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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

쉽게 써본 창원의 역사 ⑤백성이 권력 이긴 첫경험 4월혁명을 낳은 3·15의거 지금부터는 마산 하면 상징처럼 떠오르는 3·15의거를 알아보도록 해요. 어른들은 3·15에 대한 기억들이 생생해요. 하지만 우리 친구들은 말로만 들었지 아득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자세히 한 번 살펴보자구요.(친구들 집중 집중!!) 3·15의거는 1960년에 일어났어요. 그때 태어난 사람들이 이제 58살이니 어느새 60년 전의 역사가 되었군요. 친구들은 3·15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지요? 김주열~~(우와 완전 짱~~!!) 이승만요!! 하고 답하는 친구들이 참 많더라구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아주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1948년 대통령이 되고 난 후 2대 3대까지 대통령을 했어요. 이제 그만~~했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의 욕심이란.. 더보기
4.19 원흉 최남규는 일본경찰 출신이었다 대개 3.15의거나 4.19혁명 등 시민항쟁에서 시위대에 총질을 하거나 고문을 가한 악질 경찰관들의 전력을 찾아보면 일제 강점기 때 일본 경찰 출신들이 많습니다.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유기한 악질 경찰 박종표도 그런 케이스였죠. 그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 이미 포스팅했으니 참고하시고... ☞친일헌병 박종표는 김주열 살해한 원흉이었다 오늘 소개할 사람은 당시 경남경찰국장으로 3.15부정선거를 지휘한 주범이자, 3.15 마산의거 당시 시민들을 살해하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최남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3.15와 4.19로 이어지는 혁명 과정에서 최남규의 지휘를 받은 경남 경찰이 어떤 짓을 벌였는지 한 번 보시죠. 1960년 당시는 경찰력으로 정권을 유지하던 시절이었던 만큼 3·15 이후 부산지검 한옥신 부장.. 더보기
부정선거·부정축재, 뿌리를 추적해보니… 지금으로부터 50년전, 이땅의 모든 민중이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에 신음하고 있을 때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뭘 하고 있었나. 또 3·15의거 당시 모든 마산시민이 궐기했을 때 소위 지역유지와 지식인, 기업인들은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 그들 지도층의 당시 행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왜냐면 5·16군사쿠데타 이후 재빨리 지역 기득권을 되찾은 그들이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기록들을 철저히 은폐해 왔기 때문이다. 어쩌다 그런 부분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구체적으로 이름은 거론하지 않고 은근슬쩍 변죽만 울리다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광석씨(언론인·시인)가 쓴 '3·15정신과 마산문학'이라는 글은 김팔봉씨가 1960년 5월 를 통해 발표한 '부정선거와 예술인의 지성'이라는 글을 인용하면서 은근히 .. 더보기
1960년 4·19혁명을 부른 부정선거의 실상 "세계 역사상 대통령선거에 소송이 제기된 적이 있어? 법은 나중이니 우선 당선부터 시켜 놔야 돼. 콩밥을 먹어도 내가 먹고 징역을 살아도 내가 산다. 국가 대업을 위해 지시하는 것이니 군수와 서장들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 뒷골목 깡패 보스의 말이 아니다. 일국의 내무부장관이라는 최인규가 3·15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 전국 각 시·도 경찰국장과 사찰과장·경찰서장(165명), 군수(139명), 시장(25명), 구청장(14명) 등을 불러 모아놓고 한 말이다. 3·15의거와 4·19혁명 직후인 7월 8일 대법원에서 열린 최인규의 재판 진술내용을 보자. 재판장(정영조)=부정선거 방법을 지시하면서, 투표함을 바꿔쳐라. 그것이 안되면 불을 질러라. 그것도 안되면 기관총으로 드드륵 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면 된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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