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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2일 합천에 다녀왔습니다. 청덕면 한 골짜기 작은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걸을만한 길이 나 있는지 살피던 제 눈길이 어느 집 옥상에 가 머물렀습니다. 거기에는 태극기처럼 바람에 휘날리는 '빤쓰'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빤쓰를 보는데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요즘 어지간해서는 이렇게 바깥에다 빨래를 너는 일이 무척 드뭅니다. 집 자체가 옛날처럼 개방돼 있지 않고 폐쇄적이기 때문입니다.
폐쇄는 아파트가 대표적입니다. 그렇지 않고 단독 주택이라 해도 집안 바깥에다 이렇게 바지랑대를 하거나 해서 빨래를 내다 말리는 일은 보기 어렵습니다. 속옷은 더더욱 바깥에 내다 걸지 않습니다.
빤쓰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아무래도 이 집 안주인일 텐데요, 안주인은 아마도 젊은 아낙이 아니라 늙으신 할머니일 개연성이 높지 싶습니다. 옛날 생각이 납니다. 옛날에는 개인의 자아라든지 정체성이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제가 어릴 적 가장 많이 들은 말 가운데 하나가 "니 누 집 아고?(너 누구 집 아이냐?)"입니다. 제가 저 자신으로 인정되고 평가받는 대신 누구 집 아들, 누구 집 손자로 인정되고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잘못을 하면 그것은 제가 소속돼 있는 집안의 망신으로 여겨졌고 제가 잘하면 그것은 제 자신의 자랑이 아니라 제가 소속된 우리 집안의 자랑으로 여겨졌습니다. 딱 잘라서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학교 성적도 그랬고 동네 행실도 그랬습니다.
개인은 가려지고 공동체가 도드라지게 되는 것은 그 시대의 당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이 다른 모든 공동체를 제쳤습니다. 지금은 한 집안에서도 방마다 구분이 뚜렷합니다. 아이들 방에 아무 기척도 없이 들어갔다가는 때로 커다란 반발에 부닥치기 일쑤입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방이 따로 없었기도 하거니와 어른이 아이들 방에 들어갈 때 인기척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시절이었습니다. 기척을 하지 않고 들어갔다고 해서 반발하는 아이도 없었습니다.
저기 옥상에 휘날리는 빤쓰는 그래서 어찌 보면 개인이 가려지고 공동체가 도드라졌던 70년대 이전 농촌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남아 있을 때 인식의 산물일 수 있습니다. 저 빨래를 내다 건 주인은 그것이 자기 몸을 가장 깊숙한 데서 감싸 주는 옷가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지금 젊은 또는 어린 친구들이 보면 이런 빤쓰 내다 걸기가 정말 부끄럽고 남우새스러운 일일 수 있지만 정작 빤쓰를 내건 할머니는 '자기'가 입는 빤쓰라는 생각보다는 단지 그냥 '집안' 빨래 가운데 하나라고 여겼을 개연성이 높다고 저는 봅니다.
물론 저는 공동체가 앞서고 개인이 나중이라거나 또는 반대로 공동체는 나중이고 개인이 앞선다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시대 흐름에 따라 정치·경제·사회를 비롯해 모든 면에서 주체가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 되는 데 따라 달라졌을 따름이라고 여깁니다.
저기 저 빤쓰에서, 30년 전 40년 전 제가 몸담았던 한 시대의 유품을 봤을 따름입니다. 그 한 시대의 유품을 보면서, 모든 것이 개인에게 짐지워져 있는 지금 이 시대의 버거움에 대해 잠깐 생각해 봤을 따름입니다.(물론 예전 공동체가 개인에게 주는 짐도 적지는 않았습니다만)
어릴 적부터 도시 나와 세상 살면서 자기 자신 말고는 기댈 곳 하나 없이 지냈다는 외로움이라든지 고달픔이, 저 휘날리는 빨래가 경쾌함으로 다가오게 해 줍니다.
저 빤쓰의 휘날림이 세대에 따라 던져주는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제게는 자기 속옥을 내건 한 개인의 어떤 민망함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에 몸을 맡긴 편안함으로 다가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어쩌면 세상 살면서 많이 지쳤나 봅니다. 하하. 이제 겨우 조선 나이로 쉰에 이르렀을 뿐인데도 말씀입니다.^^
김훤주
저는 그 빤쓰를 보는데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요즘 어지간해서는 이렇게 바깥에다 빨래를 너는 일이 무척 드뭅니다. 집 자체가 옛날처럼 개방돼 있지 않고 폐쇄적이기 때문입니다.
폐쇄는 아파트가 대표적입니다. 그렇지 않고 단독 주택이라 해도 집안 바깥에다 이렇게 바지랑대를 하거나 해서 빨래를 내다 말리는 일은 보기 어렵습니다. 속옷은 더더욱 바깥에 내다 걸지 않습니다.
빤쓰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아무래도 이 집 안주인일 텐데요, 안주인은 아마도 젊은 아낙이 아니라 늙으신 할머니일 개연성이 높지 싶습니다. 옛날 생각이 납니다. 옛날에는 개인의 자아라든지 정체성이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제가 어릴 적 가장 많이 들은 말 가운데 하나가 "니 누 집 아고?(너 누구 집 아이냐?)"입니다. 제가 저 자신으로 인정되고 평가받는 대신 누구 집 아들, 누구 집 손자로 인정되고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잘못을 하면 그것은 제가 소속돼 있는 집안의 망신으로 여겨졌고 제가 잘하면 그것은 제 자신의 자랑이 아니라 제가 소속된 우리 집안의 자랑으로 여겨졌습니다. 딱 잘라서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학교 성적도 그랬고 동네 행실도 그랬습니다.
개인은 가려지고 공동체가 도드라지게 되는 것은 그 시대의 당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이 다른 모든 공동체를 제쳤습니다. 지금은 한 집안에서도 방마다 구분이 뚜렷합니다. 아이들 방에 아무 기척도 없이 들어갔다가는 때로 커다란 반발에 부닥치기 일쑤입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방이 따로 없었기도 하거니와 어른이 아이들 방에 들어갈 때 인기척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시절이었습니다. 기척을 하지 않고 들어갔다고 해서 반발하는 아이도 없었습니다.
저기 옥상에 휘날리는 빤쓰는 그래서 어찌 보면 개인이 가려지고 공동체가 도드라졌던 70년대 이전 농촌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남아 있을 때 인식의 산물일 수 있습니다. 저 빨래를 내다 건 주인은 그것이 자기 몸을 가장 깊숙한 데서 감싸 주는 옷가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지금 젊은 또는 어린 친구들이 보면 이런 빤쓰 내다 걸기가 정말 부끄럽고 남우새스러운 일일 수 있지만 정작 빤쓰를 내건 할머니는 '자기'가 입는 빤쓰라는 생각보다는 단지 그냥 '집안' 빨래 가운데 하나라고 여겼을 개연성이 높다고 저는 봅니다.
물론 저는 공동체가 앞서고 개인이 나중이라거나 또는 반대로 공동체는 나중이고 개인이 앞선다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시대 흐름에 따라 정치·경제·사회를 비롯해 모든 면에서 주체가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 되는 데 따라 달라졌을 따름이라고 여깁니다.
저기 저 빤쓰에서, 30년 전 40년 전 제가 몸담았던 한 시대의 유품을 봤을 따름입니다. 그 한 시대의 유품을 보면서, 모든 것이 개인에게 짐지워져 있는 지금 이 시대의 버거움에 대해 잠깐 생각해 봤을 따름입니다.(물론 예전 공동체가 개인에게 주는 짐도 적지는 않았습니다만)
어릴 적부터 도시 나와 세상 살면서 자기 자신 말고는 기댈 곳 하나 없이 지냈다는 외로움이라든지 고달픔이, 저 휘날리는 빨래가 경쾌함으로 다가오게 해 줍니다.
저 빤쓰의 휘날림이 세대에 따라 던져주는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제게는 자기 속옥을 내건 한 개인의 어떤 민망함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에 몸을 맡긴 편안함으로 다가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어쩌면 세상 살면서 많이 지쳤나 봅니다. 하하. 이제 겨우 조선 나이로 쉰에 이르렀을 뿐인데도 말씀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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