고요? 페이스북이 해결해 줬습니다. 페이스북에 이런 내용을 올리니까 어떤 사람은 추천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원을 했어요. 자원 봉사 개념으로 젊은 실험 건축가들이 하기로 돼 있습니다. 하하.”

정봉채 작가 사는 집 대청마루에서.


이인식 선생은 페이스북 친구가 1800명이 넘는데 이 소통하는 공간은 선생에게 커다란 자산이기도 하답니다. 여기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면 평균 50명 가량이 ‘좋아요’를 눌러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공감이 표현하는 셈인데, 이것이 앞서 말한 것처럼 선생이 일을 해나가는 데 힘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6. “한 달에 50만원으로도 살아지더라고요”

인터뷰를 마칠 즈음해서 돈이 무엇이라고 여기시는지 물어봤습니다. 조금은 뜬금없는 노릇이었지요. 잠깐 생각하더니 “명분이 있으면 돈이 있고 명분이 없으면 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명분이 있으면 일을 기획해 사람을 설득할 수 있고 그러면 돈이 생기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니까 선생에게 돈은 목적이 아니라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수단 정도인 모양입니다.


선생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그리고 마산교사협의회와 경남교사협의회)를 시작으로 운동에 나섰습니다. 전교조가 결성된 해인 1989년 해직됐다가 1994년에 4년 8개월만에 복직됐습니다. 


해직돼 있던 동안 선생은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의 전신인 마산창원 공해추방운동연합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마산창원 시민연합이라는 단체의 사무처장도 했습니다.

마산 청소년의 전화도 경남대학교의 강정기·김종덕 교수와 함께 만들었으며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지역에 꽤 영향을 미친 민간 도서관인 책사랑 탄생에도 이바지했습니다. 책사랑을 하는 데 3000만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없는 살림이었는데도 600만원을 선뜻 내놓았던 것입니다.


“혈기 왕성한 시절이었으니 열심히 했습니다. 2010년에도 제가 맡고 있던 단체 대표가 여남은 개였습니다. 명예퇴직하면서 싹 다 정리했습니다.”


지금 선생은 아내와 자녀랑 떨어져 혼자 지낸다고 했습니다. 불편하지 않으시냐 물으니까, “이게 아무래도 좋은 것은 아닌데, 그냥 혼자 사는 데 익숙해져버렸어요”라며 웃었습니다.


이인식 선생은 이렇게 버리고 우포늪이 있는 세진마을로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일상을 단순하게 해 놓으니까 한 달에 40만~50만원으로도 살아지더라고요.

15년 된 갤로퍼 자동차가 있기는 하지만 나다닐 때는 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아니면 걷습니다. 돈 쓸 데가 별로 없어요. 게다가 연금 말고도 이런저런 강연이나 기고, 자문에 따른 수입도 있으니까요.”


지금 맡고 있는 직책은 셋뿐입니다. 우포늪따오기학교 교장과 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공동대표와 우포늪 따오기 복원위원회 위원장. 따오기학교는 지금 여기 들어와서 하는 일이고 이 일을 하기 위해 이름을 걸쳐놓은 것이 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공동 대표랍니다.

그리고 우포늪 따오기 복원위원회 위원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서 따오기를 들여와 여기 창녕 우포늪에 복원하자고 주장한 데 따른 것으로 그냥 명예직일 뿐이랍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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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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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상기 2012.05.14 09: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곧 우포로 찾아뵙겠습니다.

  2. 조영래 2012.05.20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연 현재의 우포늪을 보존이라고 말할수 있을까요?! 우포늪의 내면을 한번이라도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우포늪은 썩어가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의 마구잡이 쓰레기 투척에 그럴수밖에 없지요. 우포늪 주위에 그흔한 쓰레기통 하나 없지요. 보존이라는 단어속에 꽁꽁 숨겨놓고 내면은 개방하지 않으니 그런말도 있지요. 고인물이 썩는법이라고. 맞습니다.우포늪은 썩어가고있습니다. 이건 보존이 아니라 방치라고 보여집니다. 환경운동하시는분들 전부 말로만 하지요. 우포늪에서 쓰레기하나 주워나 보고서 보존해야된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네요^^환경운동하시는 분들이 자가용끌고 돌아다니다니 정말어이가 없더군요. 떡하니 주차장도 있는데 말이죠?! 거기에 주차해놓고 산책겸 걸어다니며 우포늪을 보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걷기싫어 그좁디좁은 길에 시동걸어논 상태로 우포늪감상이라니 정말 환경운동 잘하시더군요^^제가 이런말을 하는이유는 우포늪은 현재 보존이 아니라 방치이며 중국이나 일본처럼 보존지역이라도 어느정도 선에서 친환경적으로 개발하며 완전오픈시키면 쓰레기투척이나 새벽에 몰래 폐기물투척같은건 조금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글적어봅니다.
    환경운동하시는 분들 태클거는건 좋습니다.하지만 어느정도 순리에 맞게 걸어달라이겁니다. 무조건 보존해야되니 개발은 안된다고만 하지마시라 이겁니다.
    저는 창녕 이방 소목에 살고 있는 귀농청년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글올려봅니다.

  3. 조영래 2012.05.20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연 현재의 우포늪을 보존이라고 말할수 있을까요?! 우포늪의 내면을 한번이라도 보셨는지 궁금하네요. 우포늪은 썩어가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의 마구잡이 쓰레기 투척에 그럴수밖에 없지요. 우포늪 주위에 그흔한 쓰레기통 하나 없지요. 보존이라는 단어속에 꽁꽁 숨겨놓고 내면은 개방하지 않으니 그런말도 있지요. 고인물이 썩는법이라고. 맞습니다.우포늪은 썩어가고있습니다. 이건 보존이 아니라 방치라고 보여집니다. 환경운동하시는분들 전부 말로만 하지요. 우포늪에서 쓰레기하나 주워나 보고서 보존해야된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네요^^환경운동하시는 분들이 자가용끌고 돌아다니다니 정말어이가 없더군요. 떡하니 주차장도 있는데 말이죠?! 거기에 주차해놓고 산책겸 걸어다니며 우포늪을 보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걷기싫어 그좁디좁은 길에 시동걸어논 상태로 우포늪감상이라니 정말 환경운동 잘하시더군요^^제가 이런말을 하는이유는 우포늪은 현재 보존이 아니라 방치이며 중국이나 일본처럼 보존지역이라도 어느정도 선에서 친환경적으로 개발하며 완전오픈시키면 쓰레기투척이나 새벽에 몰래 폐기물투척같은건 조금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글적어봅니다.
    환경운동하시는 분들 태클거는건 좋습니다.하지만 어느정도 순리에 맞게 걸어달라이겁니다. 무조건 보존해야되니 개발은 안된다고만 하지마시라 이겁니다.
    저는 창녕 이방 소목에 살고 있는 귀농청년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글올려봅니다.

  4. 보라매 2012.05.30 2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귀농청년 조영래씨 댓글도 잘 읽었구요. 암튼 좋은 쪽으로 관심이 많아져야겠고 선생님같은 분들도 많아져야겠지요. 댓글을 써놓고보니 제가 부끄러워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