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정동영의 진정성을 믿지 않았었다

사실 저는 민주당 최고위원 정동영 국회의원을 별로 좋지 않게 여겨왔습니다. 2007년 대선에서 허망하게 무너진 까닭을 저는 정동영에게 이른바 진정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기자 노릇을 하다 보니 정동영 같은 이름난 인사도 어쩌다 만나곤 했는데, 2007년인가에 만난 기억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정동영 의원은 아마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 때 그이는 노마드(Nomad), 고구려, 광개토 어쩌구 저쩌구 하는 얘기들을 했습니다. 당시는 상업 광고에서도 손전화와 노트북 컴퓨터만 하나씩 달랑 들고 세계를 누비며 새로운 경험을 쌓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뭐 이런 이미지가 나오곤 했습지요.

아시겠지만, 노마드는 제가 알기로 유목민을 뜻하는, 한 군데 정착하지 않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그런 사람이나 집단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정동영 의원은 개척 정신을 내세우며 참신한 이미지를 풍기려고 한 셈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이에게서 실력을 볼 수 없었습니다.

다른 정치인들과 차별이 되는 그런 새로움이 없다고 저는 봤던 것입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인데 말만 느낌만 이미지만 그럴 듯하게 하려 한다 여겼습니다. 또 사물이나 세상을 남다르게 보는 독특한 관점도 없어 보였습니다. 물론 통일부 장관을 하면서 나름 쌓은 성과는 인정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7월 9일 블로거 간담회를 하는 정동영 의원.


2. 그이의 '반성'에 눈길이 끌렸다

그런 생각이 조금 허물어진 첫 계기는 5월인가 4월인가 <한겨레>에 실린 정동영 인터뷰 기사였습니다. 한홍구 교수인가와 얘기를 나눴는데, '신자유주의가 좋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대세라고 여긴 지난날에 대한 반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쩔 수 없는 신자유주의'를 해 나가면서 거기서 희생되는 이들을 위해 복지를 강화하면 되겠다고 생각한 데 대한 반성'도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어쩔 수 없는 낙오자들을 위하는 정책이 바로 복지'라고 여긴 것입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 전체에 대한 복지가 아니라 일부 못난이들을 위한 구제 수단 정도로 여겼다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이는 그이가 통일부 장관을 했던 노무현 정부보다 앞선 김대중 정부 시절에 '생활보호법'을 폐지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한 정신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식 수준입니다.

아시는대로 생활보호법은 제대로 먹고 살지 못하는 사람을 골라내어 국가가 이들에게 혜택을 베푼다는 기본 개념에 바탕합니다. 잘난 국가가 시혜를 하니까 너희 못난 국민들은 고맙게 여기고 감지덕지 받아먹어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국가가 위에 있고 사람이 아래 있습니다.

반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달리 말하면 국민으로서 기초 생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기본 개념이 바탕입니다. 그런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국민은 권리자가 되고 국가는 의무자가 됩니다.

정동영 의원의 반성은 그러므로 '선별적 복지관'과 '시혜적 국가관'에 대한 그것이었습니다. <한겨레> 인터뷰에서는 그런 반성 위에 '보편적 복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로 복지가 자리잡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허약하고 허망한지도 알았다'는 말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08년 미국에 있으면서 월스트리트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금융위기를 지켜봤는데 그 토대가 매우 부실했으며 바로 눈 앞에 닥친 이런 위기를 직전인 2007년 12월 대선 때에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반성과 통탄도 했습니다.

3. 적어도 말과 행동의 일치는 하는 정동영

이와 똑같은 말을 올 7월 9일 저희 경남도민일보 대강당에서 치러진 블로거 간담회에서도 정동영 의원은 했습니다. 아울러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농성 얘기도 했습니다.(그이는 그날 부산에서 있은 희망버스에도 참여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희망버스를 보고 느끼며 했다는 말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요"를 오래오래 곱씹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외로움일 수도 있는 그 말의 울림이 크게 마음에 와 닿았다고도 했으며, '정치는 약자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올 4월 19일 전주 버스 파업에서 12m 높이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를 만나고 내려오는 정동영 의원.

2010년 7월 30일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함안보 코레인 농성을 할 때 현장을 찾아 수자원공사 관계자랑 설전을 하고 있는 정동영 의원. 오른쪽 옆에서 배종혁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 의장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옛날 노마드 어쩌구 하면서 김진숙 지도위원 얘기를 곁들였다면 저는 마찬가지로 마음에도 없는 '립서비스'라고만 생각했겠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평가하든, 요즘 들어 정동영 의원은 적어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 생각이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만, 이것이 정동영 의원에게 진정성이 없다는 제 생각이 허물어진 두 번째 계기였습니다.

4. 군대 후배들이 기억하는 '정동영 병장'의 모습


세 번째 계기는 그이의 군대 생활에 대한 동료들의 '피드백'이었습니다. 7월 9일 블로거 간담회를 마친 그날 저녁에 '정동영이 겪었다는 천국 군대와 지옥 군대' http://2kim.idomin.com/1983를 올렸습니다. 졸병 시절에는 늘 얻어맞는 지옥 군대였는데 자기가 선배가 된 뒤에는 그런 폭력을 완전 없앤 천국 군대였다는 그런 얘기였습니다.

보통 때와는 달리 올리고 나서 엿새나 있다가 '의미있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당시 '정동영 병장'이 얼마나 제대로 했는지가 오롯이 나타나 있습니다.

30년 넘게 지난 일을 두고 정 병장의 '쫄병'들이 남긴 글입니다. 이 글들이 진짜라면 그이의 진정성을 크게 미심쩍어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강덕웅 2011/07/15 "정병장님소사33사단 생각나시죠 일요일마다 헬기장에서 구타대신 콘내기축구시합 그렇게하면 무슨구타가 있겠소 졸병고참 모두가 내가족이죠 조그만월급에 콘값을 우리가 책임져야하니 부담은 있었지요"

송봉석 2011/07/15 "정동영 병장님의 두단계 아랫 기수였는데, 제 바로 윗기수들이 사단 상황실 벙커 뒷쪽으로 우리를 집합시켜 놓고 구타를 시작할즈음에, 어떻게 아셨는지 쫓아와 도라어 윗기수들 김모, 최모 상병들 혼줄 났었죠. 그 후로 토요일, 일요일이면 야구, 축구로 내무반 분위기를 바꿨던 정병장님 생각이 지금도 납니다. 삼십년도 넘은 까마득한 생각이 지금도 눈에 선하군요. 그때의 리더쉽이면 정치도 잘하실거란 생각이 듭니다."

정호진 2011/07/15 "정위원님 병장으로 최고참일 때 제일 졸병이었던 정호진입니다. 저녁먹고 집합 준비를 하던 어느날 갑자기 집합대신 축구시합이라며 연병장으로 우리를 끌고가던 그날. 우와! 이게 왠 일인가? 축구시합하고나서 침상의 집합을 할건가? 그러나 축구를 하던 우리는 졸병 고참 나누지 않고 진정한 전우가 될수있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축구시합, 야구시합 그야말로 우리 행정병에겐 체력단련시간이요 군인다운 정신을 키우는 시간이기도했다.

나는 얼마의 시간이 지난후 정병장님이 왜 이런일을 했는가 알수있었다. 본인이 졸병시절 늘 구타속에있던 공포의 내무반을 고참이되면 바꾸겠다는 결심이 있었다는 것. 나는 그때 올바른 지도자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수있다는 말이 옳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기에 나는 지금도 정의원이 33사단의 정병장이되어 이 사회를 올바로 바꾸어주기를 기대한다."

양태익 2011/07/16 "정동영병장님과 33사단 내부반에서 같이 생활한 쫄병 양태익입니다. 당시 전통적으로 내려온 내무반구타가 있었지요. 밤 11시~12시에 취침하다가 불려나가 혼난적도 있고. 이러한 관습을 없앤 고참이 바로 정동영 병장이였지요. 아직도 기억이 합니다..

축구뿐만 아니라 야구시합도하고. 추석명절이면 중추절 그림을 크게 그려놓고 회식두하고. 정병장님이 고참이 되었을때 참 즐거웠고.그리운 군 생활있습니다. 역시 나쁜 폐습을 과감히 없앨 수 있는 정동영 병장님의 리더십을 존경합니다"

정중근 2011/07/18 "3년가까이 군 생활을 같이 하면서 병영문화를 바꾸려고 애쓰시던 정 의원님의 모습이 아직도 얼마전 같이 기억에 또렷합니다. 체육복 입고 축구하던 젊은 시절의 모습도 눈에 선하고요~ 한 사람의 생각과 노력이 오래된 폐습을 고치는 것을 보고 사고의 변화가 개혁의 근본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대 후 30~40년의 긴 세월을 가끔 만나서 안부인사 나누고 하지만, 뵐 때마다 젊은 패기를 느낄 수 있어서 늘 반갑습니다. 정 의원님의 행보를 기대합니다."

이 글 보시는 여러분들께서는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제가 속아 넘어갔는 것일까요? 어쨌거나 저는 느낌이 산뜻하고 발랄했습니다만.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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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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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bloodlee 흙장난 2011.07.25 1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하고 비슷한 느낌인가봅니다.^^

  2. 장복산 2011.07.25 1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세요. 그날도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지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다 그칠줄 보르고 내리는비를 피해서 도민일보현관을 서성이면서 이윤기님이 제일먼저 한 이야기가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반성한다는 이야기를 너무 자주 한 탓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느낌 때문이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들을 했던 모양입니다. 김기자님 글을 읽고 보니 나도 어느정도 의문이 풀리는 것 갔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의 폭도 좀 넓어진 느낌입니다. 시혜적 복지니 복지믐 국민의 기본권이니 하는 정도는 이해를 하겠는데 신자유주의라는 이야기에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노동자와 기업이 같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면서 방법을 칮기가 그리 쉬운일이 아니라는 생각때문이었지요. 원래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잔아여.~!! 신이준 저주인지도 모릅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11.07.26 10: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생님, 고맙습니다. ^^
      제가 신자유주의에 대해 그리 많이 쓰지는 않았는데도 선생님 이해에 도움이 되셨다니 고맙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자유주의도 있고 신자유주의도 있는데요.
      자유주의는 유럽 봉건사회의 신분제를 비롯한 갖은 굴레에 맞서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이념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반면 신자유주의는 20세기 자본주의가 많이 발전한 상태에서 더욱더 자본주의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이념인데요.
      자유주의가 그토록 옹호했던 '개인의 자유'보다 중요한 가치로 '자본의 자유'를 꼽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자본의 이윤 추구 제한없는 보장 등등이 그 구체적인 모습이라고 하더군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