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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촌지 받아야 한다는 기자의 말에 충격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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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으로 기억하는데 연말에 기자 여럿이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었습니다. 대개는 친한 사람들끼리 모이게 마련인데 이 날은 이리저리 얼기설기 하다 보니 그런 친소 구분없이 만나진 자리였습니다.

저는 원래 말을 잘하지 않고 또 못하는 체질이기 때문에 한 쪽 구석에 앉았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기자도 있었습니다. 한가운데 앉아 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들 말씀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가장 먼저 얘깃거리가 된 것은 기자들끼리 결혼하는 일이 잦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느 신문사의 사내 커플이 어떻게 되고 어느 방송사의 사내 커플은 또 어떻다는 둥 얘기가 됐겠지요.

그러니까 어느 기자가 하나가 소리를 높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남 줄 끼 어데 있노? 우리끼리 해도 모자란데!"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못난 기이(것이) 기자 하지는 않는다 아이가. 우리끼리 하고 남으면 몰라도……."

저는 문득 바라다봤습니다. '이야, 자부심(또는 자존심)이 대단하구나. 나는 기자라면 잡부나 잡놈으로 아는데……' 여기면서 말입니다. 저는 기자를 잘난 무리로 보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자는 대체로(저도 포함해서) 성격 장애가 좀 있습니다. 첫째 상대방을 은근히 또는 대놓고 무시합니다. 둘째 자기가 정말로 잘난 줄 압니다. 실제로 어떠한지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화제는 다른 데로 넘어갔습니다. 저는 둘레에 같이 있던 기자들이랑 술잔을 부딪히면서 술을 마셨습니다.

올해 제가 받았다가 돌려준 50만원짜리 돈봉투.


조금 있다 다시 공통 화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촌지였습니다. 받으면 된다 안 된다, 가장 많이 받은 돈이 100만원 단위였다 아니다, 받는 기자보다 안겨주는 취재원이 더 문제다 아니다 등등 여러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아까 소리높여 "남 줄 끼 어데 있노?" 했던 바로 그 기자가 이번에 다시 나서더니 "와 주는 걸 안 받아? 앞으로 기자를 20년은 더 할 끼고, 그라마 2억은 충분히 모을 낀데." 이랬습니다.

저는 경악을 했습니다. 아무리 촌지를 밝힌다 해도, 그래도 마음 한 편으로는 미안해하거나 꺼려지는 구석이 있으리라 생각을 했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사람마다 천차만별임을 그 때 알았습니다. 저는 촌지 받는 기자를 덜 된 기자로 여기지만, 그 기자는 아무래도 촌지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또는 않는) 기자를 틀림없이 '능력 없는 기자'로 여기지 싶었습니다.

어쨌거나 얘기는 이어져서, 저처럼 여기는 기자가 또 있었던지, 어이가 없어 그냥 말없이 쳐다보는 무리도 있었고, "그러면 기사를 제대로 못 쓰지 않느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되물음을 받은 그 기자는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기사는 기사고 촌지는 촌지지. 촌지 받는다고 기사 못 쓰나?" 대단한 자신입니다. 저 같으면 촌지 받은 다음에는 손이 오그라들어 기사를 쓰지 못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물론 저는 그 기자가 그 뒤에 촌지는 촌지대로 잘 받고 기사 또한 기사대로 잘 썼는지 여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촌지를 받고도 아랑곳없이 제대로 기사 쓰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한 셈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김주완 선배 정운현 선배가, 기자 노릇 20년 넘게 30년 넘게 하면서도 보지 못했다 하시는, "촌지 받아서 살림 폈다는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관련 글 1) 기자나 공직자가 받아선 안될 선물은? (http://2kim.idomin.com/1676)
관련 글 2) 촌지 준 공무원의 말에 충격을 받다(
http://2kim.idomin.com/1680)

물론 읽으시는 여러 분들께서, "'촌지 받아서 살림 폈다'는 얘기가, 여기에도 없지 않느냐?" 따지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바꾸겠습니다. "그래도 '촌지 받아서 살림 펼 수 있다는 사람'은 만난 셈은 되지 않을까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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