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비정규직 논란서 드러난 대통령 논술실력

김훤주 2009. 7. 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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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이명박 대통령이 "비정규직 보호법 근본 대책은 고용 유연성"이라 했다는 보도를 들었을 때, 저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천성이 둔해서 그렇기도 했지만, 비정규직 보호와 고용 유연성은 전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 보호에서 곧바로 고용 유연성을 끄집어내 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이랬습니다. 국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그리고 7월 1일 실행에 들어간 비정규직 보호법을 두고 "국회가 적절하게 기간을 연장해 놓고 그 기간에 근본적 해결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사실 연기도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근본적인 것은 고용 유연성인데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앞서서는 "처음 만들 때 근본적 해결을 하지 않고 해서 지금 다수 비정규직이 어려움에 처했다"고 질렀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기간을 연장해야 하는 까닭으로는 "지금부터 해결하려고 하면 그 피해는 비정규직에게 돌아가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야가 정말 근로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하면 된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명박 대통령의 언술을 보면서, 제가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한 책임이 저한테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논술(論述) 실력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들어 있는 생각은 이렇습니다. "비정규직 보호의 핵심은 고용 유연성을 높이는 데 있다. 그런데 국회는 이태 전 법률 제정 당시부터 채용부터 2년 동안만 해고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는 잘못을 저질러 놓고 그 시행을 2년 연기하는 미봉책만 썼다."

이미 아시겠지만, 고용 유연성이란 사용자가 노동자를 고용하고 싶을 때 고용하고 고용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정도를 뜻합니다. 달리 말하면 '사용자가 마음대로 해고할 자유'가 됩니다.

따라서 고용 유연성이 높으면 비정규직 보호에는 당연히 불리합니다. 그리고 이는 노동자냐 사용자냐를 떠나 대부분 사람들이 인정하는 '객관적 사실'이고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누구나 인정하는 '객관적 사실'을 아무런 논증 없이 그냥 부정했습니다. 비정규직 보호법 논의의 대전제를 반증도 하지 않고 무시해 버렸습니다. "비정규직 보호법의 근본 대책은 '고용의 유연성'이다."라고 말입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 고용 유연성은 낮은 편이 아닙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2004년에 나온 경제협력개발기구의 '고용보호법제 경직성 지수'에서 한국은 28개 회원국 가운데 12위로 비교적 유연한 편"입니다.(2009년 7월 3일치)

또 같은 <한겨레> 보도에서, "경제 상황 변동에 따른 고용의 변화 정도에선 한국이 매우 유연한 축"입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05년 각국 고용 조정 속도를 추정한 결과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60개국 중 9위였고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선 1위"였습니다.

<한겨레>는 당시 연구원의 입을 빌려 "한국 고용 조정 필요 인원의 대략 70%가 당해연도에 조정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노동시장 규제 수준에 비해 고용 조정 속도가 매우 빠른 편"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를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한국 사회는, 경제 상황이 크게 변동하지 않는 평상 시기에도 고용 유연성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경기가 크게 나빠지는 등 고용 조정이 비상하게 필요하다는 시기에는 고용 유연성이 더욱 높아진다."

같은 날 경제단체장들은 비정규직 사용 기간 현행 2년 제한을 없애라고 기자회견에서 요구했습니다. 평생 해고 자유를 누리겠다는 얘기지요. 뉴시스 사진.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논리로도 현실로도 이를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무시하고 부정했습니다. 논리 전개의 전제 조건조차를 갖추지 못한 셈이지요. 논술 시험에서 점수를 매기면 어떻게 될까요? '빵점'은 몰라도 '낙제'는 분명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논술 실력이 이렇게 형편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저는 균형 잡힌 경험이 모자라 그렇다고 봅니다. 사용자로만 살아봤지 노동자로는 살아보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비정규직을 얘기하면서도 사용자 관점에서 보는 것이지요.

이명박 대통령이 잘 하는 말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을 두고 "그거 안 된다"고 하면 "해 봤어? 해 봤어?" 이렇게 다그친다지요. 해 보지도 않고 말하지 말라는 투로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똑같이 하고 싶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을) 해 봤어? 해 봤어?" 이렇게요. 해 보지도 않고 함부로 말을 해 대니 이런 엉터리 언술이 나온다고 말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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