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고색창연한 광주의 점빵들

기록하는 사람 2008. 5. 1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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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17~18일) 광주에 다녀왔습니다. 전에도 여러 번 광주에 간 적이 있지만, 이번만큼 마음이 편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별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집회나 행사에 꼭 참석해야 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겉만 번지르한 국립5.18민주묘지에 참배하고픈 마음도 없었습니다.

토요일 저녁,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고 옛 도청이 내려다 보이는 금남로의 한 호프집에서 맥주도 한 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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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옛 광주시청 근처에 있는 고색창연한 금수장관광호텔 온돌방에서 푹 잤습니다. 이름은 호텔이지만 숙박료(4만5000원)는 웬만한 모텔만큼 저렴하더군요. 게다가 멤버쉽을 가진 분이 계셔서 할인요금(3만 원)으로 잤습니다.

아침에 호텔서 된장찌게를 먹고 일행을 보낸 후, 혼자서 여유롭게 거리를 걸었습니다. 이정표에 의존해 무작정 금남로 쪽으로 걸었는데, 제가 사는 마산과 상당히 다른 거리풍경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마산에서는 거의 사라진 양장점이나 양복점, 헌책방이 특히 많더군요.

광주 계림동에서 금남로까지 걷는 동안 눈에 띄는 '점빵'(점방
房 이라고 하니 웬지 말맛이 안 나네요)들을 담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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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술집 출입문입니다. 저는 업소 출입구에 '우리(찢겨져 나간 부분 추정) 업소는 성 매매를 하지 않습니다.'라고 적어놓은 것은 처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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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고색창연한 이발관입니다. 이름은 새동아이발관입니다.

입구에 놓여진 각종 화초와 함께 감나무가 특히 인상깊었습니다. 사실 도심에서 감나무와 감꽃을 보긴 쉽지 않은데, 여기서 감꽃이 피어 있는 걸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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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입니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이런 헌책방이 광주고등학교에서부터 약 20여 개소에 달하더군요.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비슷한 곳일까요? 그런데 보수동처럼 밀집되어 있지 않고 듬성 듬성 계속 책방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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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기드문 의상실입니다.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곳입니다. 기성복이 브랜드화하지 못했던 시절, 중산층 이상 부자들이 의상실에서 옷을 맞춰 입었죠. 하지만 우리네 형과 누나들이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동생들 학비를 벌던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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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점도 있네요. 양복점 역시 의상실과 마찬가지로 남성 양복은 여기서 맞춰 입는 게 대세였습니다. 요즘은 쇠락해 대부분 사라졌는데, 광주에는 꽤 많이 남아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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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헌책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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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포도 남아 있더군요. 골목길 역시 70~80년대의 정취가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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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골목길에 있는 방앗간 모습입니다. 요즘 이런 방앗간은 시골 읍내 장터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데요, 저는 광주광역시 한복판 골목길에서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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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라사 보이시나요? 양복점 이름 뒤에 붙는 라사 羅紗는 포르투갈의 모직물 라샤(raxa)에서 온 말로 양털 또는 거기에 무명, 명주, 인조 견사 따위를 섞어서 짠 모직물이랍니다.

옆에 있는 '파트너다방'과 '선경유리' '칠성불사' 등도 70년대 풍경을 연상시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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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불사 옆에는 '윤희수선실'도 있고, 새로(와)양복점과 금 은 시계 전기 상점도 보입니다. 그 옆엔 세광 전기 철물도 있고, 관인 춘광국악원도 있네요. 광주는 특히 장구교습소나 국악원처럼 전통예술을 배워주는 곳도 많았습니다. 예향의 전통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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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고색창연한 한 골목입니다. 멀리 여관 간판도 보이고 토끼탕, 오리탕집도 보이네요. 가장 가까이는 소주방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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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목상, 여인숙, 고무상사, 서점, 전자, 화장품 마트 역시 사라져가는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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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바지 전문집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장구교실도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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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중앙초등학교입니다. 일제시대 건물로 보이는데요. 지나가는 50대 아줌마께 물어봤더니 이 학교도 다른 데로 이전해가고, 이곳은 곧 미술관인가 하는 곳으로 바뀐답니다. 그 아줌마는 "미술관인가 뭔가로 쓴다는데, 시민들이 먹고살 게 들어서야지 미술관이 무슨 소용이 있나"라고 말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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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로 입구 지하도 옆에서 본 양복점입니다.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본 광주의 점빵들은 대부분 장사가 그리 잘 되어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도시에서 보기 힘든 것이어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었지만, 가슴 한 켠에 안타까움도 밀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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