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한 중학교 교사의 이상한 설문조사

김훤주 2009. 9. 15.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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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랑 친한 한 중학생에게 들었습니다. 학생이 그리도 못 미더운 모양입니다. 이상한 방법으로 설문조사를 했답니다. 설문조사 근본 취지를 생각한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얘기를 처음 듣고는 사실과 다를 수도 있으니 한 번 더 확인해 보라고까지 했습니다.

실태를 제대로 알려고 하는 설문조사일 텐데, 선생님이 바라는 대로 표시를 하라 했다는 것입니다. 설문조사를 당할 학생을 미리 뽑았습니다. 한 반 학생이 서른 명이라면 그 가운데서 일곱이나 여덟을 불러냈습니다. 그러고는 따로 모아 설문지를 나눠주고 답을 적게 했습니다. 9월 초순에 있었던 일입니다.

설문 항목은 선생님 공부를 가르치는 방법이 마음에 드는지, 수업할 때 분위기는 어떤지 등등 수업에 대한 만족도와 관련되는 그런 것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①번에 동그라미를 하려고 하니까, 그것을 보고 있던 선생님이 ③번 아래로는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
입니다. 인권 침해라 할만합니다.

①번이 가장 안 좋고 ⑤번이 가장 좋은 것이었습니다. ①매우 아니다 ②아니다 ③보통이다 ④그렇다 ⑤매우 그렇다. 학생들은 이런 설문조사를 당하고 나서 자기네들끼리 모여 쑥덕거렸다고 합니다. 뻔하지요. 그렇지 않아도 이런저런 말들이 많을 나이인데, 자기들 느끼기에 너무나 부당한 일을 그냥 넘어갈 리가 있었겠습니까.

청소년 인권단체가 경남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장면. 경남도민일보 사진.


제가 보기에, 여기서 드러나는 선생님의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기들 하는 일을 교육이라 여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냥 돈벌이를 위해 처리해야 하는 업무로만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나아가 실제 상황이야 어떻든 관계없이 윗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데만 목을 맨다는 것입니다.

교육이라 여긴다면 이렇게는 못합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 꼴이니까요. 수업 시간에 가르칠 때는 이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설문조사 상황을 보기로 들고 옳으냐 그르냐를 묻는 시험 문제가 앞에 있다고 가상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이번 일을 두고 잘한 일이라고 동그라미를 하면 선생님들은 "틀렸다"고 하면서 그만큼 점수를 깎을 것입니다. 그럴 것이면서도 현실에서는 이런 엉터리를 강요합니다. 여기서 학생들이 배우는 바는, '교과서에서 정답이 현실에서는 오답이다'가 될 것입니다.

둘째는, 선생님들 자신이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가르치면서 겪는 어려움이 많으리라는 사실은 누구나 짐작합니다. 그렇다 해도 선생님이라면 자기가 가르치는 내용과 방법이 그래도 나름대로 옳고 또 스스로는 최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자신이 없고 학생들을 믿지 못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제가 말씀드린 첫째 문제점과 둘째 문제점이 서로 다르지 않고 같다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원인과 결과로 묶여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교육이 아닌 '그냥' 업무라 여기니까, 학생들이 선생님들을 좋게 생각해 주리라는 자신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설문조사가 통계로 작성되면 나쁜 효과를 끼친다는 점은 객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어쩌면 아주 사소한 문제입니다. '교육은 하지 않고 업무만 처리하는' 이들이 (소수이기는 하지만) 교단에 서고 있다는 사실이, 그러면서도 자기 '업무 처리 능력'을 스스로 믿지(自信) 못한다는 사실이 제게는 더 크게 보이고, 저는 이것이 더 서글픕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 글 읽으시는 다른 분들은 생각이 어떠하신지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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