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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언론

믿었던 '시사IN'에 치명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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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간 잡지 < 시사IN >의 고달픔을 압니다. 99년 지배주주 없이 독립신문으로 출발한 우리 경남도민일보가 그이들보다 앞서 겪어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람막이 하나 없이 풍찬노숙하는 그 간난신고를 어찌 모르겠습니까?

우리는 2006년과 2007년 < 시사IN >을 만드는 주체들(당시는 < 시사저널 > 종업원으로 있으면서)이 ‘삼성 관련 기사’가 무단으로 잘린 데 항의하는 파업을 할 때 진정으로 이기기를 바라며 그리고 동병상련을 느끼며 지원을 했습니다.

지지 성명서도 내었고 작으나마 지원금도 보냈습니다. 지난해 2월에는 우리 지부에서 < 시사저널 > 종사자들의 파업이 단지 시사저널만이 아닌 보도 매체 종사자 모두의 문제인 편집권 독립과 노동3권의 쟁취를 위한 투쟁임을 확인했습니다.

나아가 그해 여름 이들이 < 시사저널 >을 떠나 새로운 주간지를 만들겠다고 나섰을 때 우리 경남도민일보지부는 총회를 열어 조합원 1인당 5000원씩 동참하겠다고 특별 결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한 데에는, 그이들이 파업을 하면서 새로운 관점과 자세를 세웠겠거니 작으나마 기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이들 파업이 신문 방송에 제대로 실리지 않는 현실을 겪으면서, 이 세상 비주류의 설움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깨달았으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이들이 제 아무리 발광을 해도, ‘서울중심주의’를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반대 얘기도 나오기는 했습니다. 서울 또는 수도권에 사는 이상, ‘서울중심주의’란 ‘자연(自然) 그 자체’일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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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는 그이들이 비주류의 설움을 겪어본 이상, 비수도권을 까닭 없이 무시하지는 않으리라 여겼습니다. 마음에 쏙 들리라고까지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다른 매체와는 다를 것이라고는 믿었습니다.

이런 기대는 그럭저럭 채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분명히 다른 주간지와는 달리 비수도권 기사들이 좀더 실렸습니다. 노동이나 인권 관련 꼭지들도 상대적으로 많았습니다. 나아가 올해 1월 22일치 ‘편집국장의 편지’에서는 어떤 향내를 맡기까지 했습니다.

“기자로서 파업을 하며 얻은 소중한 경험 가운데 하나는 매일 취재만 하다가 거꾸로 취재를 당하는 처지가 돼 보았다는 점이다. 겪어보니 기자들이 얼마나 허술하게 취재해 부정확하게 쓰는지 '생중계'로 알 수 있었다.
앞뒷말을 뭉텅 잘라내고 마구 인용해 말하려는 뜻을 비틀어 전달하는 것은 약과. 기자 본인이 즐겨쓰는 듯한 상투적 어휘를 기사에 잔뜩 끼워넣어 잘난 척하기를 좋아하는 아주 우스운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우리 기자들의 활동에 비교적 호의적인 매체의 기자마저 이런 실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범하는 것을 보면서 적잖이 양심이 아팠다. 예전에 현장에서 기자로 뛰며 얼마나 많은 취재원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기막히게 했을까를 생각하면서.”

이 편지를 읽고서 ‘야 이거 참, 우리 기대가 오히려 너무 작지나 않은지 모르겠네.’, 이렇게 거꾸로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기사에 나오는 상대방을 배려는 하겠구나 여겼습니다. 그리 배려를 하면 터무니없는 기사는 나오지 않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5월 3일치 36쪽 기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봉쇄 수도’ 수녀들이 거리로 나선 까닭”이 제목입니다. 우리 마산 구산면 수정마을 수정만 매립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태를 다뤘습니다.

사태를 거칠게나마 말씀드리자면, “STX조선이 쓸 수 있도록 수정만 매립지 용도를 마산시가 변경해 줬고 이를 두고 마을 주민이 두 편으로 나뉘어 다투는 가운데 같은 마을 골짜기에 있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수녀들도 반대 운동에 나섰다”가 됩니다.

지역 현안일 뿐만 아니라 사안의 성격이 이른바 환경이어서 관심을 끌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역에 있는 매체들-우리 경남도민일보뿐만 아니라 마산MBC, 창원KBS, 그리고 경남신문이 줄기차게 보도를 해 댔습니다.

방향이나 태도는 다르지만, 그래서 사건 당사자들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바도 저마다 다르지만 보도를 꽤 했다는 사실 자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우리 경남도민일보는 찬성과 반대 양쪽에서 다같이 욕을 얻어먹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홈페이지 ‘자세히 찾기’에서 ‘수정’과 ‘STX’를 ‘와’(and)로 연결해 두드리면 아흔두 개 기사가 뜹니다. 여기에는 사실 보도도 있고, 사설도 있고, 해설도 있습니다. 반대 쪽에 무게를 두는 것들이 많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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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여느 매체들처럼 < 시사IN >도 확인조차 않고 글머리에다 굵은 글씨로 새겼습니다. “주민 생존권을 무시하는 기업과 지자체에 화난 수녀들은 여러 언론사에 취재를 요청했지만 대부분 ‘늘 일어나는 일’이라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수녀들은 그 사실이 놀랍고 슬프다.”

지역 매체 종사자들은 < 시사IN >의 이런 보도가 ‘놀랍고 슬픕니다.’ 지역 매체들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표현입니다. 지역 현안을, 지역 매체들조차 다루지 않았다니 이보다 더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한 경우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이라면 우리 지역 매체 종사자들을 혀를 빼물고 스스로 목숨을 끊든지 아니면 주민들께 정말 죽을죄를 지었노라 고두백배로 빌어야 마땅합니다. 사실이라면 <시사IN>이 여기에 초점을 맞춰 취재를 했어야 할만한 사안입니다. 그런데 < 시사IN >은 아무 자각(自覺) 증세 없이 그냥 내어지르고 말았습니다.

저는 행여나 이리 내어지른 까닭이 본문에 나오나 싶어 세 번 네 번 거듭 읽었습니다. 본문에는 그런 표현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경위야 어떻든간에, 기사 들어가는 글머리에 이렇게 지른 까닭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자기네 매체를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하려는 욕심입니다. 나름대로 열성으로 기사를 생산해 낸 지역 매체들이야 치명상을 입건 말건 상관할 바 아니라면서 말입니다. “다른 매체들은 아예 다루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서울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지방’까지 ‘내려’가서 살뜰하게 챙겼다.”

아닙니까? 지역의 보도 매체 종사자들은 이처럼 기사에 중요하게 언급이 되면서도 ‘전화 한 통 걸어 물어보는’ 가장 수준 낮은 취재원 대접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그에 더해 이 터무니없는 엉터리 기사 한 줄로 크든 작든 다들 다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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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경남민언련 시민언론학교에 소개된 문정우 씨(맨 오른쪽)

< 시사IN > 편집국장 문정우 씨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난 1월 22일치 편지에서 한, “예전에 현장에서 기자로 뛰며 얼마나 많은 취재원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기막히게 했을까.” 하는 반성(反省)이 겨우 이것밖에 안 됩니까?

그렇다면 기대를 접겠습니다. 파업을 하면서 비주류의 설움을 작으나마 이해하게 됐으리라는 ‘오해’에 바탕을 둔 기대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로 야박하게 굴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부와 사무국장 이름으로 하고 있는 두 정기구독을, 적어도 한 해 이상은 이어가겠습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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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지역신문 기자의 고민과 삶을 담은 책. 20여 년간 지역신문기자로 살아온 저자가 지역신문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기자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풀어낸다. 이를 통해 서로 비슷한 고민을 가진 지역신문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촌지, 살롱이 되어버린 기자실, 왜곡보도, 선거보도 등 대한민국 언론의 잘못된 취재관행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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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권력에 맞서는 전·현직 기자가 들려주는 감동실화! 1989년 한국 사회가 암흑기를 벗어나려던 무렵 혜성처럼 등장해 기존 잡지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던 시사 주간지 '시사저널'.『기자로 산다는 것』은 창간 직후부터 날카로운 조언과 직언을 일삼으며 고급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시사저널의 전·현직 기자 23명이 시사저널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생생히 증언한다. 삼성 관련 기사의 일방적 삭제를 시작으로 불거진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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