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헌법재판소에서는 형법 제304조가 헌법을 위반하고 있는지 여부를 두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형법 제304조는 혼인빙자간음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304호 다음 괄호 안에 '혼인빙자 등에 의한 간음'이라 적혀 있군요.

먼저 법률 전문을 보실까요?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여기서 범죄 주체는 남자가 되고 범행 대상은 그냥 '부녀'가 아니라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입니다.

누가 법률 아니라 할까봐 그러는지, 낱말부터가 어렵군요. 사전을 한 번 뒤져보겠습니다. 빙자(憑藉)는 핑계를 내세움이고, 위계(僞計)는 거짓 계책이며, 상습(常習) 늘 하는 버릇인데, 부녀(婦女)는 결혼한 여자와 성숙한 여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군요. 그리고 기망(欺罔)은 남을 속여 넘김,이랍니다.

1. 음행의 상습이 무엇일까

그러고 보니 음행(淫行)을 빠뜨릴 뻔했습니다. '음란한 행실'이라 돼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음란(淫亂)을 찾으니 '음탕하고 난잡함'이라 적혀 있고 그래서 다시 음탕을 찾으니 이번에는 '음란하고 방탕함'이라 해서 '음란'이 도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국어사전처럼 도돌이표를 붙여가며 대충 뭉뚱거리면 음행이란 음란하고 음탕하고 난잡하고 방탕하고 문란한 그 무엇이 되겠습니다.

음행의 상습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곧이곧대로 옮겨 보니, 음란한 행실을 늘 하는 버릇이네요. 좀 속되고 가볍게 날리는 말로 하자면, '헤픈'쯤이 될 것 같습니다. 무엇인가를, 아끼지 않고 함부로 쓴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러니까 이 법률 조항이 보호하려는 것은 '헤프지 않은 여성'일 것입니다.

법정 모습. 경남도민일보 사진.


이를 두고 정부 부처 사이에도 논란이 붙었습니다. 여성부는 8월 6일 제출한 의견서에서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한 달 전 헌법재판소가 의견을 내어 달라고 요청했거든요. 반면 법무부는 지난 10일 벌어진 공개 변론에서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성부가 폐지를 주장하는 까닭은 이렇습니다. "여성을 의사결정 주체가 아닌 성적으로 종속된 존재로 보고 있으며, 여성을 비하하고 '정조' '순결'을 우선시하는 관념에 기초한 조항이다." 여기서 비로소 음란의 뜻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정조를 함부로 쓰고, 순결을 아끼지 않는다는 얘기입지요.

정조(貞操)는 정절(貞節)과 같은 말인데 '여자'의 곧은 절개라는군요. 절개(節介)는 또 무엇일까요. (동어반복이 되풀이됩니다만) 지조와 정조를 깨끗하게 지키는 '여자'의 품성이랍니다. 이성 관계에서 순결을 지키는 일이라고도 합니다. 순결(純潔)은 무엇인지 궁금해지 않으신가요? 여성들에게 더 많이 적용된다는 사실은 다들 아시지요. '이성과의 육체 관계가 없음'이라 나와 있네요.

2. 여성부와 달리 존치를 주장하는 법무부

사실이 이렇다 보니 검찰 마초들이 판을 치는 법무부도 '다소 가부장적'이라는 사실은 인정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혼인빙자간음죄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며 엄연히 피해자가 있는 현실에서 도덕적 영역에 관여한다고 해도 곧바로 위헌이라 할 수는 없다."

위헌이라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여성 비하와 여성 보호의 착종(錯綜)은 있습니다. 혼인빙자간음죄 자체가 표현은 여성비하적이면서도 내용은 어느 정도 여성 보호를 담고 있습니다.(표현 문제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사회 통념을 떠받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초스러운 법무부가 여성 보호를 내세워 여성비하적 법률 표현을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까닭입니다.

이런 착종은 사건 발단에서도 짐작이 됩니다. 이번 사건은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이라고 부모에게 소개하겠다'고, 같은 직장 여성에게 거짓말한 뒤 네 차례 성관계를 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남자가 지난해 이 조항으로 행복추구권과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면서 제기한 헌법소원입니다. 이른바 '혼빙'의 여성 보호 측면 탓에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남성이 낸 헌법소원인 것입니다.

3. '혼빙죄'의 양면성에서 비롯된 착종

물론 점잖게 전체 맥락을 보면 폐지든 존치든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라는 규정은 문제가 있다고 보는 점은 같은 듯합니다. 다만 여성부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피해자를 보호하는 대안은 따로 마련하되 '시대착오적'이고 '가부장적'인 이런 조항은 없애야 한다고 보는 것이 법무부랑 다른 것 같습니다.

현행 '혼빙'이 인식의 고정, 고정관념의 고정을 변하지 않게 하는 구실을 톡톡히 하는 만큼, 이를 폐지함으로써 '남녀 사이 책임과 믿음'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여러 사람의 많은 생각 변화를 불러오자는 얘기 같습니다. 그리고, 규율이 필요하다면 형법이나 민법 등등 다른 식으로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지 공감대를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이런 점도 있습니다. 남성은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남성은 '음행의 상습'이 없어도 보호 받지 못합니다. 지금은 남성 피해자가 충분히 생길 수 있는데도 말씀입니다. 이렇게 되비춰보면 '혼빙'이 여성을 반편으로 여기는 통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관계를 할지 말지 결정도 제대로 못하는 이등인간이라는 인식입니다. 이번 헌법 재판 과정에서 이런 점이라도 널리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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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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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계집운동하는 애들이.. 2009.09.15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혼빙죄 폐지하자고 육갑떠는건 간통죄를 덤으로 폐지시키려는 고단수 농간에 불과함........

  2. 실제 2009.09.15 2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혼을 전제로 하고 간음...을 했을때의 문제이긴 한데...애초에 구성요건에 자유의사에 의한 화간에다가 무슨 (피보호구금부녀간음죄같은건 별개지만) 범죄로 한다는게 어처구니 없죠..
    간통도 마찬가지로...

    여성부쪽 발언은 별로 듣고 싶지 않구요...제가 뭐 굳이 몰아붙이면 걍 마초라고 인정하긴 하는데...성차이를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평소에 말해서 그렇지만...

    여성부 간통 의견 뒤집히는 것만 봐도 그렇고...걍 여성운동 정도의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것 같고..

    그래서 법무부 나 검찰 의견을 자세히 살펴 봐야 겠죠...

    간통같은 경우나 혼빙 같은 경우 논리나 이론이 아닌...실제 사회관습까지 생각해서

    여성이 어떤 피해를 받는지....

    그거 고려 한다음에 음행의 상습이 없는 ...을 봐야 겠죠..

    음행의 상습이 없는 은 애초에 성행위 자체에 대해 동의하고 한 것에 대해 처벌하는 이 조문에 들어갈 만한 단서죠...

  3. 2009.09.15 2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09.09.16 23: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

      조금이나마 변화를 갖고 오려거나 진전을 만들어 내려면 무엇이든 잡고 움직여 봐야 하니까 그러지 않을까여?

  4. nnnnn 2009.09.18 0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통죄가 없다면,

    좀 자유로워 지겠네요. 지금은 뭐, 서로 좋아서 다니는데도 사진 찍힐까 조심해야 되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간통죄 빨리 폐지해야 할텐데요..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09.09.18 11: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한 표!!!!

    • ppao2 2009.11.25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간통죄가 폐지 되어도 형법상의 처벌이 없어지는 것이지 민법상의 책임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즉 바람 피다가 사진 찍히면 배우자에게 위자료를 듬뿍 지불하라는 판결이 민사재판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죠.
      간통죄가 폐지된 일본이나 미국도 마찬가지구요.

  5. Favicon of http://ls.lec.co.kr/gisaView/detailView.html?gisaCode=L001015005490002&tblName.. 하마 2009.09.20 0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혼인빙자간음죄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9월 10일 헌법재판소는 공개변론을 열었고, 법무부와 여성부의 의견이 달라 혼선이 일어나고 있다. 한편 형사법학자들의 연구모임인 형법개정연구회는 폐지를 주장한다.

    형법 제304조 혼인빙자간음죄는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하는 죄로서 친고죄다.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제1차 논쟁은 지난 2002년 10월 31일에 있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남성이 오로지 여성의 성만을 한낱 쾌락의 성으로만 여기고 계획적으로 접근한 뒤 가장된 결혼의 무기를 사용하여 성을 편취할 경우, 이는 이미 사생활 영역의 자유로운 성적결정의 문제라거나 동기의 비도덕성에 그치는 차원을 벗어난 것”이라고 판시했다.

    또한 헌재는 “이러한 행위는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한계를 벗어난 것일 뿐만 아니라, 여성의 진정한 자유의사 즉 성적 자기결정권을 명백하게 침해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면서 “이 조항이 청구인들의 행복추구권이나 사생활의 비밀과자유가 침해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번 사건은 제2차 논쟁이다. 혼인빙자간음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임모(33)씨가 “혼인빙자간음죄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며 2008년 6월 19일에 낸 헌법소원(2008헌바58)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임모씨는 2006년 2~4월 혼인을 빙자해 피해자 A씨와 4회 간음한 혐의로 2008년 12월 징역 2년 6월의 형이 확정됐고, 위 조항이 헌법상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냈었다.

    이번 공개변론에서 법무부는 합헌 의견을 제시했고, 여성부는 위헌 의견을 내 놓았다. 위헌을 주장하는 논거는 다음과 같다. ①도덕과 윤리의 문제다. ②개인간의 사생활 영역까지 형법이 규제해서는 안 된다. ③가부장적ㆍ도덕주의적 성이데올로기를 강제하며 이를 따르지 않는 시민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은 형법의 보충성 원칙을 거스른다. ④혼인빙자간음의 객체를 ‘부녀’로 한정한 것은 부녀를 의사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존재로 비하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이것은 헌법상 남녀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여성부). ⑤혼인 여부는 여성이 책임을 져야 할 문제다. 이 조항은 여성을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주체로 비하하는 규정이다.

    한편 합헌을 주장하는 논거도 강하다. ①이 조항은 다소 가부장적인 측면이 있지만, 실질적 평등구조가 취약한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성적 피해를 보호해 줄 수 있다(한양대 심영희). ②엄연히 피해자가 있는 현실에서 도덕적 영역에 관여한다고 해서 곧 바로 위헌이 될 수는 없다(법무부). ③남녀 사이의 성적 피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혼인빙자간음으로 침해될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부당하다(고려대 김일수).

    생각건대 혼인빙자간음죄는 폐지되어야 한다. ①국가는 과도한 국친주의(國親主義) 사상을 버려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추상적인 도덕적·윤리적 가치를 형벌로서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조항의 형벌은 단순한 보복일 뿐이다. ②성문제에 관해서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해야 한다. 건전한 판단 능력이 있는 성년의 부녀가 스스로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③자유주의 형법의 핵심은 위하가 아니라 이성이다. 우리 형법도 자유주의의 흐름을 대폭 수용해야 한다. 이것이 헌법 정신과 일치한다. ④비교법으로 터키, 쿠바, 그리고 루마니아 형법에서 혼인빙자간음죄를 두고 있다. 그러나 성형법의 탈도덕화 현상은 세계적 추세다. 독일은 이미 1969년에 혼인빙자간음죄를 폐지했다.

    이번 헌재 결정이 혼인빙자간음죄의 논란을 종식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