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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시골마을에 남은 신익희 선생 친필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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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20일) 유장근 교수의 마산 역사탐방대 마지막 탐방길에 참석했다. 모두 10회의 탐방길 중 첫회(2009년 10월 24일)에 참석한 후, 주욱 빼먹었다가 마지막회에 참석했으니 꽤나 게으른 대원이다.

마지막회에는 마침 진전면 곡안리 미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터(성주 이씨 재실)와 여양리 민간인학살 터가 탐방로에 포함되어 있어 거기에 대한 해설을 부탁받은데다, 회사도 정리한 덕에 기사 부담없이 편하게 참석할 수 있었다.

이날 탐방은 진동면 사무소와 삼진중학교에 남아 있는 진해현 관아와 객사 터를 둘러본 후, 1919년 기미독립운동 당시 삼진의거를 기념하기 위해 한 이름없는 인사가 세운 창의비, 창의탑을 거쳐 독립운동가 죽헌 이교재 선생의 묘소와 근대 민족운동의 산실 경행재(景行齋)를 방문했다. 이어 날이 어둑해질 무렵 곡안리 성주 이씨 재실과 여양리 학살 터를 끝으로 탐방을 마쳤다.

경행재로 들어서는 탐방객들.


이번 탐방에서 생전 처음 가본 곳은 진전면 오서리에 있는 경행재였다. 진전면 오서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인 권오석 씨가 살았던 마을이기도 하다.

경행재에 대한 해설은 시인 송창우 씨가 맡아줬는데, 그에 의하면 카프 문인이었던 권환 시인의 부친인 권오봉 선생이 설립한 사립학교였다. 본래는 안동 권씨 문중의 회계서원의 지원(支院)으로 1867년 3월에 건립되어 초기에는 문중의 재실 겸 한학의 서숙으로 사용되었으나, 일제 강점기인 1910년부터 사립 경행학교로 사용됐다.


경행학교는 이 지역 신교육의 전당이었을 뿐 아니라 민족운동의 요람이었다고 한다. 권환 시인을 비롯해 상해임시정부에서 활동하다 순국한 죽헌 이교재 선생과 기미년 삼진의거의 주역이었던 백당 권영조 의사 등이 이곳에서 수학하였다는 것이다.

이번 탐방에는 30명이 넘는 시민들이 함께 했다. 지역 역사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관심에 놀랐다.


1927년 일제에 의한 공립보통학교 신설로 폐교당한 이후에는 지역행사나 강습장, 회의장 등 지역 문화시설로 이용되어 왔으며, 1985년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특이한 것은 경행재의 현판 글씨가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후 비운의 정치인이었던 해공 신익희 선생의 친필 휘호라는 것이었다. 신익희 선생은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이승만과 맞서다 유세차 호남으로 가던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숨진 분이다.

바로 이 글씨가 해공 신익희 선생의 친필이다.

경행재와 진전면이 배출한 인물들에 대해 해설 중인 송창우 시인.


권환 시인의 5촌 조카이신 분은 이 현판의 도난을 염려했다. 그는 "모조품 현판을 만들어 걸어놓고, 진품은 따로 보관할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예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봐도 필체에서 힘이 넘치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품격이 넘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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