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 한 분을 만났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서울의 명문대에 몇 명의 학생을 보내느냐는 실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교장이었다. 자칫 자기 자식의 명문대 진학에 목을 매는 학부모들이 들으면 위험할 수도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 교장 선생님은 "자신의 소질이나 적성과는 무관하게 명문대 진학만을 목표로 삼는 게 오히려 위험하다"고 말한다. 학과가 아니라 대학 이름만 보고 명문대에 진학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인생을 그르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교장이 있는 고등학교는 학생들의 다양한 소질과 적성을 찾아 살려주는 '진로탐색교육'을 가장 강조하고 있다.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이야기가 기자에겐 왜 특이하게 들렸던 것일까? 아마도 기자가 알고 있는 교장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대개의 교장은 명문대 진학실적을 높여 자기 학교의 이름을 알리는 데 기를 쓰는 캐릭터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잘못된 것일 지도 몰랐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에 앞서 이 블로그에 '이런 교장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글을 올려 봤다. 물론 교장 선생님의 이름과 학교는 밝히지 않았다.

그랬더니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글을 읽고 10여 명이 댓글을 통해 "그 교장 선생님을 인터뷰하여 널리 알려달라"고 요청해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천년기념물로 지정해야 할 교장'이라는 댓글도 있었고, 중학생을 둔 학부모라며 그 교장이 있는 학교에 진학시키고 싶다는 반응도 있었다.

마산 합포고등학교 김운열 교장. 그는 "성적별로 끊어서 대학 진학률만 높이려는 것은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 선생님은 마산 합포고등학교 김운열 교장(58)이었다. 그는 지난해 9월 합포고에 부임한 후 70여 명의 교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서울의 명문대에 갈 몇몇 학생들에게 교육의 초첨을 맞춰선 안 됩니다. 명문대에 갈 아이들은 관리만 잘 해줘도 됩니다. 선생님들이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아이들은 오히려 어중간한 지대에 있는 학생들입니다."

김 교장은 무조건 4년제 대학에 학생을 많이 보내는 것도 능사가 아니라고 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지 못해 전문대학으로 역류하는 학생도 많습니다. 그것은 결국 중·고등학교 때 교사들이 진로지도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입니다. 성적별로 끊어서 대학 진학률만 높이려는 것은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일입니다."

그는 합포고 출신 학생들이 훗날 만족스러운 직업을 찾아 살아가면서 '고등학교 때 진로지도를 잘 해주신 선생님들 덕분'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게 교육의 목표라고 했다.

"학습지도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도 수많은 정보가 있고, 학원 강사들이 오히려 학교 선생님들보다 더 잘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공교육에서는 오히려 진학·진로지도가 더 중요합니다. 학생 개개인의 능력과 소질, 적성을 잘 살려주는 게 교사의 역할이라는 거죠."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평탄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나 별다른 시행착오 없이 교사가 된 젊은 선생님들이 정작 직업의 세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교장은 우선 교사들을 상대로 한 진로교육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합포고 교사들이 발간한 '진로교육의 길잡이'(왼쪽)와 교사들의 필독서인 '진로의 정석'.


올해들어 '맞춤형 진로지도를 통한 학생의 행복한 미래찾기'라는 주제로 경남도교육청과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선도학교' 지정을 받았다. 그 때부터 '진로지도를 잘 하는 학교, 10년 후 학생의 진로를 고민하는 학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교사들에게 '사이버 진로지도 연수'를 받게 했다. 또한 역경을 딛고 성공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강의를 듣게 하는 한편 <진로의 정석>이라는 교재를 구입해 나눠주고 읽도록 했다. 지금까지 4차례 진행된 교사 대상 전문직업인 강의에서 '교사의 진로교육이 학생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을 듣고 많은 교사들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양한 직업군에 대한 지식을 얻고 진로지도 전문성을 갖춘 합포고 교사들은 자체적으로 <일반계 고등학교 진로교육의 길잡이>라는 교사용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엊그제 경남도민일보에 마산대학 평생교육원 이야기가 보도된 걸 봤는데, 거기에도 이미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다시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또한 폴리텍대학에도 그런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사례만 보더라도 중·고등학교 때 진로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 수 있죠."

김운열 교장.


김 교장은 사실 중학교 때부터 진로지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중학교가 별로 없다. 그래서 합포고등학교는 1학년생 전원을 대상으로 홀랜드 진로탐색 검사를 받도록 했다. 또한 전교생에게 설문조사를 하여 희망하는 직업군별로 매월 각분야의 직업인을 강사를 초빙, 강연을 열고 있다. 올해에만 8명의 직업인이 이 학교를 다녀갔다.

또 여름과 겨울방학에는 △회사 체험반 △봉사활동반 △예술체험반 △과학실험반 △요리반 등으로 나눠 학생들의 진로탐색캠프를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자신의 진로 탐색을 위해 부모의 회사를 탐방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3학년은 인문사회계열, 교육계열, 자연공학계열, 의학계열, 예체능계열 등 희망 전공별로 학급을 편성해 선택할 수 있도록 했으며, 학생들이 언제든 자신의 진로를 검색해볼 수 있도록 컴퓨터 진로지도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학생이 원하는 직업을 입력하면 관련학과 정보는 물론 진학 가능 내신성적 및 필요한 자격증, 유망한 대학 등이 검색결과로 나타난다.


지역의 마산대학, 창신대학, 창원대학교, 마산상공회의소, 창원종합고용지원센터, 마산청소년종합지원센터 등과 진로지도 협약을 체결해 특성화된 학과 정보과 체험활동, 기업 탐방 등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런 노력을 통한 합포고등학교의 목표는 △후회없는 대학 전공 선택 △장래 직업을 걱정하지 않는 전공 선택 △실력으로 학벌의 벽을 허무는 진로 선택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맞는 직업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한다.


"솔직히 학부모 님들 중에서도 아이의 적성과 소질보다 주변의 눈치를 의식해 무조건 4년제 대학이나 명문대로 보내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학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학부모의 인식이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학부모를 상대로 한 진로 교육도 해볼 계획입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진로 상담을 위해 상담실을 찾는 학생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박정남 상담교사는 "3년째 합포고에 있었는데, 올해들어 진로상담을 요청하는 학생들이 하루 평균 5명에 이를 정도로 늘었다"고 말했다.


혹시 아이들 성적에 집착하는 학부모들로부터 항의를 받지는 않는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진로교육과 관련한 강의나 프로그램은 방과 후에 합니다. 정규수업이 끝난 뒤 자율학습 시간에 하니까 그런 문제는 없습니다."


그는 스스로 '보수적인 교육자'라고 한다. 다만 기본에 충실하자는 게 그의 철학이다.


대개의 고등학교는 대학입시철이 지나면 서울의 명문대는 물론 4년제 대학 합격자들의 명단이 적힌 펼침막을 내건다. 합포고등학교는 어떤지 물어봤다.


"작년에도 그걸 걸어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우리학교는 걸지 말라고 했습니다. 동창회에서 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올해도 학교에서는 걸지 않을 생각입니다."


김 교장은 어떻게 이런 교육철학을 갖게 되었을까? 혹시 전교조 출신은 아닐까?


"하하하! 인성교육이나 소질과 적성에 맞는 교육은 진보나 개혁·보수를 떠나 기본적으로 공교육이 해야 할 일 아닙니까? 그걸 갖고 전교조냐 아니냐를 묻는 게 오히려 이상합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을 보수적인 교육자라고 소개했다. 그의 말대로 '당연한 일'이 '특이한 일'로 보이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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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마산시 교방동 | 합포고등학교 교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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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기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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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t__nil_login=myblog 실비단안개 2009.11.30 1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학부모와 전국의 선생님들이 먼저 읽어야 할 기사같습니다.

    뷰로 송고않나요?

  2. Favicon of http://timshel.kr 괴나리봇짐 2009.11.30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까운 데도 훌륭한 분들이 얼마든지 계시는군요.
    이런 분들이 많이 발굴되고, 소개됐으면 좋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기록하는 사람 2009.11.30 13: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더군요. 알고 보니 얼마 전 김용택 선생님의 블로그에 소개된 축제가 합포고등학교더군요. 아마 이런 교장 선생님이 계시니 가능한 것 같기도 합니다.
      http://chamstory.tistory.com/116

  3. 유림 2009.11.30 1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토욜 합포고를 들렀다 왔는데..
    참 괜찮은 생각을 가진 선생님이십니다.

    성적의 잣대에 올려진 우리아이들이 애처로워도
    어쩔수 없는 사회에 두손두발 다들고 마는데...
    (강단이 있거나 나름의 의식이 확고하신 분들은 안그러시겠지만)

    멋진 선생님이시네요 ..

  4. Favicon of http://blog.daum.net/heroyw1 medifree 2009.11.30 14: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래에 뵙기 힘든 훌륭하신 교장선생님이시네요..

    '인성교육이나 소질과 적성에 맞는 교육은 진보나 개혁·보수를 떠나 기본적으로 공교육이 해야 할 일' 이라는 대목에서 교육의 문제를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잘못 알고는 있지 않았었나.. 반성합니다..

  5. 푸른옷소매 2009.11.30 15: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교장선생님이십니다.

  6. Favicon of http://neodol.tistory.com 너돌양 2009.11.30 1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공대나와도 9급 기술직도 아니고 일반행정 준비하시는 분들 많아요^^;;;;

    진짜 적성이 중요하죠. 저도 적성을 잘못찾아서ㅠㅠ

  7. Favicon of http://sibnt.net Sibnt 2009.11.30 2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멋지네요,^^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시는 분들. 참 존경스럽습니다 :)

  8. Favicon of https://2proo.net 2proo 2009.11.30 22: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훌룡한 선생님이시군요...
    저도 적성보다 이름때문에 학교 간 케이스인데.. 침 힘들었습니다.
    원래 당연한 것인데 이렇게 적성 강조한다고 이상한 선생님이 되어버리니
    안타깝고 씁슬합니다....

    저런 분들이 더욱 더 교육계에 많아져서 더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꿈과 이상을 향해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 참.. 애드클릭스 11월 최우수 블로그 선정!!! 축하드립니다~~~

  9. 부엉이 2009.12.01 0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습지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도 있고, 학원 강사들도 학교 선생님보다 더 잘한다. 공교육에서는 오히려 진학·진로 지도가 중요하다.' 라고 말하는 한국사회가 너무 슬프네요. 스스로가 '나는 교육전문가'라는 인식이 없는 한국 공교육. 저런 말을 할땐 자손심이 상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그래도 아이들의 모습을 왜곡하지 않고 인정하시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행복하길 원해서 명문대를 가도록 부추기지만,
    정말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자기와 맞는 일을 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지요.
    참 지혜를 가지신 교장선생님이시네요. 이런분 우리나라에서 교장선생님 되시기 쉽지 않으셨을텐데요

  10. winner J 2009.12.01 1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적성을 따라가야 정말 성공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하기싫은 수학 영어 공부하는데 자꾸만 음악이 하고 싶단 생각에 사로잡히니까요....

    인생 한번뿐인데 정말 자기가 목숨걸고 싶은일에 도전해서 평생 그 일만 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저는 아이들 가수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나이에 일찍히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발견해

    서 개척했기 때문이지요.

  11. 마인 2009.12.01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교육열이 높은 것도 좋지만 지금의 현실은 과열현상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래도 소신을 가진 교육자가 있다는게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네요. 공부 잘하는 우수한 학생은 스스로 공부길을 개척하지만 중위권에 속한다면 차라리 취미와 적성에 맞는 학과목 또는 전문대에 들어가서 직업공부를 하는게 훨씬 낫습니다. 실업율이 높으면서도 좀 힘들다싶은 중소기업은 외면하는 4년제 대학졸업자들이 수두룩한데 이 문제는 정도를 벗어난 학부열이 빚어낸 현실. 젊은이들이여! 돈을 벌려고 하기전에 취미와 적성을 찾아서 거기에 맞는 기술을 배워 익혀보세요 돈은 나중에 따라 옵니다.

  12. 햇님 2009.12.04 1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존경스럽네요. 작년에 아이학교에서 입시설명회를 갔더니 교장선생님이 작년에 S K Y 에 몇명이 갔고 어디에 몇명이 갔고 올해도 00명 더 보내면 유능한 교장으로 인정되 더 좋은학교로 갈 수 있다고 자랑해서 씁쓸한 마음으로 돌와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기와 적성을 배제한채 성적에 맟춰서 상위 대학에 보내더니 결국 청주로 승진해서 가시더군요. 아이들을 이용하는 것 같아서 ...지금도 그분에 대한 생각은 좋은 편이 아닙니다. 저희학교는 아니지만
    다시한번 김운열교장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이렇게 존경하실수있는 분을 인터뷰해주신 김기자님께도 감사합니다.

  13. 저는 2009.12.10 1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가고싶어요 그래서 부모님한테인정받고 싶어요.
    제주변에 사람들은 저에게 큰 기대를 하지않는데
    그걸 꺾고싶어요

  14. 적성맨 2009.12.28 1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십니까?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한국유전자지문적성검사연구소 대전상담센터장 오세정입니다
    저희 회사는 2003년에 설립되어 그동안 각 대학 및 관공서 취업 및 창업박람회에서
    지문을 통한 적성검사를 시행하여 상담을 해 왔습니다.
    그결과 “적성을 알면 인생의 성적이 올라간다.” 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소그룹 단위에 캠프나 세미나 등에서 효과적인 방법의 지문을 통한 적성검사를 시행하고자 하오니 필요 하시면 연락 주시고, 네이버 카페 “인생사업성공하기~!”를 참조 하세요
    제연락처 042)484-5070 011-421-0077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