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정부가 외면한 일, 네티즌이 나서면 된다

기록하는 사람 2010. 2. 3.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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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네티즌들 참 대단하다. 사이판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네티즌의 열성적인 응원을 보면서 하는 말이다.

이 사건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굴욕적인 대응은 앞서도 여러차례 지적했으니 그만두더라도, 사이판 당국이 결국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민간 모금 방식이나마 보상을 추진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한 것은 한국 네티즌의 공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솔직히 고백컨대, 처음 기자로서 이 사건 피해자의 원통한 사연을 취재해 보도했을 때 이런 상황까지 오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또한 언제나 그렇듯 나 역시 남들이 외면한 사연을 한 두 번 보도한 것으로 자위하며 그냥 다른 일상으로 돌아갈 일이었다.

그러나 네티즌들이 그런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시작은 첫 글에 달린 첫 댓글 로부터 비롯됐다. 실비단안개 님이 올린 것이었다.


"아고라에 청원을 올리고 모금운동이라도 하면 어떨까요?"라는 실비단안개 님의 댓글에 대한 내 반응은 심드렁했다. "그러면 좋겠디만, 그것도 쉽지만은 않더군요"라는 내 답글은 예전의 경험 때문이었다. 과거 촛불정국 때 김훤주 기자가 '미국산 쇠고기 반대 펼침막 제작 기금 마련을 위한 모금청원'을 올렸을 때 네티즌 서명 500명은 달성했지만, 모금의 성격이 맞지 않다며 거부된 전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부터 실비단안개 님이 외교통신부 홈피와 블로그에 항의 글을 올리고, 이웃블로그를 찾아다니며 일일이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댓글을 달기 시작했던 것이다. 점점 이 사건에 항의하는 블로그들이 늘어 '동맹블로거' 군(群)이 형성되고, 트위터에서도 RT(리트윗 : 재배포)로 응원하는 트위터러가 줄을 잇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실비단안개 님은 또 하나의 일을 덜컥 만들고 말았다. 다음 아고라에 기어이 모금청원을 올려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게 발의한 지 이틀도 지나지 않아 서명 목표인 500명을 훌쩍 넘어버리더니, '모금 검토중'이라는 표시가 뜨는 것이었다.

이 때부터 내 마음은 초조해지지 시작했다. 또 다시 지난번 김훤주 씨처럼 모금 부적합 결정이 나게 되면 실비단안개 님과 피해자 가족들의 절망과 좌절감은 얼마나 클까 하는 조바심이었다. 게다가 검토기간은 왜 그렇게 길던지….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donation/view?id=87646


검토에 들어간 지 보름이 지나서야 희망목표액이 1000만 원으로 확정되고, 모금이 시작됐다.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다. 어제(2일) 시작된 모금은 하룻만에 100만 원에 육박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21일간의 모금기간 내에 목표액을 채우는 것은 무난할 것 같기도 하다.


어제부터 시간만 나면 이 모금청원 페이지에 들어가 대체 어떤 분들이 성금을 내고 응원댓글을 다는지 흐뭇한 마음으로 확인하는 게 버릇이 되어버렸다. 그 분들 중에는 이미 인터넷에서 눈에 익은 닉네임도 있지만, 처음 보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참 대단한 네티즌이다. 자신과 아무런 인맥도 연고도 없는 저 수많은 네티즌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어 적게는 1000원에서 많게는 10만 원이 넘는 금액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저 분들 중에 "인터넷이나 언론에 호소해봐라. 정부로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는 외교통신부 공무원도 있을까? "인터넷에 올려 회사에 피해가 오면 소송도 고려하겠다"고 은근히 협박까지 했다는 여행사 사람들은?


어쨌든 네티즌도 대단하고 다음 아고라도 대단하다. 직접 돈을 내지 않고 응원댓글 한 줄만 남겨도 다음이 댓글 한 개당 100원을 기부해준다고 한다. 참, 직접 모금에 참여하신 분들도 응원댓글 남기는 것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둘 다 참여 가능하니 말이다. 100원이 어딘가. 그게 바로 네티즌의 힘이고, 피해자 가족들에겐 희망인 것을….


이런 네티즌이 살아있는 한 아직도 대한민국엔 희망이 있다.

아고라 모금청원 희망댓글 남기기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donation/view?id=87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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