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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그들이 친일을 인정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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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게 되는 가장 치졸하고도 답답한 인간형은 자신의 명백한 잘못을 끝내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구질구질하게 변명하는 것도 모자라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합리화하려 하거나, 도리어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걸 보면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 동아일보나 조선일보가 과거 사주의 친일행적에 대해 하는 짓이 그렇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창업자 또는 사주였던 김성수와 방응모가 포함되자 두 신문은 약속이나 한 듯 '대한민국 정통성 훼손'을 들고 나왔다. 동아일보의 사설 제목은 '대한민국 정통성 훼손 노린 좌파사관 친일사전'이었고, 조선일보는 '대한민국 정통성 다시 갉아먹은 친일사전 발간 대회'였다.

다른 논리를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였을까?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고 바로잡자는 게 정통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니,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불행한 과거를 겪었던 독일과 프랑스, 에스파냐, 아르헨티나 등 세계 각국이 과거 청산에 적극적인 이유는 그런 작업이 국가권력의 정당성과 규범적 우월성을 강화해주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김성수(왼쪽)와 조선일보 방응모.

그들 스스로도 그걸로는 논리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일까?

그래서 기껏 찾아냈다는 게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의 민주화운동 경력이었다. 동아는 그걸로 좌파공세를 폈다. 조선은 심지어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에 등장한 펼침막의 글자 색깔이 붉은 색이라는 것까지 시비를 걸었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기자는 그들의 '친일 콤플렉스'가 하도 딱했던 나머지 <경남도민일보>에 '그냥 인정하고 사과해버리면 욕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머쓱하게 될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썼다. 진짜 머리 좋은 사람들은 부끄러운 과거를 재빨리 인정하고 사과해버림으로써 그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이미 무덤 속에 있는 김성수나 방응모를 다시 감옥에 보내자는 것도 아니고, 후손에게 연좌제를 적용하자는 것도 아닌데, 그토록 오버하는 게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아마 11월 말쯤 발표된 대통령 직속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일제 말기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도 김성수·방응모가 포함되면 동아·조선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졌다. 대통령 직속기구의 조사 결과이니만큼 설마 그것까지 부정할 수 있으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최종발표에 즈음해 동아·조선이 적당히 인정하고 사과함으로써 과거를 털고 갈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점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동아·조선은 그래도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 같다. 무릇 친일행위를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것은 앞으로 그렇게 기회주의적으로 살지 않겠다는 약속을 포함하게 된다. 단순히 사과함으로써 털어버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내 생각이 짧았다.

동아·조선은 일제시대에도 그랬고, 해방 후 미 군정 시기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을 거쳐오면서 오로지 '기회주의'를 바탕으로 사세를 확대·팽창시켜온 신문이다. 지금은 물론 미래에도 그들은 철저히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편에 서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게 오랜 세월 뿌리내린 그들의 체질이고 존재이유인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특정 시기의 기회주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곧 현재의 자신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

또 하나의 이유가 더 있다. 이번 <친일인명사전>은 그야말로 시작일뿐이다. 더 중요한 게 남아 있다. 바로 '친일단체사전'이다. 당연히 동아·조선도 조사대상이다.

두고봐라. 동아·조선은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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