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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노련

그 자리에 진보 노동운동가는 없었다 '한국노동운동의 선구자 고(故) 소담(昭潭) 노현섭 선생 추모회'라는 긴 제목의 모임이 2일 오후 6시 마산M호텔에서 열렸다. 노현섭(1921~1991) 선생이 타계한 지 20년, 누명을 쓰고 투옥된 지 50년만에 처음 열린 지역사회 차원의 추모행사였다. 묻혀진 노동운동의 선구자 추모행사 참석자들의 면면을 기록삼아 적어 보면 이렇다. 김재윤 전 경남대 교수, 이순항 전 경남도민일보 대표이사, 홍중조 전 경남도민일보 논설실장, 황창규 전 항운노조 위원장, 김명호 경남항운노조 위원장과 간부들, 최광주 경상남도 새마을회 회장, 백한기 3·15의거기념사업회장, 김종배 전 3·15의거기념사업회장, 조민규 합포문화동인회 이사장, 김종대 창원시의회 의원, 허진수 전 경남도의원, 김영만 전 열린사회희망연대 대표, 권광.. 더보기
20년만에 열린 한 노동운동가의 추모행사 고(故) 소담(昭潭) 노현섭 선생은 마산시 구산면 안녕마을 출신으로 일본 중앙대 법과를 졸업한 인텔리였다. 마산보통상업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그는 한국전쟁 이후 3개 부두노조를 통합한 단일지역노조인 대한노총 자유연맹 마산부두노조를 결성,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이와 함께 그는 마산자유연맹 위원장과 전국자유연맹 위원장으로 한국 노동운동을 주도했으며, 노동자 자녀를 위한 마산고등공민학교와 노동병원을 설립·운영하기도 했던 마산노동운동의 아버지와 같은 인물이다. 또한 6·25 때 친형인 노상도 씨가 보도연맹 사건으로 학살된 후, 1960년 3·15의거로 학살책임자인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나자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에 뛰어들어 마산유족회와 경남유족회를 결성한 데 이어 전국유족회 회장을 맡았다. 이 때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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