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지방선거 여론조사의 치명적 결함

기록하는 사람 2010. 4. 1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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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이다. 그것도 가장 많은 후보가 난립하는 지방선거에다 교육감 선거까지 치러진다. 이럴 때 한몫 잡아야 할 업체 중 하나가 여론조사기관이다. 선거철이 되면 평소엔 듣도 보도 못한 잡다한(듣보잡) 정치컨설팅 업체나 서베이 업체가 생겨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업체에 미안한 소릴 좀 해야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어도 지방선거에만큼은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명백하다. 아무리 조사를 잘한다고 해도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지지도를 묻는 건 맞지도 않고 옳지도 않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야기해보자.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당신이 사는 시(또는 군)의 부시장의 이름이 뭔지 아는가? 당신 동네의 시의원 이름은 아는가? 현직 시장이나 군수 이름 정도는 알 수도 있겠지만, 부시장·부군수나 도의원, 시의원·군의원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명색이 기자인 나도 내 선거구의 도의원, 시의원 이름을 모른다. 마산 부시장 이름도 최근에 그를 만날 일이 있어서 우연히 알게 됐다. 당연히 창원 부시장이나 진해 부시장 이름은 모른다. 얼마 전에 병으로 숨진 진해시장 이름도 벌써 가물가물하다.

나는 그래도 기자쯤 되니까 창원, 마산, 진해시장 이름쯤 알고 있지만, 그냥 보통시민들이라면 인근 지자체의 시장이나 군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자기 지역의 단체장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3개 시가 통합되는 통합창원시장 예비후보 열 서너 명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누굴 지지하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천동설만 알고 있던 고대인들에게 천동설과 지동설 중 어느게 맞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거나 다름없다. 따라서 그건 아무리 좋게 봐준다 하더라도 지지도가 아닌 인지도 조사일뿐이라는 거다.

최근 지방선거 여론조사에서 유난히 응답률이 낮고 지지후보가 없거나 모르겠다는 응답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응답을 한 사람 중에서도 그냥 한 번이라도 귀에 익은 이름을 택하거나 그냥 아무렇게나 찍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창원시장을 두 번이나 한 사람, 마산시장을 세 번이나 한 사람과 나머지 정치신인을 놓고 하는 여론조사는 이런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이건 아무리 기술적으로 보완하려 해도 될 수 없는 치명적 결함이다.

물론 대통령 선거쯤 되면 거기에 나온 후보자들이 워낙 유명인사여서 '인지도'의 차이는 거의 없다. 그래서 지방선거보단 좀 더 정확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정치신인들에게는 결정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아직 각 정당의 공천후보가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하는 지지도 조사는 기득권을 가진 현직 단체장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각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되고 있는 지방선거 예비후보 지지도 여론조사는 결국 현직 단체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정치적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정당이 공천기준으로 삼기 위해 하려는 여론조사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여론조사보도는 그 자체가 '경마 저널리즘'의 한계를 넘을 수 없으며, 사표 방지심리가 공공연한 현실에서 초반의 인지도를 판세로 고착화시켜버리는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선거란 '될 사람'보다, '되어야 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명제에도 배치된다.

그렇다면 결국 가장 공정한 것은 당원들이 직접 선출하거나 시민참여 경선 밖에 없다. 그렇게 하면 국회의원에게 충성도 높은 사람보다는 당의 정강정책에 충실하고 당 기여도가 높은 사람이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부정한 공천 헌금을 많이 낸 사람보다는 일을 열심히 한 후보가 유리할 것이다.

나는 2002년 지방선거 때 경남도민일보에서 여론조사를 담당했었다. 그 결과 얻은 결론이 이것이다. 따라서 선거가 끝난 후 '앞으로 지방선거에서만큼은 후보자 여론조사를 하지 말자'고 제안했고, 그 원칙은 아직 경남도민일보에서 지켜지고 있다.

부디 이번 지방선거에서부턴 이런 저널리즘의 원칙이 지켜지고, 정당민주주의의 기본이 실현되는 선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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