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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일본군 '위안부'와 민간인학살은 다른 사건이 아니다 “4283년(1950년) 7월 15일 당시 보도연맹원 360명을 마산형무소에서 수감한 후 특히 부녀자들에게 능욕을 자행하고……산골에서 총살한 후 암매장했는가 하면 또한 선박을 이용하여 바다에서 살해수장하였던 것이다.”(1960년 7월 마산피학살자유족회가 국가를 상대로 낸 고발장) “김영명(23) 씨는 미모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인간 됨됨이로 주위의 칭찬이 자자했던 교사였다. 지서장 김병희가 그녀의 미모를 탐내오다가 오빠를 빌미로 잡아가 강제로 능욕하고 학살해 버렸던 것이다.”(1960년 국회 양민학살조사특위 조사기록) 위에 인용한 글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경찰의 민간인학살 과정에서 공공연한 성폭행이 벌어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게다가 아래와 같이 한국전쟁 당시에도 ‘위안부’ ‘위안소’를 운영했다는 증언.. 더보기
경남정대연, 기록없는 역사는 복원하기 어렵다 지난 10일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이지영 전임연구원(정치학박사)이 나를 찾아왔다. 1997년부터 약 5년 간 활동했던 '경남정신대문제대책을 위한 시민연대모임(경남정대연)'을 취재해 기록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여성가족부 프로젝트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활동하는(했던) 시민운동의 흐름을 기록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창원 이경희 선생이 나를 꼭 만나보라고 추천했다고 한다. 경남정대연 창립에서부터 해산까지 깊이 관여했던 나를 찾아온 건 나름 번지수를 잘 짚은 것이지만, 기록해두지 않은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만만찮았다. 물음에 나름 성실히 대답하고, 당시 신문기사들도 찾아 복사해주었지만 체계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것이라 못내 아쉬웠다. 그를 보낸 후 집에 가서 당시 경남정대연 관련 기록이 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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