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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운노조

마산에 전국적 노동운동가가 있었지만 묻힌 까닭 소담(昭潭) 노현섭(盧玄燮) 풍천 노 씨 곡안리 민간인학살사건|마산 민간인학살 진상 규명운동|마산 여양리 민간인학살지 1921 구산면 안녕마을 출생1944 일본 중앙대 법대 졸1946 마산보통상업학교 교사1950 마산부두노조위원장1952 마산고등공민학교 교장1954 전국자유연맹 위원장1955 마산시 교육위원1956 마산노동병원 병원장1960 양민학살 전국유족회장1991 사망 [정의]1960년 4·19혁명 직후 마산에서 처음으로 양민학살유족회를 결성하여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에 나섰으며 전국유족회장을 맡았으나 1961년 5·16쿠데타 직후 연행되어 용공 혐의로 징역 15년을 받고 복역한 사회운동가이자 항운노조의 전신인 자유노련을 이끌었던 노동운동가. [가계]아들 노치웅(전 경남에너지 총무·기획이사) 씨 등.. 더보기
20년만에 열린 한 노동운동가의 추모행사 고(故) 소담(昭潭) 노현섭 선생은 마산시 구산면 안녕마을 출신으로 일본 중앙대 법과를 졸업한 인텔리였다. 마산보통상업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그는 한국전쟁 이후 3개 부두노조를 통합한 단일지역노조인 대한노총 자유연맹 마산부두노조를 결성,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이와 함께 그는 마산자유연맹 위원장과 전국자유연맹 위원장으로 한국 노동운동을 주도했으며, 노동자 자녀를 위한 마산고등공민학교와 노동병원을 설립·운영하기도 했던 마산노동운동의 아버지와 같은 인물이다. 또한 6·25 때 친형인 노상도 씨가 보도연맹 사건으로 학살된 후, 1960년 3·15의거로 학살책임자인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자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에 뛰어들어 마산유족회와 경남유족회를 결성한 데 이어 전국유족회 회장을 맡았다. 이 때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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